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인생활 / 73번째 스토리-포테토칩

2022.06.26 | 조회 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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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인생활 스토리

일상을 주제로 개인적이고 사소한 짧은 글을 매주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보내 드립니다.


그동안 쓴 글들의 적잖은 공통점이 어떤 명제로 시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진행되면서 그 명제를 뒤집는다는 점도.
글을 쓰면서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점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도 말이죠.

전 사람들에게 과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콘비니에 갈 때마다 서너 봉지의 과자를 들고나온 적도 없고, 영화를 볼 때도 과자를 먹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극장을 안 간 지 2년이 넘었지만, 그 전 언젠가부터 극장에서 팝콘을 먹는 일이 없었습니다. 팝콘을 먹을 때 나는 소리도 신경 쓰였지만, 팝콘을 한 줌 먹고 나면 휴지로 손을 닦는 버릇 때문에 극장에서는 팝콘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화 볼 때 맥주를 마시기 때문에 팝콘 대신 비프져키를 먹곤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저에게 과자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을 했는데 오늘 이 글을 쓰기로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전 거짓말을 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아하는 과자의 폭이 좁은 것뿐이지 결코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자, 그중에서 동맥경화 과자라고 하는 유탕 과자를 가장 좋아하고 그중 제일 많이, 자주 먹는 과자는 새우깡과 도리토스 그리고 포테토칩입니다. 지금은 줄었지만 한때 새우깡에 빠졌을 때는 새로운 맛이 나오면 다 사 먹을 정도였고, 맥주도 없이 맨입으로 한 봉지를 다 먹곤 했습니다. 지금 대충 기억나는 것들만 헤아려봐도 10종이 훌쩍 넘을 정도입니다. 과자 하나에 수십 개의 '바리에션'을 만들어내는 일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죠. 그리고 도리토스는 오리지널 칠리 맛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상하게 도리토스는 다른 맛은 손도 대지 않았고 오직 오리지널 칠리 맛만 먹는데 주로 야근할 때 먹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아작거리는 식감과 소리로 스트레스를 풀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지 야근할 때는 과자 먹는 소리가 적잖게 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포테토칩.

포테이토 칩이라고 하거나 감자 칩이라고 하면 왠지 그 맛이 달라지는 기분입니다.
짧게 포테토칩.
일본에 와서 살기 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포테이토 칩을 포테토칩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정확한 발음을 하기 싫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포테이토라고 하면 버터가 잔뜩 발린 '프테이로' 같은 발음이 떠 올라 그냥 포테토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이라는 것 잘 알지만, 고칠 생각이 없네요. 그냥 포테토.

제가 처음 포테토칩을 접한 것은 엄마가 깡통시장에서 사다주신 미제 과자 '프링글스'였습니다. 기다란 종이 통에 담긴 과자라니! 게다가 너무나도 미제의 그 맛. 한 통을 다 먹고 나면 미친 듯이 물을 마셔야 했지만, 프링글스는 정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칩의 세계에 빠졌고 지금까지 칩 종류의 과자는 꽤 사 먹었지만 꾸준하게 좋아하는 것은 역시 포테토칩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감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찐 감자는 먹지 않고, 수제비에 감자 넣는 것을 싫어하며 감자 볶음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
감잣국은 국물만 먹고 감자를 건져 먹은 적은 없습니다. 감자를 싫어했기 때문이죠. 고구마와 달리 어떤 맛을 느낄 수 없었던 감자가 싫었습니다. 감자전을 처음 먹었을 때는 대학 때였습니다. 선배들과 주점에서 술을 마실 때 막걸리와 감자전을 먹었는데 막걸리도 싫어했고 감자도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먹었죠. 그런데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마 양념 맛으로 먹었겠지만, 감자로 만든 요리를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먹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햄버거 세트에 곁들여 나오는 감자튀김을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감자의 새로운 맛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쓰니 제가 좋아하는 감자요리들은 주로 튀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베큐를 할 때도 감자구이를 꼭 챙겨서 하지만 제가 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감자전 역시 '전'이라고 썼지만, 정확하게는 감자 페이스트(?)를 얇게 펴서 기름에 튀겨 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끔 감자구이를 할 때도 있지만 넉넉한 기름에 튀기듯 구워내서 먹습니다.

