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최고의 '고기 씨앗'을 찾아서

2021.06.17 | 조회 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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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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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의 포경 산업은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산업혁명기에는 공장 기계에 바를 윤활유로 고래 기름을 이용했거든요. 19세기 중반 무렵 미국에는 700척이 넘는 포경선이 있었고 연간 8,000마리의 고래를 사냥했습니다. 포경의 역사를 기술한 책 <리바이어던>에 따르면, 포경업은 당시 미국의 산업 중 다섯 번째로 비중이 컸다고 해요.

그런데 포경 산업은 겨우 30년만에 전성기의 5%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버립니다. 이렇게까지 급격한 수축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당대에도 고래의 학살에 반대하던 동물권 활동가들이 많이 있긴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주 산업적이고 실용적인 이유였습니다. 바로 지질학자 에이브러햄 게스너가 등유(kerosene)를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등유는 가격과 편리성 등 모든 면에서 고래 기름의 완벽한 상위호환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전성기를 달리던 포경 산업은 19세기 말에는 여성용 코르셋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로 축소되었고, 그나마 20세기 초에 완전히 소멸하게 됩니다. 고래 학살을 멈추고 포경업을 없애버린 결정타는 결국 등유의 등장이었던 셈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고기는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생산됩니다. 엄청난 수의 육용 동물을 좁고 더러운 축사에 몰아넣은 다음 항생제를 동원해 강제로 연명시키다가, 수익을 낼 수 있는 크기까지 동물이 성장하면 바로 도살장으로 보내는 식이지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건 물론이고 심각한 수준의 환경 파괴를 동반하기 때문에 축산업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어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안된 기술적인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배양육입니다. 일일이 동물을 키워서 도살하고 고기를 분리해서 파는 대신, 생명과학 기술을 사용해서 동물을 키우지 않고 고기만 실험실에서 합성하겠다는 접근법이지요. 실제 고기와 같은 맛이 나는, 혹은 더 좋은 맛이 나는 고기를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만들어내서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한다면 공장식 축산의 파이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와 같은 배양육 산업을 다르게 일컬어 ‘세포 농업’이라고도 합니다. 마치 밭에 씨를 뿌리고 키워서 농작물을 수확하는 농업처럼, 시험관에 동물의 세포를 뿌리고 적절하게 성장시켜서 근육과 지방으로 이루어진 고깃덩어리를 수확한다는 의미를 담은 거죠. 축산업에 비해 농업이 좀 덜 환경 파괴적이고 에너지도 절약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포 농업’이라는 비유가 딱 들어맞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종자의 중요성이에요. 어떤 씨앗을 뿌렸느냐에 따라 가을에 거두는 농작물의 품질과 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고기를 배양할 때 어떤 세포를 씨앗으로 사용했느냐에 따라 배양육의 품질과 생산량은 달라집니다.

생명공학에서는 이런 세포 배양의 씨앗을 ‘세포주(cell line)’라고 합니다. 마치 식물 종자를 품종개량하는 것처럼, 좋은 세포주를 찾아내면 저렴하게 양질의 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일대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허접한 세포주를 사용했다가는 근육 조직이 제대로 성장하지도 않아서 흐물흐물한 고기 수프만 만들어지고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배양육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서로 다른 세포주의 특성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아직 발전이 더디다는 소식이 최근 들려오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배양육 세포주의 연구 현황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위쪽은 옥수수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테오신테'입니다. 먹을 게 하나도 없지요? 제일 아래가 오늘날 우리가 먹는 옥수수이고, 가운데 있는 것이 옥수수와 테오신테의 잡종입니다. 출처: CC BY 3.0, https://teosinte.wisc.edu/images.html
제일 위쪽은 옥수수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테오신테'입니다. 먹을 게 하나도 없지요? 제일 아래가 오늘날 우리가 먹는 옥수수이고, 가운데 있는 것이 옥수수와 테오신테의 잡종입니다. 출처: CC BY 3.0, https://teosinte.wisc.edu/images.html

우선 ‘농업’에서 ‘종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일상적으로 먹는 야채나 과일 등의 농업 생산품은 모두 상당한 품종개량을 거친 작물이지요. 위 그림에 보는 것처럼, 야생 옥수수는 먹을 게 거의 없는 풀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 품종개량을 통해 먹을 만한 품종으로 개량을 한 거고요. 이처럼 같은 생물 종이라고 하더라도 그 품종과 유전자의 표현형에 따라 음식으로 먹을만한지는 아주 달라집니다.

