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 상상하고 연민하는 시선

브로커 (2022)

2022.07.04 | 조회 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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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영화감상문

매주 토요일 영화리뷰 연재

‘브로커’는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선악을 흐리는 복합적인 인물 설정과, 그러한 인물들 간의 특이한 관계 설정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의, 심지어는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점차 마음을 열고 대안가족을 형성하는 구조는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또 주인공 소영(이지은 분)이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어머니 버전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히로카즈는 인간의 입체성과 선악의 혼재를 꾸준히 이야기해왔다.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자식들을 유기한 엄마 케이코에게도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장면을 부여하고, ‘어느 가족’에서는 법적·도덕적으로 잘못된 일들을 저지른 인물들 각각의 사연을 온정적인 시선으로 비춘다. ‘브로커’ 또한 아동 인신매매, 성매매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연관된 인물들을 도덕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에게도 평범한 일상과 연한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관조하는 데 시간을 들인다. 작중에서 소영은 "부산의 성매매 여성이 남성을 살해하고 도망가던 중 아기가 방해가 되자 베이비박스에 버림"이라고 자신의 사연을 씁쓸하게 요약한다. 이는 히로카즈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기사에선 한두줄로 납작하게 요약될 개인의 삶을 복원 혹은 상상해보는 것. 어떤 사람에게든 고유한 세계와 삶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 그러니까 영화에서 상상한 누군가의 삶이 실제와는 다를지언정, 그 삶을 상상해보고 가늠해볼 수 있는 시선을 키우는 것 자체가 히로카즈 영화의 궁극적인 소망이 아닐까.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선악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이 굉장한 섬세함을 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범죄나 생명과 관련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러한 작업에 있어 호평을 받아왔던 감독이나, ‘브로커’에서는 그 작업이 매끄러웠는지 의문이다. 가령 영화 후반부에 아동 인신매매를 추적하던 이형사(이주영 분)를 통해 발화되는 “사실 우리도 브로커하고 다를 바가 없잖아요?”라는 대사는 납득되지 않아 몰입을 깬다. 그런 대사가 나오기까지 영화에서 쌓아올린 맥락과 서사가, 정작 그 대사와는 핀트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수진(배두나 분)과 이형사는 아동 인신매매 현장을 잡기 위해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 소영 일당을 따라다닌다. 이 과정에서 수진은 현장 검거를 위해 오히려 어서 거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정보들만으로 ‘브로커’인 상현·동수와 이를 검거하려는 수진·이형사가 갖는 양심의 무게와 결은 ‘다를 바 없다’고 얼버무릴 수 없이 다르다.

영화에서 가장 문제적인 대사 중 하나는 소영이 ‘버릴거면 왜 낳았냐’고 묻는 수진에게 ‘낳아서 버리느니 낳기 전에 죽이라는 거냐’며 화를 내는 장면이다. 소영을 연기한 배우 이지은은 해당 대사를 읽고 이것이 소영 개인의 생각인지 영화의 주제인지 감독에게 질문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소영 개인의 생각이라는 답변과 영화에 필요한 이유에 대해 납득되는 설명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인터뷰에서 히로카즈 감독은 수진이 하는 ‘버릴 거면 낳지 말아야지’ 라는 말이 아이를 버리는 어머니를 향한 ‘편견’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영화가 나아가는 동안 그런 수진의 편견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고 밝혔다. 소영과 수진의 대립은 겉으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인물들의 대등한 대립이다. 그러나 '브로커'는 소영의 사연을 조명하며 그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동시에 수진이 스스로의 '편견'을 일정 부분 돌아보고 변화하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다. 이러한 구조상, 영화가 소영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감독은 범죄가 오로지 개인의 문제와 책임으로만 여겨지는 풍조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밝혔다. 그는 영화 속에서 어떤 사건을 조명할 때, 상황적이고 사회적인 요인을 고려하고 찾아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범죄는 용인될 수 없는 잘못이지만, 그럼에도 범죄자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아이를 팔려고 하던 상현이 극 후반에는 우성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로 인해 우성은 무사했으나 상현은 그 앞에 다시 나타나지 못한다. 범죄를 묵인하지는 않되 범죄자의 삶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상현의 경우에는 딸과의 에피소드가 인물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월미도에서 딸을 만난 상현은 친근하게 말을 걸기 위해 노력하지만 딸의 반응은 무심하다. 다음날 우성을 팔아 벌 돈을 생각하며 ‘큰 돈이 생길 테니 다시 엄마랑 셋이 살자’고 말하는 상현에게, 딸은 “돈은 됐으니까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라고 엄마가 말했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상현은 한 입도 먹지 않은 팬케이크와 함께 남겨진다.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왔던 가족을 완전히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그는 망연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상현에게 곧바로 이입하기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다. 앞선 대사들을 보면 상현은 도박빚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아동 인신매매로 돈을 버는 상황이다. 그는 ‘제니퍼’를 언급하며 성매매를 암시하는 이야기를 하고, 이를 동수에게도 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상현은 기존의 가정 내에서 육아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가족 구성원이자 아이의 보호자로서 돌봄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상현이 가정을 잃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영화의 시선만큼 따뜻한 연민을 품을 수 없었다. 공감할 수 없는 연민으로 인한 온도차는 나를 영화로부터 튕겨나오게 했다.

‘브로커’는 유독 감독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많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클라이막스의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직접적인 발화는 호불호가 갈렸다. 감독은 취재하는 과정에서 ‘생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어서 이러한 직접적인 대사를 넣었다고 밝혔다. 의문점은 감독의 강한 자기주장이 언제나 영화를 망치는가이다. ‘브로커’에 맹점이 있다면 감독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서라기보다, 영화가 그 목소리를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되 미화하지 않기 위해서 중립적인 위치를 점하는 듯 보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의견을 가장 두드러지는 방식으로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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