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철] <놉>과 서부적 공간

놉(2022)

2022.09.03 | 조회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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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영화감상문

매주 토요일 영화리뷰 연재

*<놉>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서부극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자꾸 서부극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근래의 할리우드에는 계속해서 서부가 소환되는 중이다. 송형국 평론가가 지적하듯,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 <로스트  더스트>(2016), <퍼스트 카우>(2019), <미나리>(2020), <노매드랜드>(2020) <뉴스 오브 더 월드>(2020) 등이 그렇다.(송형국. '퍼스트카우'를 계기로 본 미국 서부영화의 새 흐름) 이 목록에 <로건>(2017)과 <파워 오브 도그>(2021) 역시 추가할  있을  같다. 근래의 할리우드가 자꾸만 서부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리우드의 서부 소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때문에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같다. 더불어 각각의 영화가 서부를 소환하는 이유 역시 다르다. <퍼스트 카우>는 미국 개척사를 다시 쓰기 위해 서부를 불러왔고, <미나리>는 이민자가 미국 땅에 정착하는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가장 미국적인 이야기인 서부를 불러왔다. <노매드랜드>는 오늘날의 미국에도 서부의 미개척지 같은 척박한 황야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서부적 공간을 소환했고, <파워 오브 도그>는 가장 마초적이었던 시대와 공간 속에서  마초성의 균열을 포착하기 위해 서부를 불러온다. 이처럼 할리우드가 서부를 불러온다는 경향은 존재하지만, 각자가 서부를 불러온 자리에 재현하고 있는 것들은 각기 다르다. 이런 경향을 한 번 더 강화하기라도 하듯, 조던  감독의 <놉> 역시 서부를 소환한다. 그렇다면 <놉>이 서부를 불러온 이유는 무엇일까.

    <놉>에는 서부극의 이미지를 테마파크화한 공간이 등장한다. 주프가 운영하고 있는 테마파크인 Jupiter's Claim이 바로 그 공간이다. 주인공 O.J.와 여동생이 운영하는 목장에서도 서부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테마파크가 서부극의 클리셰와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보인다면, 헤이우드 목장은 비교적 간접적인 수준이다. 목장에는 서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 있고, 목장 앞으로는 드넓은 평원과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다. 이쪽을 보나 저쪽을 보나 <놉>은 서부의 이미지로 외관을 두르고 있다. 외관의 이쪽저쪽을 모두 서부극으로 채운 것뿐만 아니라 <놉>은 서부극의 모티프들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놉>의 중심 서사는 결국 거대한 생명체인 진 재킷으로 대표할 수 있는 자연과 그것을 문명의 힘을 통해 포착하려고 하는 인간의 대립으로 읽을 수 있는데, 인간과 자연의 대립은 많은 서부극 연구자들이 흔히 고전 서부극이 가진 주제의식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요한 장면의 긴장감이 서부극을 닮아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본 다른 친구에게 <놉>을 서부극이라고 할 수 있을지 물었을 때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정확한 순간에 쏴야 한다는 점이 같"다는 것인데, 우물 속 카메라의 정확히 위를 지날 때 진 재킷을 찍어야 한다는 점에서 서부영화와 닮았다는 것이다. 서부영화에 대해서 잘 알고 내놓은 답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주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과 총을 쏘는 것, 둘 다 영어로 shoot이라는 점은 <놉>에서 중요한 상징이 된다. 또 해당 장면은 우물의 정확히 위를 지난다는 점에서 서부극에 등장하는 high noon을 떠올리게도 한다. 여러모로 <놉>은 서부극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놉>을 서부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성역화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서부극이 될 수 있는 자격이나 지위를 인정한다고 할 수도 없기에 주제넘은 발상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선뜻 <놉>을 서부극이라고 부를 수가 없을 것 같다. 서부극을 이 영화에 소환한 이유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조던 필이 <놉>에 서부극을 불러온 이유는 다소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서부극은 영화사에서 가장 먼저 장르화 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등장한 멜로드라마가 있지만 멜로드라마는 장르라고 부르기엔 통속극 전체를 아울러 부르는 표현에 가깝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착되고 장르라는 것을 할리우드가 발명할 즈음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서부극이다. 조던 필이 <달리는 말>을 위시해 영화사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음은 자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화사의 첫 번째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서부극이 소환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공동체를 위협하는 악으로 상정했던 초기 서부극은 영화사에서 배제된 이름들을 조명하겠다는 조던 필의 기획과도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거기에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활동사진이 달리는 말을 찍은 것이고, 달리는 말의 이미지는 곧장 서부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까지, 조던 필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모든 것이 너무나 부합하고 있다. 

