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인생활 / 78번째 스토리-왼손은 거들 뿐

일상생활에서 예고 없이 튀어나올 돌발적인 고통에 대한 공포심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평범한 움직임을 하는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늘 긴장하게 되는 것이죠.

2022.08.07 | 조회 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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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인생활 스토리

일상을 주제로 개인적이고 사소한 짧은 글을 매주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보내 드립니다.


"왼손은 거들 뿐"
아마 이 대사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가, 산왕과 동점인 상황에서 마지막 슛을 하려다 가로막힌 서태웅의 사이드에 들어서며 중얼거린 말입니다. 전국 대회 전, 골밑 슛도 겨우 해내는 강백호에게 안 감독과 주장인 채치수가 붙어서 3점 슛 특훈을 시키는데 그때 채치수가 강백호에게 알려준 팁이었죠. 오른손으로 원핸드 슛을 할 때 왼손으로 가볍게 공을 받히며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게 힘의 분산을 막아 정확한 슛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강백호가 저 대사를 흥얼거리며 서태웅에게 패스 받은 공으로 마지막 역전 버저비터 슛을 성공시키면서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에 정점을 찍는 장면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명대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 대사에 대해 강백호가 오른손이고 서태웅이 결국은 왼손이었다는 헛웃음 터지는 해석부터 두 주인공이 팀의 균형과 힘의 배분을 깨친 장면이라든지, 강백호가 나중에 서태웅을 능가하는 주전이 된다는 등의 여러 해석이 있었지만 전형적인 스포츠 만화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장면임은 틀림없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저는 슬램덩크 후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천재 등장' 연속의 스토리도 점점 물리기 시작했고 강백호 보다는 정대만을 좋아했던 취향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만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산왕전 이후 줄줄이 패배해 결국 전국 제패를 못 했다는 그나마 현실적인 엔딩 때문인 듯합니다.

저는 처지고 둥근 어깨를 가졌습니다.
어쩌다 이런 모양새가 되었는지는 모르는 건 아니지만 콤플렉스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키도 작고 왜소한 체격에다 어깨까지 사회 비적응 모양새라니... 마음에 들 리가 없잖아요. 자세 교정도 해 봤고 운동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했지만 꾸준함이 없었기에 그냥 이 모양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고민을 들은 친구가 저에게 처지고 둥근 어깨는 한복을 입으면 단아한 모습이 나온다는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길래 ‘그래서 너는 나의 단아한 한복 자태를 보고 싶니?’라고 물으니 친구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제 왼쪽 어깨는 습관성 탈구, 그것도 하필 흔하지 않다는 후방 위 어깨 탈구입니다.
예전 글 흉터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십수 년 전 마운틴바이크를 타다가 언덕 아래로 구르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오른쪽 정강이뼈 골절과 어깨 탈구를 겪었습니다. 당시 정강이뼈는 골절로 인해 철심을 박았고 1년 뒤 제거로 지금까지 큰 무리가 없는 반면, 어깨는 당시 뼈도 이상 없었고 근육이 충격으로 조금 늘어난 상태니, 걱정 말고 다음에 어깨에 이상이 있으면 그때 다시 병원에 오라는 말과 함께 일주일 치 약을 받고 나아서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결국 습관성 탈구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전철에서 손잡이를 잡다가 탈구가 된 적도 있었고, 자다가 몸부림을 치다가, 재킷을 입거나 벗을 때, 크로스백을 메거나 벗을 때도 팔의 각도에 따라 탈구가 되기도 합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빠진 적은 말할 것도 없고, 책상 밑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빼기 위해 상체를 숙여 왼팔을 뻗을 때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병원을 갔냐고요? 아뇨. 어느 순간부터 내가 빠진 어깨를 넣고 있었습니다.
빠진 어깨를 스스로 넣는다고 해서 '어? 어깨가 빠졌네? 그럼 넣어야지'라며 팔을 돌려 넣는 도라에몽 같은 명랑만화 분위기는 절대 아닙니다.

