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빅데이터와 기계학습으로 동물 번역기를 만들 수 있을까

2021.05.24 | 조회 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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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코코(Koko)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고릴라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서 태어난 고릴라였는데요, 스탠포드의 동물심리학자 프랜신 패터슨(Francine Patterson) 교수에게 수화를 배워서 천여 개의 단어를 구사하는 수준까지 올라 유명해졌지요. 2018년에 코코가 사망했을 때는 전세계적인 애도 물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동물들도 언어를 간단하게는 구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고릴라 같은 고등 영장류에게 수화를 가르친다거나, 똑똑한 대형 앵무새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친다거나 하면 인간과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어떤 동물학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래나 돌고래처럼 우리와 언어 체계가 아예 다른 동물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비영리재단 야생돌고래프로젝트(Wild Dolphin Project)의 창립자인 데니스 헤르징(Denise Herzing) 박사가 대표적입니다. 아래의 유튜브 영상은 헤르징 박사의 TED 강연 영상인데요, 특수한 스피커를 이용해 돌고래와 '대화'하는 장면도 나와 있어요.  

동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거의 감동적인 장면일 겁니다. 아주 초보적인 단계라고는 해도 우리와는 돌고래와 의사소통을 하다니요! 비록 우리가 직접 낼 수는 없는 소리라서 컴퓨터 분석 장비와 스피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종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일 겁니다.

요즘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동물의 언어를 번역하는 인공지능 번역기를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 등장하는 '바벨 피쉬'처럼, 귀에 꽂으면 우주의 모든 언어를 자기 언어로 번역해서 들려주는 장치를 만드는 거죠. 이만큼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하다못해 강아지의 '언어'만 들을 수 있어도 감격할 사람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하지만 동물 의사소통의 미래가 이처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그 동물의 감각과 생활에 대해 심도 있는 이해를 하지 못하면 우리는 설령 번역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동물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쪽 입장의 고전은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이 1974년에 발표한 논문 "박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What is it like to be a bat?)입니다. 박쥐는 우리와 달리 소리를 통해 주변을 인식하고, 천장에 매달려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모두 우리가 해볼 수 없는 경험이지요. 이런 경험을 잔뜩 하고 살아가는 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게도, 모든 동물들은 제각각 아주 다른 경험을 하고 살아갑니다. 아래 영상은 제가 좋아하던 쓸데없는 유머 영상 "갯가재에 대한 진실"입니다.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대목은 1분 0초 지점입니다. 인간은 빨강, 초록, 파랑의 3원색을 인식할 수 있는데, 갯가재는 열두 개의 색깔, '12원색'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해요. 갯가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요? "당신이 상상도 못할 색깔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걸 아홉 번 반복해 보세요. 그게 갯가재가 하는 짓거리입니다."

아니면, 문어의 마음을 생각해 볼까요? 이전에 다른 글에서도 설명드렸듯이, 문어는 의외로 지능이 굉장히 높고 영리한 생물입니다. 수족관에 있는 문어는 가끔 '놀이'를 하기도 해요. 그런데 문어가 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냥 문어가 그때 하는 행동이 인간의 놀이랑 비슷해 보이니까, 인간 관찰자는 그걸 보고 '문어가 놀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뿐인 거예요.

문어의 두뇌 구조는 우리와 엄청나게 달라서 문어의 마음이 우리랑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오히려 놀라울 일이지요. 문어의 신경 세포는 두뇌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여덟 개의 다리에 넓게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문어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도 뇌가 다리를 지배하는 중앙집중적인 방식이 아니라 여덟 개의 다리와 한 개의 뇌가 '회의'해서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캐나다 레스브리지 대학의 제니퍼 마터(Jennifer Mather) 교수는 두족류 뇌과학의 세계적인 대가인데요, 마터 교수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문어의 행동을 놀이라고 해석하는 건, 단순히 그게 우리의 놀이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에요." 문어를 관찰하는 우리의 마음이 인간중심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문어의 행동을 해석할 수밖에 없는 거죠. 문어가 '놀이'를 하는 의도가 뭔지 모르니까, 우리의 관점에서만 해석해서 '놀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언어학에는 '스와데시 리스트'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모리스 스와데시(Morris Swadesh)가 만든 목록인데, 세계 각지의 수많은 언어들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어휘를 모아놓은 목록이죠. 나, 너, 여기, 누구, 짧다, 여자, 아빠, 씨앗, 비, 강, 재 같은 단어들은 인간의 언어에서는 반드시 등장한다고 해요.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거쳐 가는 개념들인 거죠.

스와데시 리스트는 아마 돌고래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겁니다. 나, 너, 아빠 같은 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씨앗이나 비, 재 같은 대상은 만나볼 일이 없었을 테니 돌고래의 휘파람 언어에는 이런 대상이 없을 거예요. 반대로, 바닷속에서 3차원으로 헤엄치며 살아가는 돌고래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개념이 돌고래 언어에는 들어 있을 거고요.

*본문 내용은 뉴요커 기사 <The Challenges of Animal Translation>을 일부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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