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서로의 집이 되어

겨우 한 나절, 겨우 한 계절을 보냈어도

2022.01.20 | 조회 101 |
2
|

문장과장면들

책이라는 결과보다 아름답고 치열한 여정을 나눕니다.

   어제는 처음 닿은 공간에서 한나절을 보냈어요. 크고 어둑해서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아서 늘 지나치기만 했는데 그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좋았죠. 커다란 녹색 문을 열고 그곳에 들어서게 된 건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카페 J 때문이었어요. 늘 가던 곳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흔한 쪽지도 하나 남기지 않고 닫혀버린 문 앞에서 잠시 허망한 마음이 됐죠. 커다란 창 너머로 뒤집어진 의자와 어질러진 집기들을 보며 사장님의 서늘한 인상을 떠올렸어요. 조금 무뚝뚝하기는 했어도 커피 맛이 참 좋았는데 무슨 사정이라도 생긴 걸까. 매일 같이 들렀어도 겨우 한 시간 남짓 머무르는 게 전부였으면서 주제넘은 참견을 했어요. 그러고는 코너를 돌아서 그곳에 닿게 된 거죠.

   커다란 책장에 헌책들이 빼곡했고 재즈 피아노와 올드팝이 흘러나오는 곳이었어요. 어떤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서 잘 만들어진 공간이라기보다는 그저 오래된 것들이 서로의 곁에 기대어 조금씩 스러져서 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특정한 취향도 질서도 없이 가득 채워져 있던 책장은 멀리서 보면 근사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달랐어요. 공간과는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책들도 쉽게 눈에 띄었거든요. 천자문 만화책 같은 것들. 평소라면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느꼈던 압도감이 사라지며 김이 샜을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죠, 어제는 그 만화책이 저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더라고요. 생면부지의 공간에서 유년 시절에 함께했던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긴장이 풀렸어요. 그 친구를 펼쳐 보는 일은 없었지만요.

멤버십 구독자만 읽을 수 있어요

가입하시려면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파수꾼

    0
    about 1 year 전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2023 문장과장면들

책이라는 결과보다 아름답고 치열한 여정을 나눕니다.

 에서 나만의 뉴스레터 시작하기

자주 묻는 질문 / 문의하기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 070-8065-4275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