    <놉>을 서부극으로 말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은 여기에 있다. 조던 필의 영화는 보는 동안 감독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조던 필의 영화는 온갖 군데에 상징이 들어가 있으며, 그 모든 상징을 읽어낼 때 비로소 감독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대한 크리처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잡아먹는 서부극을 찍고 싶었다' 같은 얘기를 조던 필이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조던 필의 작업은 언제나 그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실존하는 사회적 공포, 이를테면 인종차별과 같은 공포를 호러영화에서 다뤄지는 공포의 질감으로 환원하는 것이 조던 필의 작업이다. <놉>까지 세 편의 장편 영화가 나오는 동안 모든 영화가 그랬다. 여자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몸을 빼앗길 뻔 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겟 아웃>을 만든 것이 아니고,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 그중에서도 흑인의 육체를 칭찬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이뤄지는 인종차별을 공포로 다루기 위해 <겟 아웃>을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너무 지나친 비약이거나 감독의 의도를 마음대로 단정 짓는 것일까? 그렇다기엔 조던 필은 과할 정도로 상징 요소를 많이 집어넣는다. 대부분이 서사 내적으로 기능하는 상징이 아니라 서사 바깥의 현실과 조응하는 상징 요소라는 점이 이런 주장에 더욱 힘을 싣는다. 

    그렇기에 <놉>은 서부를 소환해 그곳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작업이 된다. <놉>에서 서부극은 상징으로만 존재한다. 영화사 최초의 장르,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장르,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다루는 장르. 과하게 표현한다면 정해진 수식어들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채우는 것에 가깝다. 실존하는 서부의 공간이나, 혹은 원형적이고 환원적으로 서부가 상징하는 공간이 아니라, 상정된 서부의 상징들이 <놉>의 배경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들이 바로 <놉>을 서부극이라고 말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영화에 상징이 많은 것이 문제도 아니고, 현실세계의 메시지를 심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다만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것 같은 영화를 보는 일은 다소 피곤하다. 씨네21 송경원 기자가 남긴 "영화, 그 미지의 매혹과 두려움을 향한 경배. 부분적으로 아름답고 전체적으로 피곤하다"는 단평에 적극 동감한다. 영화 뒤에 메시지가 있어서 피곤한 것이 아니라 영화 뒤의 메시지를 읽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놉>은 서부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서부극에 관한 영화이거나 영화사, 혹은 찍는 것 그 자체에 관한 영화라는 메타적 위치에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놉>이 서부를 소환한 자리에서도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서부라는 공간이 텅 비어있다는 사실. 이따금씩 <놉>은 텅 빈 하늘이나 평원을 비춘다. 어렴풋이 녹색 빛이 보이며 구름 뒤로 진 재킷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는 것에 가깝다. 아무것도 없는 미개척지, 서부를 바라보는 시선. 미개척의 황야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 어린 공포를 <놉>의 서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부의 물리적 실체를 소환한 자리에서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서부적 공간이 갖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서부의 공간은 전진해나가는 미국 개척사에서 정복대상이고, 정복된 과거라고 할 수 있다.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이들이 개척사에서 배제되고 남겨진 흑인과 동양인 같은 소수자라는 사실 역시 주목할만하다. 이 역시 조던 필 감독이 의도적으로 서부적 공간을 배제된 이들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고 보기보다는, 비주류의 존재와 서부를 끌어오는 과정이 따로 일어났지만 우연과 같은 조우가 만들어낸 새로운 화학작용이라고 생각한다. 비주류의 존재를 그리는 것은 그가 반복적으로 영화에서 주제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서부극을 활용하기보다 한참 앞서 결정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조던 필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과 닮았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그는 화면에 보이는 것 뒤에 외부와 맥락을 같이 하는 상징이 존재하는 것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구름 뒤에 슬쩍 비치는 진 재킷의 녹색 불빛처럼 말이다. 평범한 하늘처럼 보이는 화면에서 옅은 녹색 빛을 찾는 일은 다소 피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실체를 동반하는 영화의 화면에는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힘을 갖곤 한다. 그런 점이 피곤함을 감수하더라도 조던 필의 영화를 보러 가게 만드는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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