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철] 위대한 이름과 위대한 영화

체리 향기(1997)

2022.04.30 | 조회 73 | 0 |

소박한 영화감상문

매주 토요일 영화리뷰 연재

    나에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름은 오래된 영화 이론 서적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름과도 같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이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발행한 영화 이론 서적이기도 했고, 아마 그래서 더 그 이름을 조금은 어려운 이름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수업시간이나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는 이름들은 언제나 숙제처럼 느껴지곤 한다. 영화에 관해 쓰고 말하기 위해서 언젠가 한 번쯤 봐야 하는 이름들. 필수 교양서적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오즈 야스지로, 잉마르 베리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이름들. 이들의 영화를 볼 때면 동시대의 감독들을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따져보자면 영화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숙제 같은 이름들이 바흐와 나의 시간 간격이나 톨스토이와 나의 시간 간격과 비교했을 때는 그리 먼 것이 아니긴 하다. 키아로스타미와 나의 시간차 역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았다. 바흐, 톨스토이와 비교했을 때보다 얼마 차이 안 나는 것이 아니고 오즈와 타르코프스키와 비교했을 때보다도 차이가 안 났다. 그것이 숙제 같은 이름인 키아로스타미에 갑작스레 끌렸던 이유다. 키아로스타미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던 영화 <체리 향기>는 내가 태어난 해인 1997년에 발표된 영화고, 키아로스타미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인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숙제처럼 느껴지는 이름의 감독들 영화를 볼 때면 그 영화들의 위대함에 대한 영화사의 평가가 이미 이뤄졌기 때문에, 내가 그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의 눈은 그다지 날카로운 것이 아니지 않을까 내심 혼자 걱정하게 되기도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라도, '나'라는 단독자와의 만남에는 때가 있고 인연이 있는 것 같다"는 허문영 평론가의 말이 조금은 걱정을 덜어주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작품들의 위대함을 나 역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영화를 보게 되는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체리 향기>를 재생하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쨌거나 영화는 시작됐다. 사족이 너무 길었다. 이제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체리 향기>의 대부분은 차 안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과 자동차가 황무지 같은 땅에 난 길을 따라 이동하는 장면이다. 자살을 하려는 남자가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사적으로도 그리 극적인 일은 없다. 왜 이 남자가 자살을 하고 싶은지에 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고양시키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미지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다만 길을 따라가며 두 사람이 대화하고, 이따금씩 대화가 지나는 풍경을 비추고, 길을 따라 차가 움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 영화의 화면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미 닳도록 이야기되어 내가 한마디 보태는 것이 별 영향은 없겠지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평범한 순간의 장면화가 정말이지 너무나 탁월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필두로 이어진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3부작은 지그재그로 난 길이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하기 때문에 지그재그 3부작이라고 불린다. <체리 향기>는 그 3부작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체리 향기>에도 역시 지그재그로 난 길이 화면에 자주 등장한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그가 길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리 향기>에서 그는 공간 속의 길을 스크린이라는 평면 위에 온전히 옮겨내고 그 위를 지나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통해 길의 형태와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남자의 무덤이 될 장소로 가는 길은  화면에 특별한 표지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같은 길임을 알 수 있다. 키아로스타미는 길을 어떤 방식으로 찍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이고 유일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인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장면으로 포착해내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다시 연결된다. 자살을 하려던 남자는 두 차례의 거절 이후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려는 노인을 만나게 되고, 노인으로부터 노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인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 것은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도 아니고, 노인을 감격하게 만들었던 체리의 향기다. 일상의 순간의 소중함을 통해 삶을 예찬하는 영화는 많지만, 그 평범한 순간의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구태여 힘을 주지 않고 보여주는 영화는 흔치 않다. 노인을 태우고 지금껏 찾아왔던 길을 반대로 갔듯 영화를 되밟아가 보면 감각하려 하지 않았기에 평범하게 지나온 순간들이 다시 보이게 된다. 자동차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차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물심양면 달려와 도움을 주던 이의 미소. 영화가 끝나고 지나온 순간들을 되짚어볼 때 그제야 모랫빛 황무지가 온통 체리 향기로 가득 차 있었음을 돌이켜보게 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커다란 이름이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꼭 한번 보아야 할 영화를 만든 감독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꼭 본다면 좋을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그러나 이런 이름 뒤의 무겁고 커다란 배경을 제쳐놓더라도 여전히 훌륭한 영화는 훌륭하다. 이 당연한 명제가 분명하게 사실이 된다는 점은 앞서 내가 줄줄 늘어놓던 걱정을 조금은 덜어놓게 만든다. 앞으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더 찾아보고, 키아로스타미를 동시대의 감독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글은 영화보다 나의 이야기가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이미 평가가 끝마쳐졌다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영화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동어반복이 될 것만 같았다. 다만 내가 솔직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감상과 체험이었기에, 부득이 필자의 존재감을 영화보다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 글은 영화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키아로스타미의 말로 글을 마치겠다. 

키아로스타미는 이미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의 영화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나요?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베토벤에게 누군가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야 하나요? 그러자 그는 대답을 하는 대신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피아노에 다가간 다음 자신이 작곡한 소나타를 연주했어요.” 결국 그 방법뿐이다. 

'당신은 벌써 제 곁에 없습니다 - 정성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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