배양육도 ‘세포 농업’이기에 상황이 비슷합니다. 배양육 기술은 대개 근육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찾아내서 계속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거든요. 줄기세포는 일반 세포와 달리 여러 차례 분열하여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세포를 말하는데요, 이론적으로는 줄기세포를 시험관에 넣어 놓고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면 세포 덩어리가 점점 커질 테니 고깃덩어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식물의 종자와 같은 기능을 하는 거죠.

문제는, 같은 사과라고 하더라도 품종마다 맛과 생산량이 다 다른 것처럼, 줄기세포 종자도 저마다 생산량과 품질과 구성이 제각각이라는 겁니다. 어떤 줄기세포는 영양분을 적당히 공급해 줘도 쑥쑥 자라는 반면 어떤 줄기세포는 영양분 조성을 정말 칼같이 맞춰 주지 않으면 시들시들 죽어 버리기도 하고, 어떤 줄기세포는 고깃덩어리가 생기긴 하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못 팔 수준이기도 할 테니까요.

아직 우리의 배양육 기술은 세포주마다 달라지는 고기 배양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산업적인 활용을 노리는 것과 함께 학술적인 연구도 병행되어야 하는 단계이죠. 그런데 학자들이 연구를 하려면 원하는 세포주를 쉽게 구해서 서로 비교도 해 보고 자세한 분석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배양육용 세포주는 이런 접근성이 매우 나쁩니다.

현재 이런 용도로 널리 구할 수 있는 세포주는 안타깝게도 쥐가 유일합니다. C2C12라고 하는 쥐 근육 세포주는 적당한 환경에서 잘 성장하고 클릭 몇 번만 해서 주문하면 구할 수 있는 훌륭한 샘플이지요. 하지만 쥐 세포와 소 세포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쥐 세포를 이용해서 연구한 결과가 소 세포에 바로 적용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배양육 산업에서 제일 중요한 타깃은 당연하지만 소입니다. 소비량도 많고 단가도 비싼 데다 환경파괴에 기여하는 비중도 독보적이니까요. 하지만 최근 배양육 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소 세포주는 대부분 영업기밀 취급을 받고 있어서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배양육 기술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은 수의대의 다른 연구실에서 세포주 샘플을 건너건너 얻는다거나, 때로는 아예 도살장을 돌아다니며 도축당한 소의 세포를 직접 구하는 식으로 세포주를 구하고 있지요.

배양육 업계에서는 산학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배양육 산업을 후원하는 비영리재단인 “Good Food Initiative (GFI)”는 배양육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산업계에서 활용하는 세포주를 모아 연구자들에게 공급해 주는 세포주 은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배양육 기업들은 대부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요. 드물게 공유된 세포주도 그 회사에서 실제로 배양육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고성능 세포주가 아니라, 실용성이 없어서 공개해도 손해가 없을 거라고 판단된 ‘버린 세포주’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나의 대안으로는 세포주 자체를 공급하고 판매하는 세포주 기업이 꼽히고 있습니다. 성능 좋은 세포주를 골라내는 데만 전문화한 기업으로, 직접 배양육을 공장 수준에서 생산하지는 않지만 고성능 세포주를 배양육 기업에 공급하고 컨설팅하는 모델이지요. B2B 배양육 기업인 셈입니다. 하지만 수익모델이 불확실하다는 문제가 있어서, 관련 기업 하나가 2021년 4월에 폐업한 바도 있지요.

배양육 산업이 장기적으로 전망이 좋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 같지만, 전망 좋은 산업을 실제 수익과 생산으로 바꾸어내는 건 마냥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대체육류 산업군에는 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드처럼 이미 어느 정도 시장 포지션을 차지한 콩고기라는 경쟁자도 있으니까요. 세포주 정보 공유의 흐름이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배양육 산업이 어떻게 난국을 타개해 갈지 지켜보면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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