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철] 여유와 무게

하우스 오브 구찌 (2021)

2022.01.22 | 조회 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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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영화감상문

매주 토요일 영화리뷰 연재

    마우리치오 구찌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우리치오 구찌가 흥미로운 인물이라기보다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한 <하우스 오브 구찌> 속 마우리치오 구찌가 흥미로운 인물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나는 마우리치오에 관해 <하우스 오브 구찌>에 나오는 것 이상의 정보를 알지 못한다. 그가 실제로도 얼마큼 흥미로운 인물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아담 드라이버. 아담 드라이버는 마우리치오가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와 무관하게 마우리치오를 흥미롭게 만든다. 여러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유독 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그가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담 드라이버에게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우리치오 구찌를 흥미롭게 만든다. 

    아담 드라이버의 마우리치오 구찌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당황하는 일은 있지만 결코 불안해하지 않는다'였다. 마우리치오는 구찌 가문의 부와 명예를 탐내는 아내 파트리치아의 술수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아내가 부추기는 바람에 보고 싶지 않던 삼촌의 생일잔치에 가게 되고, 참여하고 싶지 않던 회사 경영 일선에 참여하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혹은 바라지 않았던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마우리치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내 지어 보이는 미소에 있다. 당혹스러운 순간마다 당혹감을 감추려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같지만, 오히려 온 얼굴에 미소가 완연해서 애써지어 보이는 웃음처럼 보이지 않는다. 당황과 안심의 미소를 양 무게추로 놓고 적절히 기울여가며 동요하는 내면의 외줄 위에서 중심잡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이전 작품들에서 기억하는 아담 드라이버는 이렇게 많이 웃어 보이지 않았다. 카일로 렌은 언제나 정체성을 고뇌하느라 웃을 일이 없었고(<스타워즈 시퀄>), 패터슨은 시상을 속으로 집어삼키느라 생각에 잠긴 표정이 대부분이었다(<패터슨>). 찰리는 이혼 소송을 하느라 당연하게도 웃을 여유가 없었고(<결혼 이야기>), 코미디언 헨리 맥헨리는 정말 괴팍하게도 남을 웃기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아네트>). 거의 모든 작품에서 거의 무표정한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마치 에너지를 내면으로 삼키고 거대한 체구에 담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하우스 오브 구찌>의 마우리치오는 아주 자주 웃어 보인다. 덕분에 나는 아담 드라이버의 웃는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는 첫 기회를 맞이했다.  

    '당황하는 일은 있지만 결코 불안해하지 않는다.' 얼굴에 당황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 뒤에 보이는 웃음임에도, 마우리치오의 얼굴 위 완연한 미소는 흔들리거나 떨리는 법이 없다. 일단 미소가 지어지면 그대로 온전하다. 삼촌 알도 옆에서 관심 갖고 싶지 않은 주제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불편해하다가도 미소를 짓고, 그렇게 불편한 표정과 미소를 몇 차례 번갈아 짓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때마다 근육이 떨리거나 일그러지는 법이 없다. 나는 마치 마우리치오가 완벽하게 웃는 법을 배우고 훈련받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담 드라이버의 웃는 얼굴에서 세로로 길게 나타나는 보조개가 더욱 그의 얼굴 모든 부분에 미소가 지어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 미소가 마우리치오가 놀라면서도 그것이 불안의 상태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마우리치오는 쉽게 중심을 회복한다. 파트리치아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고도 금방 차량 정비공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하고,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되는 것을 불편해하다가도 파트리치아의 임신 소식에 표정이 밝아진다. 아담 드라이버의 거구의 육체에서 나오는 것일지 몰라도 자신의 무게중심을 정확하게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담 드라이버의 긴 팔다리와 두꺼운 몸통은 조금은 느리게 움직이는 듯하면서 그것에 실린 무게를 의식하게 만든다. <패터슨>에서는 일상의 예술가의 사색이 담긴 걸음걸음을 눈앞에 보여주며, <결혼 이야기>에서는 무거운 팔다리의 움직임이 긴장감을 자아내 찰리의 불안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담 드라이버는 항상 자신의 몸에 실린 무게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만 같다. 마우리치오의 경우 구찌 가문이라는 배경에서 왔으리라 추측되는 그의 여유를 잘 잡힌 무게중심을 통해 보여준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출발해 다시 그 장면으로 되돌아오는 이야기다. 마우리치오 구찌는 파트리치아가 보낸 청부살인업자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이미 벌어진 역사적 사실이다. 카페에서 신문을 보다가 뭔가 알겠다는 듯 웃어 보인 뒤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하는 마우리치오의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음을 우리는 첫 장면을 보면서 알지 못한다. 마우리치오 구찌는 결국 아담 드라이버의 육체 위에서 완성되었다. <하우스 오브 구찌> 속 마우리치오의 미소는 아담 드라이버의 미소와 동치 한다. 이전까지 나는 항상 아담 드라이버가 자신의 커다란 신체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를 아는 배우라고 이야기했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어졌다. 아담 드라이버는 자신의 육체의 무게에 무엇을 실어 나를 수 있을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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