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철] 기억의 찻잎을 우리는 시간

애프터 양 (2022)

2022.06.11 | 조회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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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영화감상문

매주 토요일 영화리뷰 연재

SF는 언제나 인간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첨단의 첨단을 향해 나아가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 개념의 뿌리를 뒤흔들어놓으려 할 때, 인간은 무엇을 대답해야 하는가? 특히 휴머노이드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이 인간인가에 관한 직설적인 질문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더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의 관점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무엇이 우리에게 기억이 되는가, 그리고 기억은 우리를 무엇으로 만드는가. 코고나다 감독은 휴머노이드 '양'의 메모리에 담긴 기억을 단서로 존재에 관한 질문을 이어간다. 

영화의 가장  장면은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가족사진을 찍는 카메라에  명의 가족이 자리를 잡고는 카메라 뒤에서 카메라를 조정하고 있는 양에게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말한다. 양은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다시 한번 가족들의 손짓이 이어진다. 가족의 마지막 구성원까지 자리를 잡은  찰칵. 양이 고장 나고 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이야기지만,  기종의 휴머노이드들은 어떤 기준에 따라 3초간 어떤 순간들을 녹화해 남기고 있었고, 양이 사진을 찍으려다 멈칫한 순간 역시 양이  3초짜리 기록을 남기기 위한 순간이었다. 영화의 가장  장면은 우리가 기억을 남기는 과정과 닮아있다. 양이 3초의 기록을 남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3초의  뒤를 모두 담아낸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사진을 찍는 사진기의 시점으로 되어있다. 분명히 분절이 없는 하나의 쇼트로 되어있지만, 양이 카메라 안에 들어가기 전후를 기점으로 쇼트를 나눠볼 수도 있을  같다. 양이 사진기의 프레임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장면은  양의 시선이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는 사진기의 시선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기억을 회상할  자주 3인칭의 시점에서  기억을 재구성하지 않나? 특히 사진을 보고 기억을 떠올릴 때는 더더욱. 양과 가족들을 찍고 있는 사진기의 시선은  회상의 시선이다. 나와 가족들이 사진을 찍던 날의 기억. 그리고  기억 속의 .

기억을 회상하는 것은 단순히 기억을 다시 불러와 재생하는 것이 아니다. 파일을 연다는 뜻의 명령어인 open으로 양의 메모리를 재생할 수 없는 것은 그 이유일 것이다. 가족사진을 찍었던 기억은 가족의 아버지인 제이크에 의해 한 차례 더 재구성된다. 양의 메모리에 저장된 영상들을 돌려보던 중 가족사진을 찍던 날의 기억을 발견하고 반복 재생하며 제이크는 그날 자신의 기억을 돌아본다. 한 번은 양의 시점에서, 한 번은 제이크의 시점에서, 그리고 또 옆에서, 기억은 다각도로 반복 재생된다. 그러면서 제이크는 그날의 양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양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양의 또 다른 기억을 살펴보다 제이크는 차에 관한 기억에서 멈춰 그때 양과 이야기를 나눴던 자신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미 한차례 본 영화를 다시 보며 다음 대사를 미리 얘기하듯 이따금씩 제이크의 입으로 다음 말을 먼저 이야기하는 보이스오버는 이 시퀀스가 회상임을 강조한다. 양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그 기억들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동안 제이크의 양에 대한 감정은 점점 복잡 미묘해진다. 

제이크의 아내 카이라 역시 그렇다. 양과 함께 나비 박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을 되짚어보게 되고, 제이크처럼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들 부부에게 양이 처음부터 아들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는 없다. 처음엔 딸아이인 미카가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 실속과 가성비를 챙기며 리퍼비쉬로 구매한 휴머노이드였다. 딸아이와 훌륭하게 정서적 교감을 했고, 기대 이상의 역할이 되어주었지만 한 번도 이들은 양이 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처음 양이 고장 난 뒤, 제이크와 카이라는 다소 건조하게 양의 수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양의 기억장치를 열어보기 위해 연구소에 찾아가 양의 몸을 기부해줄 것을 조건으로 들었을 때 역시 제이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에 말미에 이르러 제이크와 카이라는 양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양의 기억들과 자신들의 기억을 돌아보며, 실은 양이 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뿐이지 이미 양은 가족의 일원이었음을 제이크와 카이라는 그제야 인식하게 된다. 한편 처음부터 양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미카다. 모두가 잠든 밤, 양과 미카가 접붙임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 전원이 꺼진 양이 꾸는 꿈인지, 미카가 꾸는 꿈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미카는 양의 메모리를 들여다보지 않고도 양과의 추억을 회상한다는 것이다. 미카에게 양은 이미 함께 추억을 쌓아온 가족이었다. 

미카와 양이 접붙임에 관해 나눈 대화는 영화가 다른 한편으로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카의 뿌리는 중국이지만, 지금은 미국인이다. 양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설정된 휴머노이드다. 그렇다고 그것이 양을 중국인으로 만들어줄까? 양이 또 다른 휴머노이드 에이다와 나눈 대화 중 양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아시아계의 기준은 뭘까?" 양은 중국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아시아인의 외형을 본떠 만들어졌다. 그럼 양도 아시아계 미국인일까? 또 다른 한편에서 제이크와 차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양은 자신에게도 차가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양은 자신에게 매 순간 새롭게 다가오는 감각들이 혼란스럽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은, 하나의 멜로디 같은 것" 양의 메모리에 기록된 노래의 소절은 양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양이 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다. 양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무가 없으면 있음도 없다." 양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던 시도는 처음부터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어쩌면 어떤 존재로 태어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생겨나 그 위로 있음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아 올려진 기억들이 모두 그 자체로 정체성이 되고, 자신이 된다. 기억이라는 것은 한 존재에 켜켜이 쌓아 올려진 지층 같은 것이다. 한편으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타자와의 상호작용이다. 서로 다른 기억을 쌓아왔고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인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공유하는 기억과 추억들이 타자와 나를 하나로 묶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회상하는가. <애프터 양>은 차를 우리듯 천천히 기억의 찻잎을 우리며 그렇게 조용히 명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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