안녕하세요, 셀프 히로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구독자님! 1월의 첫 번째 뉴스레터가 도착했어요.
오늘은 솔직하게, 저의 아프고도 정직한 고백을 써보려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과정을 완전히 지나왔을 수도, 혹은 이 과정이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면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거에요.

𓁕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모순에 대해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저는, 종종 내면 작업 중에 제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걸 봤어요.
"나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도저히 사람들을 사랑할 수가 없어."
저는 블로그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여러 곳에서 늘 자기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왔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을 사랑할 수가 없다니. 저는 '이런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인정하면 모순에 빠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늘 외면하기에 급급했죠. 하지만 감정을 거부하면, 언젠가는 또 올라오게 되어있다는 건 이미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
𓁕 감정이 올라오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

사실 이번에 올라올 뉴스레터의 초안은 전국에 있는 명상원을 소개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발행을 앞두고 뭔가가 딱 가슴에서 걸리더니, 굉장한 불편함이 찾아오더라고요. 저는 종종 찾아오는 이 강렬한 감정을 "모래알로 눈을 비비는 따가운 느낌"이라고 표현하고는 해요. 어떤 감정일지 예상이 되지 않나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어요. 이런 감정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면 구독자들에게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텐데. 그러면 셀프 히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부딪힐텐데.
저는 당신은 사랑 그 자체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문법을 쓰면서, 정작 타인을 사랑하기 힘든, 어떤 화해하기 힘든 감정 속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감정이 올라오는 이유는 반드시 있고요.
𓁕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자기 사랑, 올바르게 이해하기

첫 번째, 우리가 어떤 존재일까를 물어보면 답이 나와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존재의 한계를 명확하게 느꼈어요. 그건 바로 우리는 영적인 존재지만, 늘 에고인 나와 부딪히는 존재라는 거에요. 누구나 영적인 존재로서 사람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는 내가 있어요.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나쁜 행동을 한 누군가를 입으로는 욕하고 있지만, 사실 영혼은 그 사람을 품어주고 싶어해요. 하지만 에고인 존재로서는 화가 나요.
그건 모순이라기보다, 생존이 가장 중요한 몸(에고)에 새겨진 본능과도 같은 거에요. 그런데 억지로 "자기 사랑을 배우니까 사랑해야해"라고 하면 에고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겠죠.
제가 저에게 내린 처방전은 이거였어요. "네가 때로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걸 말해줘도 괜찮아. 너는 완벽하지 않거든. 하지만 인정해서 완벽한 거거든."
그러고나면 마음이 나아지더라고요. 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사랑을 내려놓을 때 사랑하게 됩니다. (참 청개구리 같죠🐸)
두 번째, 깨어 있다는 게 모두를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나는 모두를 사랑해! 저 사람도, 이 사람도 사랑해! 나는 무의식 정화도 하고, 인생이 바뀌고 있어! 매일 자기 사랑으로 가득차있어!"
내면 작업이 곧 사랑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사랑을 강조하면 종종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리게 된답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내 경계선이 무너지고 착취의 길로 이어질 수 있어요.
- 영적으로 깨어 있음 = 모두를 사랑한다 (X)
- 영적으로 깨어 있음 = 나와 타인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한다 (O)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건, 제 생각에는 나와 너가 건강하게 구별된 관계임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육지와 바다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워요. 바다에서는 모두가 출렁거리면서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지만, 육지에 올라오면 나로서 자유롭잖아요. 영적인 세계와 현실 세계는 본질적으로 같지만, 다르다는 거에요.
물론 분명히 나와 타인과의 경계선이 전혀 없고, 우리로서 동일시하며 살아가는 구루들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저는 물질계에서의 사랑이란 어느 정도 현실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거든요.
세 번째, 우리는 늘 영적 환상을 경계해야 해요.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지구에 몸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은 다 비슷해요. 대단하게 영적인 사람도, 영적이지 않은 사람도 알고보면 없어요. 만약 우리가 정말 깨달을 것이 없는 존재라면 이곳에 태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서 저는 영성이 어떤 부러움이나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수련 그 자체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걸 자주 느껴요. 영성을 동경하면 깊은 환상에 빠지고, 보이지 않는 것에만 심취할 수도 있고, 특정한 사람과 동등하지 않은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나의 에너지를 바치게 됩니다. 소중한 자원을 늘 지켜야겠죠.
결론적으로 우리는 늘 있는 그대로 완전하며, 영적인 나를 이해하되 에고인 나 또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죠.
𓁕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에고와 영성을 통합하기

그러면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궁금하시죠. 우리는 에고와 영성을 통합해야 합니다.
저의 내면 작업에서 뗄 수 없는 개념이 균형인데요. 저는 균형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끌어당김, 트랜서핑, 네빌 고다드, 그 밖에 수많은 영성가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균형을 향해 가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균형은 거스를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자, 자연 그 자체거든요.
치킨을 먹을 때 후라이드만 있으면 양념의 매콤한 맛이 생각나고, 양념만 있으면 후라이드의 깔끔한 맛이 생각나요. 에고와 영성도 똑같아요. 에고는 비교하는 존재지만,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비교해야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요. 영성은 진실이지만, 현실을 건너뛰고 그것으로만 살 수 없어요.
양극을 모두 인정하고 어느 한쪽에 끌려가지 않는 힘. 그것이 바로 통합의 길이에요. 이 이야기를 가슴으로 이해하는 날이 올 때, 여러분들은 영성을 현실에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될 거에요.
<동양 오라클 타로, 헤움 타로☀️>
“헤움, 운명과 의지 사이에 교차하는 균형의 공간”
이야기 나온 김에 오늘은 제가 기획자로 참여 중인 헤움 타로를 소개해요. 한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운명과 의지 사이에서 사색할 수 있도록 제작중인 오라클 카드입니다. 역시나 균형의 힘을 길러줄 수 있도록 고안되었고, 1월 중순 텀블벅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열심히 작업중이니까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인스타그램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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