예전에 잠깐 만났던 사람이 저의 이런 감자요리 편식에 대해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튀김 온도인 180도의 기름에 감자를 튀겨내면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지금 검색 해 봤습니다)가 생기니까 절대로 튀긴 감자를 먹지 말라고. 사실 발암물질의 이름까지 말하진 않았지만 어떤 이의 기호식품에 발암물질 운운한 것이 꽤 거슬려서 기억에 남은 것 같습니다. 저 발암물질의 이름을 찾기 위해 구글에서 검색하다 보니 '굳이 감자튀김을 먹어야 한다면 160도 이하의 온도에서 튀겨 먹어라.'는 의학 전문가의 조언도 봤습니다. 역시 의학 전문가들은 요리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160도 이하에서 튀기는 것은 그냥 감자를 기름에 적셔서 먹는 것과 같고 건강을 생각한다면 튀김을 먹지 말아야죠.

오늘 도쿄의 날씨는 35도, 체감온도로는 39도를 찍었습니다.
이런 날씨에 빨래를 한 뒤 오랜만에 달걀말이와 생선구이를 곁들인 정식을 차려 먹었고 그동안 미뤄 둔 화분 갈이와 베란다 청소를 했습니다. 바람이 꽤 불었지만 60%에 가까운 습도와 뙤약볕 때문에 티셔츠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습니다. 탄산수로 레모네이드를 해 먹을까 하다 마침 지인이 준 북해도산 포테토칩이 냉장고에 붙어있는 것을 봤습니다. 아, 이건 맥주랑 먹어야죠. 아몬드가 들어있는 트뤼프 맛 큐브 포테토칩이었는데 아주 맛있었습니다. 맥주 한 캔을 비운 뒤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부엌으로 갔는데 마침 지난주에 사다 둔 메이플 알감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포테토칩!

감자 네 개를 씻어 슬라이서로 얇게 슬라이스를 한 뒤 흐르는 물에 씻어 전분기를 제거합니다.
10분 동안 물에 담가두는 시간이 아까웠거든요. 씻어 낸 감자는 키친타월에 올려 물기를 제거합니다. 그동안 구글에서 감자 칩 만드는 최적의 온도를 찾아 봅니다. 165도에서 2분 30초. 하지만 저는 튀김은 무조건 두 번 튀기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일단 튀겨보고 튀겨진 감자의 색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두껍게 깔아 둔 키친 타올 덕분에 감자의 물기가 거의 말랐습니다. 기름 냄비에 온도계를 꽂고 불을 붙입니다. 그리고 소금과 제가 좋아하는 갈릭 시즈닝과 레몬필이 들어간 페퍼를 꺼내 놓습니다. 온도계의 바늘이 160을 지날 때 감자를 넣고 타이머를 켭니다. 쏴아-. 하, 기분 좋은 튀김 소리. 젓가락으로 감자들을 휘저으며 색을 봅니다. 2분이 지나도 색이나 모양의 큰 변화가 없길래 한 번 더 튀기는 것으로. 165도에서 감자들을 2분간 튀겨낸 뒤 180도에서 30초 정도 더 튀겼습니다. 그제야 제가 원하는 색과 모양이 나왔죠. 감자를 건져내 기름을 뺀 뒤 키친 타올을 깐 바트에 넣고 소금과 시즈닝, 레몬 페퍼를 넉넉하게 뿌립니다.

식탁에 얼마 전 선물로 받은 리넨을 깔고 포테토칩이 담긴 바트와 맥주를 올립니다.
포테토칩의 맛이 너무 궁금해서 먼저 먹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잔에 맥주를 따릅니다. 급한 마음이 옅은 맥주 거품으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심호흡을 하고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킵니다. 그리고 포테포칩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손에서 느껴지는 두께감과 그 촉감.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그 느낌은 맛으로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동안 사 먹은 포테토칩의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 적절한 튀김 온도와 시간 덕에 무겁지 않은 기름 맛이 감자를 담백하게 만들었고 절묘하게 뿌려진 소금, 그리고 페페론치노와 마늘이 옅고 기분 좋은 매운맛을, 상큼한 레몬 향이 은은하게 퍼진 레몬 페퍼는 그야말로 킥이었습니다.

체감온도 39도의 폭염에 불 앞에 서서 튀겨낸 포테토칩.
프링글스를 뛰어넘은 인생 포테토칩을 만난 이 기분은 오늘 같은 폭염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땀 흘려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은 언제나 짜릿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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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동안 혹은 한 주 동안 제가 즐겨 들었던 곡들을 모은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글을 쓰면서 떠 오른 일들에 엮인 곡들도 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롭게 발매 된 신보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된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 유튜브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APPLE MUSIC  /  SPOTIFY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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