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인생활 / 76번째 스토리-사랑하는, 도쿄의 여름

하지만 살얼음이 낀 잔에 담긴 맥주를 더욱 맛있게 마시는 저만의 비법은 정말로 지칠 때까지 여름을 겪는 것입니다.

2022.07.24 | 조회 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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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인생활 스토리

일상을 주제로 개인적이고 사소한 짧은 글을 매주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보내 드립니다.


사랑하는, 도쿄의 여름.

사실, 이 타이틀을 쓰면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도쿄는 연일 최고 기온을 갱신하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아침 9시부터 기상청에서 보내는 폭염주의보를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6시에 이미 체감온도는 30도에 육박하고 습도는 언제나 6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한창 타들어 가는 시간에는 회사에서 에어컨 때문에 차가워진 목덜미와 어깨가 떨고 있지만, 점심때 밖으로 나가면 5분도 안 돼서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있고 표정은 ‘그 누구도 나를 건들지 마라’의 아우라를 뿜고 있죠. 입고 있는 재킷의 겨드랑이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는 영업맨과 그 옆에 자기보다 더 커 보이는 비즈니스 가방을 든 신입처럼 보이는 말갛게 생긴 여자는 화장이 신경 쓰여 연신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찍어내지만 10차선 도로의, 그늘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횡단보도의 신호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해는 아침에 일찍 뜨는 만큼 일찍 지지만, 한낮의 열기로 달궈진 도시의 열기는 쉽게 식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몸속 깊은 곳까지 뜨거워진 상태에 마시는 차디찬 맥주는 꿀맛이자 독이나 다름없습니다. 퇴근 후 빠른 걸음으로 술집으로 가 자리에 앉으면서 맥주를 주문합니다. 차가운 물수건으로 손을 식힌 뒤 얼음 같은 맥주병을 쥐자마자 잔에 따라 한 잔을 단숨에 비웁니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통해 넘어가는, 탄산이 식도를 긁고 내려가는 느낌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만큼 짜릿해서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재빨리 잔을 채웁니다. 이렇게 갈증을 한 방에 날려주는 시원함과 탄산의 상쾌함에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을 마시게 되다 보니 빨리 취하게 되고, 맥주의 차가운 온도에 몸이 식는 듯하다가도 알코올 기운에 몸에 다시 열이 오르고 열대야의 축축하고 높은 기온에 더욱 뜨거워지는 몸. 그렇습니다. 술과 함께 더위를 먹게 되고 다음 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두통과 온몸으로 멀미를 겪는 것 같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여름 숙취를 겪게 됩니다.


아침의 후덥지근한 공기에 눈을 떠 보면 타이머를 걸어 둔 에어컨과 자동 시간 조절 기능이 있는 선풍기는 멈춰 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뭔가를 흘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게 되고,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물 한 컵을 한숨에 들이키고 나서야 정신이 들면서 익어서 멈춘 게 아닌가 싶은 머리가 그제야 돌아가게 됩니다. 한숨을 쉬고 팔을 천천히 들어 스트레칭을 합니다. 그저 팔을 들어 뻗었을 뿐인데 상반신은 이미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고. 미세한 파우더로 땀을 억제하는 바디시트로 땀을 닦다 이걸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샤워를 하고 나오지만, 수건으로 몸을 닦는 동안 다시 땀은 흐릅니다. 아침을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지만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절대로 불을 쓰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보지만 과일이나 토마토 등을 제외하고는 죄다 불을 써 조리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결국 식빵을 꺼내 오븐 토스터에 넣고 토마토를 씻어 자르고 캡슐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아침 준비를 시작합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이게 아니야 라고 읊조리지만, 이마에 맺힌 땀이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걸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이런 여름 아침을 벌써 10년째 맞이하고 있고 저는 여름을, 특히 도쿄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좋아합니다. 


