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와인🍷

예년보다 9일이나 이르게 설악산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가을이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나는 솔직히 지금 이 계절을 참 좋아한다.
다양한 옷을 겹쳐서 마음껏 입을 수 있고, 적당히 쌀쌀하면서도 따스한 햇살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 코 끝이 조금 차가워지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무엇보다도 와인-아주 무겁고 드라이해서 다음 날 아침 입 속이 텁텁해지는 레드 와인-이 생각난다. 

내가 처음 와인을 만났던 것은 다름 아닌 <신의 물방울>이라는 일본 만화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와인을 마시는 순간 풍경이 보이거나 이야기가 들리는 등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와인을 마실 때, 그 맛이 어떤 지, 와인의 내면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나에게 와인은 굉장히 고급에 고급이 더해진 술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나에게 있어 와인은 맥주를 마시기에 너무 추운 날 그 대신에 찾게 되는 술이 되었다.

특히 스페인에 있을 무렵 와인을 참 많이 마셨다. 10월-11월 사이의 마드리드는 진눈깨비가 자주 내릴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기에 와인에 계속 손이 갔었다. 추운 날이 많기도 했지만 저렴하면서 양도 많은데, 술기운도 빠르게 올라왔었기 때문도 있다.

스페인 와인은 2016년 전까지만 해도 '저렴한 가격으로 마실만한 와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었다. 거기다 우리는 와인이라고 하면 당연하게 프랑스, 이탈리아만 떠올렸기에 스페인 와인이 얼마나 맛있고 대단한지 몰랐다. 그러나 실제로 스페인은 세계 3위 와인 생산국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스페인 와인을 이야기할 때 품종부터 산지, 등급까지 정말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간단하게 그냥 퇴근 길에 와인이 생각나서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스페인 와인이 두 종류 있었고 그 중에서 어떤 와인을 사면 좋을 지 알려주는 정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스페인 와인의 최고는 당연 리오하(Rioja)와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다.
리오하(Rioja)는 스페인의 중북부에 있는 리오하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땅도 비옥하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제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스페인 최고 와인 생산지이다.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는 스페인 북서부에 있는 카스티야 이 레온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에는 건조하고 겨울에는 엄청 춥다. 계절 때문에 와인이 맛있을지 걱정될 수도 있지만 계절 덕분에 최고의 와인이 나오는 곳이다.
리오하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와인이 바로 리베라 델 두에로 와인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 첨가된 것이기도 해서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인 중에는 리오하(Rioja)와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지방의 와인을 만나기가 어렵다. 비싼 아이들은 왜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에 두지 않는지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두 지역의 와인이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고, 와인 라벨에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Tempranillo (뗌쁘라니요)"

'빨리, 이른'이라는 의미인 이 단어가 적혀 있다면 믿고 마셔도 좋다.
비싸고 좋은 와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섬세하고 좋은 향을 갖고 있는 스페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포도 품종을 Tempranillo(뗌쁘라니요)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이 적혀 있다면 와인을 딴 후에 10-20분 정도 지나고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와인이 공기와 만나면서 더욱 풍미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와인이 마시고 싶어질 것 같아 와인 하나를 추천하려고 한다.
스페인어로 숫사슴을 의미하는 El Coto(엘 꼬또).
스페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만큼 즐겨 마셨는데, 한국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와인이 되어 종종 구매해서 마시고 있는 와인이다. (다만, 편의점은 아니고 대형 마트를 가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리오하 지방 와인이면서 뗌쁘라니요 100%로 만들어져 있어 가볍게 마실 수 있으면서 입 안에 여운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와인이다. 
위에 있는 세 병의 와인 모두 El Coto(엘 꼬또)와인이고, 다른 점은 숙성을 얼마나 했는지의 차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 수록 숙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만큼 더 풍기가 깊고 여운이 오래 남으며, 드라이함도 강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있는 와인-Coto de Imaz Reserva (꼬또 데 이마즈 레세르바)-을 참 좋아하는데, 저 와인을 처음 만났던 때는 바로 마드리드였다.

마드리드에도 한국처럼 6시 퇴근 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집으로 가기 전 술을 한 잔 하고 가는 포장마차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산 미겔 시장 (Mercado de San Miguel).
역시나 스페인에 있을 때 그 분위기를 누구보다 즐기고 싶었기에 한 번 씩 시장에 가서 맥주와 함께 간단한 안주 (스페인에서는 따빠스(Tapas)라고 부른다)를 먹곤 했다. 

그날은 다른 때와 다르게 비가 내렸고, 비를 맞아 조금 쌀쌀해져서 시장에 도착했을 때 맥주가 아닌 다른 것이 마시고 싶었다. 
아직 와인의 맛에 눈을 뜨지 않았기에 나의 생각 회로는 맥주 대신에 와인을 먹어야 한다는 것으로 흘러가지 못했었다. 
시장 내부를 정처없이 돌아다니던 중에 순간적으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산 미겔 시장에서 꼭 오늘의 와인(Vino tinto de hoy)을 마셔봐."

그리고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와인 판매대에 가서 '오늘의 와인'을 주문했다.
바로 앞에 놓여 있던 Cote de Imaz Reserva (꼬또 데 이마즈 레세르바)를 들고 반 잔을 따라주는데, 와인의 향이 코를 뚫고 머리까지 들어와서 나의 모든 신경을 집중시킬 정도였다. 그것이 처음 만났던 El Coto(엘 꼬또)와인이었다.

그리고 이 날 알게 되었다.
코 끝이 차가워지는 날에 마시는 와인은 최고의 순간을 선사해준다는 것을 🍷

이번 주는 계속 이 날씨가 계속 된다고 하는데,
이번 주에는 한 번 아주 드라이하고 풍미가 깊은 레드 와인을 마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