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며칠 전, 가장 중요한 행사를 진행했다.
1년 중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날, 바로 김장🥬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다량의 김치를 담그는 것으로
이 역사는 정확하게 언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품앗이 문화가 이어져 왔고,
아마 이 시기, 마을 사람들이 모여 김치를 담그던 것이
오늘날의 김장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요즘은 김장을 연중 행사로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설날, 추석 다음으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를 김장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김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김장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아마 직접 해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정말 힘들고👿힘들고👿힘들다👿.
시작부터 뒤처리까지 무엇 하나 쉬운 작업이 없는 것이 김장이다.
그렇기에 이 날에는 겉절이와 함께 수육을 먹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노동을 할 때는 술이 빠질 수 없다.
특히 우리는 언제나 힘들 때, 막걸리를 찾는다.

그래서 오늘은 막걸리, 바로 탁주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탁주인가, 막걸리인가

탁주와 막걸리.
두 단어는 같은 말이 아니었던 건가?
탁주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막걸리다.

우리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바로 탁주와 청주다.
맑은 술은 청(淸)주, 탁한 술은 탁(濁)주다.
본래 청주만 존재했는데, 청주와의 차별성을 위해 탁주가 나오게 되었다.

막걸리는 바로 걸러내서 술을 만들었기에
지금 바로! 막! 만들었다고 해서 막걸리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막걸리는 발효가 끝나고 맑은 부분만 떠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 섞거나 맑은술을 떠내고 난 후 남은 것을 혼합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발효가 끝나고 위에 떠 있는 맑은 부분을
바로 청주, 다른 말로는 동동주라고 이야기한다.
(동동주도 막걸리처럼 청주 안에 속해 있는 단어다.)

청주는 선비들이 분위기를 잡으며 고운 도자기를 기울여 마셨다면,
탁주는 농부들이 일을 하던 와중, 새참으로 주전자를 기울여서 마셨던 것이다.
특히, 도수도 6~7도 정도로 적당하니
낮에 마시기에, 반주하기에는 최적의 술이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노동할 때 탁주를 마셨던 걸까?
아주 오래전부터 마셨을 수도 있지만,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왠지 고려 때부터인 것 같다.

1123년 송나라 사신 중 한 명이 고려에 방문했을 때 적은
[고려도경]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또한 당시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을 보는 순간,
막걸리는 노동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현재 막걸리를 빚는 것이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다만, 막걸리는 집집마다 다 다르게 빚는 가양주이기에 집안 특유의 맛이 있어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전에 나 역시 막걸리를 만들어 봤다.
하지만 실패해 버렸다.
신 맛이 너무 강하게 나서 입에 넣는 순간 퉤퉤하고 뱉어버렸다.

탁주를 빚는 것은 무엇보다 쉽다.
쌀과 누룩, 물만 있으면 되니까.
그러나 발효를 시키는 과정에서 온도나 빛 등 환경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잠시 한눈을 팔아도 안 되는 것이 술을 빚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간단하고 기본적인 재료일수록
완성되는 과정은 정말 너무 어렵고 대단한 것이었다.

쌀이 이런 맛을 낸다니!

탁주는 쌀로 만든 술이다.
그러나 1960~1970년대에는 식량부족으로 인해 쌀을 원료로 하던 탁주가 금지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밀가루, 옥수수, 보리 등을 섞어 빚기 시작했다.
그리고 탁주보다는 희석식 소주나 맥주 중심으로 마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다시금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초과 달성’ 등과 함께
12월 8일, 쌀 막걸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쌀 막걸리가 보급화되면서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는 한국의 멋과 맛을 알리는 전통문화이자
민속주로서 막걸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쌀을 주 원료로 하는 생 막걸리의 특장점을 알리며
쌀 막걸리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에게 있어 대표 막걸리라고 하면 단연 ‘서울 장수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장수 막걸리의 시작은 바로 1996년이었다.
당시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는 ‘서울생동동주’를 장기 저온 숙성을 시키며
주질을 대폭 개선하고 효모가 살아있는 막걸리 특유의 맛을 살리면서
청량감을 더한 ‘서울장수 생막걸리’가 출시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에게 장수 막걸리는
트림을 불러일으키는, 속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드는, 탄산만 가득한 탄산주다.

'막걸리=탄산이 너무 강한 술'이라고 만들어준 것이 장수 막걸리였기에,
막걸리를 잘 마시지는 않았다.
장수 막걸리 외에 다른 것을 마셔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외의 막걸리는 밤 막걸리, 옥수수 막걸리였고, 이들은 나에게 너무 달게만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최고의 막걸리를 찾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우연히 집 앞의 슈퍼를 갔다가 발견한 막걸리인데,
라벨이 너무 깔끔하고 예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집어 들게 되었다.

그리고 라벨에 적혀 있듯,
위의 맑은술을 먼저 마시며 청주를 즐기고,
반 정도 마신 후에 섞어서 탁주를 즐기라는 추천을 따라 마셨다.

이게 막걸리라고? 이렇게 깔끔하고 개운한 것이 막걸리라고?

그러나 이름은 너무 강하게 막걸리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바로 ‘경주법주 쌀막걸리’

경주법주 쌀막걸리는
밀이나 일반 백미를 그대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막걸리와 다르게 쌀알을 20% 도정했다.
국내 막걸리 중 최초로 도정해서 만든 막걸리로 그만큼 부드럽고 깔끔하다.
이렇게 깔끔하고 맛있는 막걸리이기에
2016년 세계 최고 권위의 주류품평회인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번 김장 때도 역시나 경주법주 쌀막걸리를 선택했다.
청주와 탁주를 함께 즐기고, 부드러우며 깔끔하기에 모두가 좋아했다.
거기다 숙취까지 없을 정도였다.
이정도면 금상 받을만 하다!

오늘처럼 비가 내린 날이면 당연히 탁주가, 막걸리가 마시고 싶어진다.
이럴 때면 자연스럽게 전집이나 대폿집을 검색하게 된다.

막걸리는 역시 양은이지!

대폿집은 대폿술을 파는 곳이다.
대폿술은 큰 술잔으로 마시는 술을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막걸리를 큰 잔에 넘치도록 따라서 마셨기에 다른 말로 대폿술이라 불렀다.
즉, 대폿집은 막걸리를 파는 집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쓰인 대포는 大匏,
바가지를 의미하는 박 포를 써서 큰 바가지에 마시는 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술집 중에는 서서 머시는 선술집이 있는데,
이 중에서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곳 역시 대폿집이라 불렀다.
그래서 대폿집은 서민들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술을 마시는 선술집이기도 하다.

옛날 대폿집의 모습은 이러했다.

이렇게 큰 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 주고받으며 우정이 싹텄기에
절친한 우정 사이를 이야기할 때 ‘대포지교'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표주박 잔에 마시는 것도 본 적이 있고,
도자기 잔에 마시는 것도 본 적이 있지만
그래도 역시 막걸리는 양은에 따라 마시는 것이 최고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이런 글을 봤다.

결국, 도자기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난 그래도 투박하게 찌그러진 양은에 따라서 한 번에 들이켜고,

아- 좋다!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뭐가 되었든, 쌀을 주식으로 만든 선조들이 고맙고,
그 쌀로 술을 만들기로 결심한 누군가에게 더욱 고맙고,
술이 발효된 후 아래에 가라앉은 찌꺼기마저 맛있다는 걸 알아채서
탁주를 만들어준 사람에겐 정말 강하게 포옹해주고 싶어질 만큼 고맙다.

오늘은 김장 때 먹으려고 사뒀던 남은 막걸리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