여름에 나는 제철 과일들을 특히 좋아한다거나 테라스에서 아주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즐거움 같은 이유도 있지만 여름에만 겪을 수 있는 혹독한 계절감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보이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습니다. 몸이 약해서 보약을 성인이 될 때까지 매해 챙겨 먹고 살 정도였죠. 겨울에는 언제나 감기를 달고 살았고 손발이 차 유독 겨울을 힘들어했는데 그나마 여름은 춥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최고의 계절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는 여름에 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몸이 약하고 찬 편이라 더위를 덜 타는구나 정도의 느낌으로 살아왔는데, 어느 한여름의 체육 시간에 운동장을 뛰어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저와는 달리 다른 친구들은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옷의 등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본 저는 그게 너무나도 부럽고 멋져 보였고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소원은 옷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려 보는 것이 되었죠. 하지만 본인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보송보송한 세월을 보내고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던 해, 학교 작업 중 무거운 나무를 들다 허리를 다치게 되어 졸업과 동시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보름 정도를 누워 지냈고 절호의 타이밍을 잡으신 어머니가 챙겨준 보약을 고스란히 다 받아 마셨죠. 어머니가 알음알음으로 구해오셨다는 그 보약은 다른 보약과 달리 기름지고 진한 맛 때문에 정말 힘들었는데, 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그 약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해 겨울부터 추위를 덜 타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듬해 여름에는 드디어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엄청난 첫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늘 차가운 손 때문에 걱정하던 어머니는 난로 같은 제 손을 잡고는 너무나도 기뻐하셨고 겨울을 내복 없이 나게 되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으며 티셔츠가 땀에 젖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저의 본격적인 여름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서 한 말이지만, 도쿄의 여름은 정말 습하고 뜨겁습니다. 


습식 사우나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이런 도쿄의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그래서 좋아합니다. 여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좋다고 하면 너무 이상한가요?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에어컨을 틀지 않습니다. 집이 스미다강과 가깝고 그 강을 건너는 6차선 다리가 있는 곳이라 큰 차들이 많이 다니는 새벽 시간의 소음 때문에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지만, 낮에는 창문을 다 열고 선풍기를 틀어 간간이 부는 강바람을 즐기는 편입니다. 에어컨을 전혀 안 트는 것은 아니지만 열어 둔 베란다나 창으로 꽤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좀 더 솔직한 이유는 움직이면서 땀이 나는 것을 적당히 즐기기도 하기에 애써 흘린 땀이 에어컨 바람에 쉬 식어서 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원래도 좋아했던 여름을 이렇게 좀 더 즐기게 된 이유는 제가 있는 곳이 도쿄이기 때문이고, 도쿄의 여름을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맥주입니다.

사실 맥주는 계절과 상관없죠.


봄에 꽃이 피니 마시고, 여름에는 더워서 마시고, 가을엔 여름을 아쉬워하면서 마시다가 겨울에는 뜨거운 국물에 적격이라서 마시는 게 바로 맥주죠. 하지만 그중에서 여름 맥주는 그냥 맥주가 아닙니다. 얼음이 낀 두꺼운 잔에 가득 찬, 크림 같은 거품이 올라간 정신이 들 만큼 차가운 맥주를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바람이 선선히 부는 저녁에 열어 둔 베란다로 들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흔들 때, 잔에 맥주를 따르는 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은 적이 있다면 이미 사랑에 빠진 것이죠.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가 있다면 안주는 뭐든 상관없습니다. 다시마 육수에 하룻밤 재워 감칠맛을 입힌 가라아게든, 두껍게 잘라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먹는 목살이든, 야근에 지쳐 겨우 들린 콘비니에서 사 온 새우깡이든.

하지만 살얼음이 낀 잔에 담긴 맥주를 더욱 맛있게 마시는 저만의 비법은 정말로 지칠 때까지 여름을 겪는 것입니다.

한낮에 목덜미가 따가울 정도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돌아온다든지, 습하고 더운 공기가 가득한 도쿄의 밤을 즐기며 2시간을 걸어 퇴근한다든지, 휴일 아침에 행주들을 꺼내 뜨거운 물에 삶은 뒤 손빨래를 하며 티셔츠가 다 젖을 때까지 땀을 흘리는 식으로 지독하게 스스로 몰아친 다음 맥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계단을 겨우 올라오고 손에는 맥주 캔 뚜껑을 딸 힘만 겨우 남아있지만, 샤워를 하고 나와 샤워 전 냉동실에 넣어둔 맥주를 꺼내는 순간 모든 기운이 재충전이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여름을 사랑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열어 둔 베란다로 들어오는 조금은 끈적한 바람에 실린 희미한 스미다강의 냄새가 코끝에 느껴집니다. 거기에 샤워 후 뿌린 향수 향과 맥주 향이 함께 섞이면, 여름에만 맡을 수 있는 제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여름의 향기가 완성됩니다.

여름의 정점인 8월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데 저에게는 이것마저 여름의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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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동안 혹은 한 주 동안 제가 즐겨 들었던 곡들을 모은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글을 쓰면서 떠 오른 일들에 엮인 곡들도 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롭게 발매 된 신보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된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 유튜브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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