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땅콩'을 먹을 때마다

서울외계인 뉴스레터 10호

2021.04.18 | 조회 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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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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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땅콩'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6년 전쯤인가 이것저것 살 것이 있어 동네 슈퍼마켓에 갔었어.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였지.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 20여 년 전 데이트 삼아 놀러왔을 때도 이 슈퍼가 있었던 것 같아.

그 날은 슈퍼를 운영하는 가족들이 모두 있었는데, 노부부가 젊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가게를 지키고 있었어. 아들은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며 일하던 모습만 기억나. 말수가 적고 미소를 잘 짓고 친절했어. 내가 살 물건들을 챙겨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있던 주인 할아버지가 말했지.

"출출한데 오징어땅콩이나 한 봉지 먹어야겠다."

그러자, 할머니가

"혈압도 높은 양반이 무슨 군것질을 하시려고 그래요."라며 핀잔을 줬어.

며느리도 옆에서 거들며,

"맞아요, 아버님. 그런 거 드시면 살쪄요."

아들은 옆에서 일을 하며 미소만 지었던 것 같아.

나는 화목한 가족이구나, 라는 생각을 스치듯 하며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곤, 일년 쯤 후였나. 슈퍼집 아들이 암에 걸려서 슈퍼를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었어. 삼십 대 중반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암이 생기면 예후가 매우 안 좋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가족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어렴풋이 예상됐어. 어린 아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도 오징어땅콩을 먹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기억이 떠올라. 그닥 유쾌한 기억도 아닌데 말이지. 그 가족들이 웃으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박혀있는데, 이제 그분들도 마음의 평안을 찾았기를 바래.

몇 백 년을 살 거 같이 걱정을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자꾸 까먹는 것 같아. 그래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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