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년에 책 300권을 읽어요 | 수치화의 함정

물론 제 얘기는 아닙니다

2024.02.02 | 조회 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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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생산성

생산성 관련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 현재 레벨업 준비 중입니다. 언젠가 더 고가치 정보를 제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1년에 책을 수백 권 읽었다고 자랑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저 숫자를 세는 걸까요? 책 읽을 때마다 어느 목록에 추가하는 걸까요? 아니면 작성한 독서 노트의 개수를 세는 걸까요? 완독은 안 하고 일부만 읽은 것도 세는 걸까요? 설마 모든 책을 완독하시는 건 아니겠죠? 정량화하는 기준과 방법이 궁금합니다.

 

마인드도 신기합니다. 그걸 굳이 세는 게 궁금해요. 쌓여가는 뿌듯함이 주된 동기일까요? 어쩌면 꾸준함의 함정일 수 있습니다. 이런 꾸준함의 함정은 저번 레터에서 다뤘습니다.(https://maily.so/sian.prof/posts/7f81c8aa)

 

책을 많이 읽으면 내가 성장한다는 착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성장이란 단어가 참 묘해요. 삶에는 RPG처럼 단일 레벨이 있는 게 아닌데도, 성장이란 단어로 뭉뚱그리면 뭔가 이뤄나간다는 착각을 주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성장한다기 보다는 죽어가는 존재고 죽기 전에 어떤 형태든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게 제 인생관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이런 관점도 있다는 겁니다. 성장보단 메멘토 모리를 더 중요하게 보는 관점이죠.

 

다시 정량화 얘기로 돌아와서. 생산의 결과는 가치와 임팩트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런데 양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물의 양도 평가 기준으로 삼기에 애매합니다. 그런데 투입 자원의 양이 많은걸 자랑하는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책 읽는 것은 아웃풋이 아니라 인풋에 속합니다. 돈, 시간, 주의력을 들여서 책을 읽는 건데요. 그런 측면에서, 차라리 책을 안 읽고 무언가를 해냈다고 하는게 더 대단합니다.

 

굳이 양으로 자랑 하겠다면, 노골적으로 돈 얼마 벌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생산물의 가치에 근접한 걸 수 있습니다. 매출이나 순이익이 결과물의 가치에 영향이 없을 수 있지만 (가치는 없고 이익이 있는 극단적인 예가 사기죠) 어찌 되었든 실제로 사람들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거라 믿고 지불한 금액이니깐요.

 

정량화된 값에 휘둘리지 않는 그 너머를 생각하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 이번 레터의 의도입니다. 사실 핵심 메시지는 다 전달 드렸는데요. 몇 가지 예시를 들면서 와닿게 만들어서 여러분의 멘탈 모델에 심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시들이 재밌을 거예요.

 


저는 지식 노동이 게임과 굉장히 유사한 점이 많아서 게임에 비유드는 것을 즐깁니다.

 

오버워치 좀 하시나요? 오버워치는 5vs5로 플레이하는 FPS 팀 게임입니다. 여느 팀 게임이나 마찬가지로, 게임이 지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즉, 정치가 발생하는데요. 정치가 발생할 때 우위 포지션을 차지하는 사람은 당연히 성과가 높은 사람입니다. 회사에서도 캐시 카우인 팀이 입김이 센 것처럼요.

 

오버워치에서 성과의 증거로 딜량을 내세울 때가 있습니다. 딜량이란 내가 적 팀에게 얼마나 데미지를 입혔는지 수치화한 건데요. 딜량이 가장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 쉽습니다. 반대로 딜량이 낮으면 정치의 타겟이 되기 쉽죠.

 

오버워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딜량이 게임 플레이를 평가하기에는 부족할 거라고요. 예컨대, 오버워치에서는 확실히 상대방을 제압하는 킬이 중요한데, 높은 딜량이 반드시 킬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유효한 킬을 못 내고 교전이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킬 수로 따지는 것도 곤란합니다. 예컨대, 겐지 같은 캐릭터는 게임 수준이 높아질 수록 상대방의 변칙적인 플레이를 차단하고 실수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교전이 많지가 않은 캐릭터입니다. (이런 캐릭터를 서브 딜러라 하죠) 이는 킬과 딜량의 저하로 이어지거든요.