일상 속 다양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벌어지는 습관성탈구는 탈구력 15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현실 지옥 체험의 순간을 선사합니다. 어깨뼈를 잡아주는 인대가 제구실하지 못해 특정한 각도에서 어깨뼈가 빠지게 되는데, 탈구가 되는 순간의 그 고통과 기분에 대해서는 뭐라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깨가 빠지는 순간만큼 아찔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에 비할 수조차 없습니다. 빠진 어깨를 셀프로 넣기 위해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벽에 어깨를 처박는 영화 주인공은 그야말로 '구라'입니다. 어깨가 빠지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지끈!' 같은 소리가 실제로 들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어질 정도로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다.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지면서 말 그대로 몸이 그 자리에서 굳습니다.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더듬어 만져보면 상완골이 빠져 오구 돌기가 만져집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빠진 왼팔을 잡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면 빠진 뼈가 자리를 잡고 어느 순간 고통이 없어지면서 그제야 한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혼자서 빠진 어깨를 넣게 된 계기도 병원 갈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워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물론 병원은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어깨 탈구는 저에게 고통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틈새도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상하지 못하고 대비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비집고 들어올 만큼의 틈새. 그 틈새에는 당연하게 어깨 탈구의 고통이 남기는 트라우마 같은 공포심이 비집고 들어오고 아주 촘촘히 그리고 어깨에 남은 통증만큼이나 끈적하게 흔적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지레 겁'이 생겼습니다. 피하는 운동이나 행동이 생긴 것은 당연하고 운동선수들의 훈련 장면이나 경기를 볼 때도 어깨가 빠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생겨 역도 경기 등은 안 본 지 오랩니다. 샤워한 뒤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말릴 때도 '아... 이렇게 팔을 들다가 빠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고, 옷을 벗을 때도 움찔하면서 조심스러워지고, 자다가 몸부림을 칠 때도 불안감 때문에 잠을 깰 때도 있습니다. 팔을 뻗어 마음껏 기지개해 본 지는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예고 없이 튀어나올 돌발적인 고통에 대한 공포심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평범한 움직임을 하는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늘 긴장하게 되는 것이죠.

한창 운동 할 때는 왼팔의 재활 운동도 곁들여서 하긴 했지만, 일상의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 운동을 전혀 못 하고 있는 요즘 제 왼팔은 오른팔의 운동을 그저 '거들 뿐'입니다. 옷을 갈아입다 거울을 보면 왼쪽 어깨는 오른쪽 어깨와 확연한 크기 차이가 보일 정도로 약해져 있습니다. 무쇠 팬을 들다가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무게를 느끼게 되었고, 왼팔을 뻗어야 할 일이 있을 땐 오른팔을 뻗게 되는 불편한 모양새가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코어와 균형은 틀어졌고 기분도 어딘가 삐뚤어진 것 같습니다. 행동반경이 달라졌고 양팔의 운동량 차이는 점점 벌어지게 됩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지만, 그 뭔가를 하다가도 어깨가 빠지는 고통을 겪은 뒤로는 그냥 자연스럽게 뒷걸음질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운동 부족 정도만 걱정했는데 늘어난 인대에 어깨가 빠진 뒤 남은 묵직한 고통이 쌓이듯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천천히 묘한 자괴감도 슬슬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발밑에 자포자기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딱히 피할 곳도 없습니다.

고통의 두려움과 노력과 과정의 피곤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요즘.
문제의 답을 알고 있고 팬을 손에 쥐고도 정답을 적어버리면 그다음을 해야 하는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선뜻 정답을 적지 못하는 기분, 이런 기분일까요.

그저 날이 더워 기운이 빠진 것뿐일 겁니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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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동안 혹은 한 주 동안 제가 즐겨 들었던 곡들을 모은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글을 쓰면서 떠 오른 일들에 엮인 곡들도 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롭게 발매 된 신보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된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 유튜브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APPLE MUSIC  /  SPOTIFY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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