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인생활 / 74번째 스토리-변수

변수는 언제나 예고 없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예상과 달라지는 상황을 겪는 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2022.07.10 | 조회 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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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인생활 스토리

일상을 주제로 개인적이고 사소한 짧은 글을 매주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보내 드립니다.


사진은 지난 6월 초에 매실을 담그면서 함께 담근 레몬청입니다.

레몬청도 매실청과 함께 매년 만들던 것이었고 주로 겨울에 만들면서 생강과 함께 만들었는데 작년 한 해, 매실청과 마찬가지로 만드는 것을 쉬었습니다.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냥 조금 귀찮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올해 매실청을 만들면서 오랜만에 레몬도 다시 만들자고 생각했죠. 올해는 전과 다르게 설탕 대신 꿀을 넣었고 로즈메리를 함께 넣었습니다. 오랜만에 담그면서 뭔가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만들었는데, 결과물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처음 뚜껑을 열었을 때는 레몬 향기랑 로즈메리의 옅은 향이 섞여 나길래 기대했는데 탄산수를 섞어 마셨을 때 저의 첫 반응은 ‘어? 좀 옅은데?’ 였습니다. 레몬의 맛도 옅었고 상큼한 단맛도 기대만큼 나지 않았습니다. 레몬청이 담긴 밀폐용기를 한참을 바라보며 만드는 과정 어딘가 있었을 실수를 떠 올려 봤지만, 그런 것은 떠 오르지 않았고 과정 자체도 그럴만한 일이 일어날 만큼 복잡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여름이니까 레몬 과육이라도 어딘가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레몬청을 냉장고에 옮겨 두었습니다.

‘변수’는 어떤 상황의 가변적 요인을 의미하는 한자입니다.변수의 존재는 오차범위에 두며 그 변수가 일으킬 상황에 대해 플랜B 등의 대비를 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요리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청이나 절임 같이 적잖은 시간이 지나야 과정과 결과를 알 수 있는 경우에 상상과 다른 결과물을 마주할 때는 난감할 때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재료가 들어간 요리를 만들 때 예상 가능한 변수를 감안하고 만들었음에도 예상과 다르게 나올 때는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결과를 받아들이고 과정을 다시 찬찬히 떠 올려 봅니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그러다 보면 내면의 깊은 탄식을 단전에서 끌어 올려 나오는 ‘아...!’와 함께 실수한 부분이 떠 오릅니다. 요리는 변수의 존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수학의 결과물이기 때문이죠.

‘레시피대로 했다면 다른 맛이 날 수가 없어요’


NHK 오늘의 요리 요리연구가는 화사하고 인자한 얼굴로 미소를 띠며 저 말을 했습니다. 제일 무서운 말이죠. 게다가 이 말은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 그 어떤 말로도, 그 어떤 상황으로도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레시피대로 했는데 그 맛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딘가 어떤 과정에서 해 오던 버릇이 나와서 본인도 모르는 순간에 그 과정을 살짝 틀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요리할 때 늘 긴장했습니다. 제대로 된 방법을 익혀두지 않으면 나쁜 버릇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 만들어보는 요리는 반드시 레시피의 정량과 방법을 따랐습니다. 저 또한 레시피를 만들어 본 적 있기 때문에, 레시피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계산적으로 치밀해야 하는 일인지를 알기 때문이죠. 소금의 양과 간장의 양을 왜 이 양으로 정해야 하는지, 왜 이 타이밍에 기름을 부어야 하는지 등을 숫 자로 보여줘야 하고, 그 숫자들은 맛으로 설득력을 얻어야 합니다.

레시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떠 오르는 만화 ‘천재 유 교수의 생활’의 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어느 날 유 교수의 부인이 너무 아파서 식사를 만들 수 없게 되자 유 교수는 부인의 만류에도 부인을 위해 밥을 하기로 합니다. 유 교수는 부인이 보던 요리책에서 메뉴를 정해 살 것들을 메모한 뒤 장을 보러 갑니다. 하지만 정어리를 구매하는 곳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힙니다. 요리책의 레시피에 나와 있는 정어리의 무게와 파는 정어리의 무게가 달랐던 것이죠. 게다가 두세 마리를 묶어 파는 것을 본 유 교수는 여기저기를 들려 원하는 정량의 정어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고 예상치 못한 ‘정량’의 현실감에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집으로 돌아와 재료들을 장만하고 조리하는 과정에서도 유 교수 특유의 치밀함과 예민함, 그리고 익숙지 않은 조리과정의 설명에 대한 의문들이 지면의 말풍선에 가득했고 레시피에 충실하려던 유 교수에게 대충 하라는 부인의 말은 그를 더욱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 장을 봐 온 유 교수는 결국 자신이 만든 요리는 먹지도 못한 채 식탁을 차린 뒤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초저녁잠을 자고 나온 부인은 식탁에 차려진 정어리 정식을 보며 ‘겨우 이거 하느라 하루를 보낸 것’을 기가 차 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를 먹었을 때는 정말 맛있다고 했습니다.

생전 요리를 안 하는 사람이 아픈 부인을 위해 만든 요리라는 것을 감안해서 대충 만들어도 맛있다고 했을 거라는 생각은 만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레시피대로 했거든요.

유 교수가 요리 할 때 레시피를 보면서 가진 의문은 저 역시 겪은 적이 있습니다.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지금에서야 저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잘 알지만,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는 경우에는 ‘투명’에 대한 보편적 시각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혼란에 빠집니다. 누군가가 할 때 옆에서 보거나 동영상을 볼 때 ‘이렇게 투명해질 때까지’ 라는 코멘트와 함께 그 모습을 확인한다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투명한 양파’와 ‘투명한 소면’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료들이 가지는 크기의 정의에도 혼돈이 옵니다. 주먹만한 감자, 버섯 한 줌 같은 설명이 나올 때는 저같이 손이 작은 사람은 저의 주먹이나 한 줌보다 15% 정도 더해서 준비해야 하나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양파 1개보다는 양파 30g이라고 적힌 레시피를 좀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양파가 좀 더 넉넉하게 들어가거나 조금 적게 들어가도 별문제가 없는 경우에 저런 표기를 할 때도 있는데 가장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레시피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양파 1개의 일반적인 사이즈 보다, 남들 보다 작은 제 손 사이즈가 바로 요리의 변수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구체적으로 ‘이만큼!’이라고 알려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변수의 존재는 될 수 있으면 가까이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어떤 상황의 가변적인 요인이라는 변수.변수는 언제나 예고 없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예상과 달라지는 상황을 겪는 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지는 결과 역시 좋을 리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여러 차례 연속으로 겪다 보면 다시 자세를 추스를 힘이 남아있지 않고 저에게는 방향 없는 불신만 남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손에서 놓게 되고 상황에서 멀리 도망갈 궁리만 하게 됩니다. 언제쯤 변수에 대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변수였던 때가 생각났습니다.‘내 인생에 변수’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런 멍청한 질문을 했었죠.

좋은 쪽이야? 나쁜 쪽이야?

답을 듣진 못했지만, 제가 답을 정해버렸기 때문에 어떤 쪽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쉬운 레몬청을 두고 변수에 대해 생각하다 유연한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좀 더 능글맞게 자신의 상황을 변명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아쉬운 레몬청을 그럴싸하게 먹을 수 있게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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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동안 혹은 한 주 동안 제가 즐겨 들었던 곡들을 모은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글을 쓰면서 떠 오른 일들에 엮인 곡들도 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롭게 발매 된 신보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된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 유튜브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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