 

이렇게 수치만으로 평가가 어렵기에, 누가 플레이를 못했는지 평가해주는 장문철 TV같은 유튜브 채널도 있습니다. (한문철 TV를 오버워치 버전으로 패러디한 겁니다) 전문 게임 해설자가 리플레이를 보면서 누가 못 했는지 평가하는 건데요. 단순히 수치를 보는 게 아니라 각 플레이어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를 평가하죠. 시청자들도 같이 평가에 참여하는데 평가가 나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평가는 예술의 영역입니다.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운 수치화의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닐까 해요.

 


상품의 가치 역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상품의 가격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쌀수록 오히려 가치를 느끼는 명품은 뭐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거고요. 특히나 무형 자산은 그 경향이 심합니다.

 

대표적으로 교육이 있습니다. 고액 강의일수록 신뢰나 기대감이 높죠. 그래서 강의 수준을 평가할 때 강의료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나 그 강의가 나랑 관련이 없다면 말이예요.

 

300만원 짜리 강의를 들었다”라고 하면, 그 강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대단한 고급 강의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이를 이용하면, 기업 강의처럼 강의를 신청하는 사람과 수강자가 다를 경우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강의를 평가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초심자 강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고액의 초심자 대상 강의는 돈이 되죠. 커리큘럼을 봐도 평가를 못 하니깐요. 그래서 고액의 코딩 부트캠프가 우후죽순 생기는가 봅니다.

 


빈 카운터(Bean counters)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모든 문제를 숫자와 데이터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핵심 가치에 근접하지 않고 숫자 다루는 것을 콩 세는 것에 비유한 거죠. 빈 카운터가 기업 정신을 흐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낭만과 열정이 넘쳐야 하는 자동차와 게임 산업이 대표적일 겁니다.

 

장인 정신이 가득한 게임 회사를 돈 많은 회사가 인수하고 장인 정신이 사라져 버린 스토리는 흔할 겁니다. 액티비전이 블리자드를 인수한 후 블리자드에 게임 덕후가 사라져서 게임이 재미없어졌다는 내러티브는 게이머라면 다들 아실 거예요. 수치에 얽매이면 창의력과 열정이 사라지죠. 독창성을 잃고 고유 정신이 훼손되죠. 회사 뿐만 아니라 구독자 수에 집착하는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크리에이터 얘기가 나왔으니 더 해볼게요. 수치화의 함정은 많은 크리에이터가 저지르는 실수기도 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많은 컨텐츠를 만들었다고 생산성이나 꾸준함을 자랑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괄목한 성과가 있으시면 다행이지만, 구독자나 반응이 생산한 양에 비해 떨어지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같은 크리에이터로써 그런 분들을 보면 조금 안타깝습니다.

 

대개의 경우 센스와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좀 뻔하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뭘 원할지 또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고민이 없는 게 보입니다. 그래서 만들어 찍어내기 쉬운 거죠. 물론, 여러 개를 만든 다음 "하나만 걸려라" 전략일 수도 있겠습니다. 엔터테이먼트 용 영상에서는 그 전략이 통할 수 있는데요. 카롭고 정리된 관점을 보여야 하는 지식 컨텐츠에서 과도한 양은 오히려 독입니다.

 

아무리 생산량이 많더라도 임팩트가 없으면 끝입니다. 제텔카스텐 얘기하면서 흔히 니클라스 루만의 다작 얘기를 하는데요. 니클라스 루만이 아무리 다작을 했더라도 임팩트가 없었다면 무명의 사회학자로 잊혀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현대 사회과학 이론에서 중요한 결과물을 만들어냈죠. 생산량이 자랑 되기 전에 임팩트가 있었다는 겁니다.

 


 

저번 피드백에서 양이 긴 것을 원하셔서 양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피드백은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니 남겨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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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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