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뒷골목에서

나이트메어 앨리(2022)

2022.03.05 | 조회 78 | 0 |

소박한 영화감상문

매주 토요일 영화리뷰 연재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괴물'일 것이다. 그간 자신의 영화에서 끔찍한 외형의 생물들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던 감독이기에 그 이름이 괴물, 괴수 등과 나란히 놓이는 것은 마치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델 토로 감독의 신작인 <나이트메어 앨리>에는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감독이라면 별일 아니겠지만 델 토로의 영화라면 응당 파충류 같은 피부를 하거나 눈코 입이 제 위치에 있지 않은 판타지 생명체가 하나쯤 나와야 할 것만 같기에 조금은 의아한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반드시 어딘가에 괴물을 숨겨놓았거나 그것의 은유라도 등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다. 그러나 끝까지 괴물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망한 것은 아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의 괴물은 주제나 애착의 대상이기보다 스타일에 가깝게 구현된다. 주인공이 도망친 기인을 찾아 들어간 카니발의 '귀신의 집'의 디자인이 가장 직접적으로 그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다. 크고 작은 눈이 빽빽이 벽을 메우고 있으면서 어지러운 무늬를 만드는. 화려하면서도 불안하고 종종 기분 나쁘기까지 한 분위기와 마력이 영화의 곳곳에서 뿜어져 나올 수 있는 것은 여기저기 그의 인장이 수놓아진 프로덕션 디자인 때문일 것이다. 카니발 사장인 클렘의 수집품이자 극의 중요한 상징인 병 속에 담긴 기묘한 형상의 갓난아기는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델 토로 감독의 취향 한 자락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라는 망령이 떠돈다"는 김성찬 평론가의 한줄평처럼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프로이트적 살부의 서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능력한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아버지가 세운 금기를 넘어 부를 실현하려는 주인공 스텐턴의 욕망은 프로이트가 설명하는 정신분석학에 딱 들어맞는다. 어머니로 대표될 지나와 스칼렛과 관계를 가지는 것 또한 어머니를 품에 안으려는 오이디푸스적 욕망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훌륭하고 깔끔하게 이러한 도식을 극에 녹여내고 있지만, 이러한 지적은 너무나 많은 평자들이 언급하고 있고, 또 너무나 직접적으로 확인 가능한 상징이기에 굳이 이 글에서 말을 보태지는 않겠다. 

    그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서 기만을 다루는 태도이다. <나이트메어 앨리>가 결국 누군가를 속이는 것에 관한 영화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스텐턴이 피트에게 배운 독심술이 진짜로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령술이 아닌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직접 어떻게 속이는지까지 보여줘 가며 그것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독심술의 트릭을 다루는 방식은 아주 무겁다. 당장 피트를 보더라도 속임수의 원리가 적힌 책을 흑마술의 비법서를 다루듯 경계하며, 이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피트의 대사뿐이 아니다. 피트가 술에 취하는 바람에 쇼가 완전히 망할 뻔하는 장면이 있다. 지나는 임기응변을 통해 다른 트릭을 이용해 쇼를 이어간다. 흥미로운 것은 정말로 귀신이 찾아오기라도 한 양 그 순간 우연히 날아가는 풍선과 그것을 주목하는 카메라다.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과거를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독심술의 트릭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그게 전부 일종의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나 이 장면은 마치 지나에게 실제로 영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져 있다. 마치 숨어있는 마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속임수 기술에 마력을 부여하고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은 이미 위험한 힘을 품은 행위다. 피트와 지나가 경계한 것은 독심술이 가진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이 아니라 바로 이 위험한 마력에 있다. 누군가를 속이고, 자신까지 속이는 지경에 이르는 기만의 위험을 기예르모 델 토로는 독심술의 영험한 저주처럼 묘사한다. 곳곳에 암시된 비극적 결말의 경고와 표지 역시 그렇다.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는 말. 누군가를 기만하는 것이 불러오는 대가. <나이트메어 앨리>가 목격하는 시대의 폐부는 그것에 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인 기인의 모습, 그리고 극이 시작한 이래로 침묵을 지켜온 스탠턴이 처음으로 대사를 건네는 존재가 다름 아닌 기인이라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스탠턴은 기구한 굴레를 돌고 돌아 결국 그 자신이 기인이 된다. "이건 내가 아니야" 라며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이에게 더 이상 자신을 확인할 거울은 없다. 내가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부정하고 기만하는 길밖에는 남지 않았다. 어쩌면 델 토로가 괴물들에게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하게도 그 괴상한 외형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비정상성이었음을 굳게 확인할 수 있다.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것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이트메어 앨리>에는 괴물의 은유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트메어 앨리>는 괴물들과 중요한 본질을 공유한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인간이 품은 강력한 욕망과 위험한 마력. 기예르모 델 토로가 초대한 곳은 화려한 카니발이나 심령 쇼가 아니라 음울한 악몽의 뒷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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