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몸에도 좋고 냄새도 좋은 캣닙

고양이는 왜 캣닙을 좋아할까요?

2021.07.19 | 조회 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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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캣닙 냄새를 맡고 정신 못 차리는 고양이 동영상, 다들 본 적 있으시죠? 그게 뭐라고 몸 여기저기 캣닙을 바르면서 좋아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엽습니다. 한편으론 저게 마약 아닌가, 계속 저러다 보면 중독되거나 몸 어디가 상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와중에 고양이한테 말을 걸 수도 없으니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고양이는 왜 캣닙을 좋아할까요? 좀 더 '과학적으로' 질문을 바꾸면, 고양이가 캣닙을 좋아하게 되는 기작은 뭘까요? 그리고 고양이에게 캣닙은 정말 유흥거리 이상의 기능은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지난 1월 20일, 일본 이와테 대학교 연구진의 대답이 국제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출판되었습니다. 간단한 소개 기사도 같은 호에 실렸습니다. (무려 5년이나 연구했다고 하네요. 역시 일본인들은 고양이를 사랑하나 봅니다.)

우선, 이 논문은 기존에 효과가 알려지지 않았던 물질을 지목하며 시작합니다. 네페탈락톨(nepetalactol)이라는 물질인데요, 개다래나무에서 발견되는 물질인데 기존에는 고양이들이 이 물질을 좋아한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캣닙의 유효성분은 네페탈락톤, nepetalactone입니다. 조금 다른 물질입니다) 개다래나무에서 네페탈락톨을 분리해낸 다음 이들은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합니다.

 

(1) 정말 고양이들이 이 물질을 좋아할까요?

연구진이 촬영한 영상을 직접 보시죠. 고양이와 표범은 네페탈락톨에 환장하고, 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연구원들이 동물원에 가서 스라소니, 재규어한테까지 실험을 해 봤는데 고양잇과 동물들은 다들 5분 정도씩은 저 하얀 거즈에 몸을 문지르고 있었다고 하네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캣닙이나 개다래나무에서 추출한 여러 가지 물질에 대한 선호도 조사도 해 봤는데, 네페탈락톤과 네페탈락톨은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한 선호도를 보인다고 하네요.

 

(2) 이 물질은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요?

캣닙을 갖고 노는 고양이는 참 행복해 보이지 않던가요? 정말로 행복한 게 맞았습니다. 연구진은 네페탈락톨에 노출하기 5분 전, 그리고 네페탈락톨을 고양이가 충분히 즐기고 5분 뒤에 각각 한 번씩 고양이의 혈중 엔도르핀 농도를 측정해 봤는데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증가했다고 합니다. 엔도르핀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물질로, 좀 더 복잡하게는 μ(뮤)-오피오이드 시스템을 활성화해서 기쁨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입니다.

엔도르핀 농도 증가가 네페탈락톨 때문인 걸 좀 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서, 연구진은 아편 중독자를 치료할 때 쓰는 길항제 날록손(Naloxone)을 고양이에게 투약하는 실험도 했습니다. 날록손은 뮤-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결합해서 엔도르핀의 작용을 막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재밌게도, 날록손을 투약한 고양이는 마치 자기가 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네페탈락톨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네요. 말하자면 캣닙이나 개다래에 몸을 문지르는 고양이는, 사람으로 치면 아편이나 헤로인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네요!

 

(3) 캣닙은 고양이에게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일까요?

자연계에서 아무 이익이 없는 행동이 스스로 생겨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진화는 느리지만 확실한 과정이어서, 효율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특징이나 행동 양상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개다래를 탐닉하는 행동이 고양잇과 동물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했지요? 최초의 고양잇과 동물은 약 2500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다래에 대한 선호는 그러니까 2500만 년 전쯤 우연히 생겨나서, 고양이/재규어/스라소니/표범 등 수많은 자손들이 분화하는 동안에도 여태껏 사라지지 않고 있는 거예요. 이 정도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은 행동은 뭔가 기능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진의 대답은, 네페탈락톨을 비롯한 '고양이 마약'이 모기를 쫓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이걸 확인한 실험은 좀 못됐습니다. 우선 네페탈락톨을 마음껏 탐닉한 고양이를 마취시켜서 모기가 가득한 상자에 10분 동안 넣어두고, 모기가 몇 마리나 고양이 얼굴에 앉는지를 세어봅니다. 그다음에는 네페탈락톨에 노출되지 않은 고양이를 똑같이 마취시켜서 모기 상자에 넣어두고 모기가 앉는 수를 셉니다. 그랬더니 네페탈락톨을 몸에 바른 고양이한테는 모기가 50% 정도 덜 앉았다고 하네요.

고양잇과 동물들은 대부분 포식동물입니다. 조용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사냥감을 기습하는 일이 많지요. 그런데 숨어 있는 고양이에게 모기가 달려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모기에 물려서 움찔한다거나, 모기를 쫓겠다고 꼬리를 휘두르면 사냥감이 도망치겠지요? 그러니 고양이에게는 모기를 쫓을 만한 진화적 유인이 있는 겁니다. 모기한테 덜 공격받은 고양이가 사냥도 더 잘했을 테니까요.

2500만 년 전쯤, '시조 고양이' 한 마리가 개다래나무 애호가가 됩니다. 우연한 돌연변이 때문에 왠지 그 냄새를 좋아하게 됐겠지요. 이 시조 고양이는 개다래나무만 발견하면 사족을 못 쓰고 몸을 한참 비비다가 지나갑니다. 그런데 왠지 그 날부터 모기에도 물리지 않고 사냥도 잘합니다. 배가 부르니까 때깔도 좋아지고, 이성에게 인기도 많아져서 자식도 많이 남깁니다. 자식들도 개다래나무를 좋아하게 태어나고, 모기에 덜 물리고, 사냥도 잘하고, 그래서 자식을 또 많이 남깁니다. 이런 과정을 2000만 년쯤 반복하고 나면 개다래를 싫어하는 고양이는 모기에 쫓겨서 사냥감을 놓치는 바람에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개다래를 좋아하는 고양이들만 번성하게 된 거겠지요. 진화는 느리지만, 아주 작은 차이라도 이만큼 증폭시킬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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