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관한 탐구, 토요인문학교실 수업 이야기
이광현(천안신당고등학교 역사 교사)
저는 역사 교사이지만 세상을 살며 만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중 제가 유독 관심을 기울였던 분야는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저의 문제의식은 인권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었고 질문에 질문을 더해가던 중 도달한 질문이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당연히 답을 낼 수 없는 큰 질문이었기에 해답을 얻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한창 다양한 사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른들은 이런 큰 질문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미 익숙해진 탓일지, 어려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일지, 아무튼 어른들과는 대화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이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다양한 사업들이 있는데 ‘인문교육학융합특성화’라는 아주 긴 이름의 사업도 그중 하나입니다. 마침 예산의 여유가 있었고 함께 인문학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던 선생님이 계셨기에, 저는 국어 선생님 한 분과 팀을 이뤄 여러 차시에 걸친 긴 호흡의 수업을 기획하였습니다. 그렇게 기획된 수업에 참여한 친구들은 비록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성적이 높지 않은, 하지만 학교를 좋아하는, 일부는 서로 친하면서도 무리 간엔 어색함이 흐르는, 그런 학생들이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16명의 학생과 함께한 수업이 어떤 주제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날, ‘나’라는 인간 : 인간을 설명하고 싶은 다양한 도구들.
‘토요인문학교실’은 교사가 강의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기보다 학생들이 주제와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읽거나 서로 대화하며 각자의 생각들을 만들어가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수업은 대체로 자료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개인 활동과 서로 대화하며 활동 결과를 공유하는 모둠 활동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사전에 조사한 모둠 내 역할(이끔이, 기록이, 발표자, 정리도우미) 신청 자료를 토대로 임의로 모둠을 나누었는데, 다른 반 학생들이 모이니 어색함이 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알아가며 친밀감을 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 가졌던 주제는 여전히 인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저 사람의 성격은 이래’라거나 ‘저 사람의 유형은 저래’라는 식으로 사람의 성격을 정의하고 유형화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도구들을 활용해 서로를 소개해보도록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진행된 프로그램은 ① 비주얼싱킹으로 자기 소개하기, ② ‘5가지 사랑의 언어’ 검사, ③ MBTI 성격 유형 검사입니다.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 한편, ‘사람의 성격이나 속성을 다양한 검사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점을 이해하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활동 결과를 토대로 서로 대화하는 속에 상대를 이해하며 친밀감을 형성함으로써 첫 수업의 목표였던 모둠 세우기도 어느 정도 달성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날, ‘인간’의 조건 : 인간과 로봇은 어떻게 다른가.
AI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시대에 저는 문득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영화에서나 그렸던 세상이 빠르게 현실이 되는 시대에 AI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날이 곧 도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영화를 시청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 제약으로 인해 텍스트를 선택하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진이 펴낸 “인간을 다시 묻는다”의 ‘인공지능과 인간’을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자유롭게 책을 읽은 아이들은 다시 모여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들이 읽는 텍스트가 아이들의 읽기 능력에 따라서는 다소 어려운 텍스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비교적 쉽게 아이들이 생각을 끌어낼 수 있게 인간과 로봇의 형상을 한 장에 담은 그림 자료를 제공해 둘을 비교해보도록 과제를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인간과 로봇 사이를 연결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적고 그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한 모둠에서 진행된 토론은 다시 2명씩 모둠을 이동해가며 서로 다른 모둠의 이야기를 듣는 순환식 토론도 이어갔습니다. 아이들은 같은 모둠 내에서 생각의 차이를, 다른 모둠에서 생각의 차이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인간과 로봇을 비교하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의 조건을 알아보았습니다. 주로 나왔던 차이는 ‘따뜻한 마음’, ‘사랑’, ‘질문하는 능력’ 같은 것이었습니다.
셋째 날, ‘우리’의 조건 : 누가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가.
제가 가진 가장 큰 문제의식은 우리 시대의 혐오와 차별입니다. 평등을 요구하는 여성과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남성의 갈등,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과 불편을 호소하며 장애인을 질타하는 잠재적 장애인의 갈등,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훈육과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기본권조차 무시당하는 어린이와 무시하는 어른의 갈등. 자본가와 노동자, 거주민과 이주민, 기독교와 이슬람 등,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다양한 정체성 간 갈등은 저에게 함께 사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통합의 과정이 아닌 상대를 배제해 내 것만 고수하는 대립의 과정으로 다가왔기에 인간 사회에 대한 또 다른 회의와 공포를 불러왔습니다.
적어도 이러한 갈등 현상을 설명하려면 다양한 사회학적 이론들이 보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가 인문학의 영역인지 사회학의 영역인지 구분 짓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주제였고, 수업에서 이어지는 큰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욕심을 내보고자 했습니다. 사회 수업이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활동 후 아이들이 다양한 정체성의 인간들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마음만이라도 갖기를 바라며 수업을 고민했습니다.
수업은 마찬가지로 “인간을 다시 묻는다”의 ‘누가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가’를 읽고 생각을 공유한 뒤 활동을 이어가도록 기획했습니다. 이번 글은 유럽에서 유대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다뤄졌는가를 다룬 글이라 비교적 어렵지 않아 아이들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다음이었습니다.
다음 이어진 활동의 기획은 이렇습니다. ① 대형 포스트잇에 성소수자, 여성, 외국인 노동자, ‘비정상가족’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유형을 하나씩 적어 벽에 붙여 게시한 뒤, 학생들이 각 종이 앞으로 이동해 종이에 적힌 정체성에 대해 세간에 들어봤던 언어표현들을 적는다. ② 각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적혀 있는 혐오 표현을 접할 때의 심경을 감정 이입해 이해해본다. ③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대항 표현을 제시해본다. ④ 혐오 표현이 만들어지는 권력 구조를 이해하며 바람직한 자세를 토론한다.
그러나 저의 기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제가 의도한 것은 다양한 혐오 표현이 나올 것을 예상했는데,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혐오 표현을 적은 데 비난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아이들은 제가 생각했던 만큼 혐오 표현을 적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적혀 있는 표현들로 활동과 해설을 이어갔는데, 아이들이 잘 공감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수업이 종료되고 나서 몇몇 아이들에게 저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활동 소감을 물으니, ㉠ ‘비정상가족’, ‘트랜스젠더’ 같은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 ‘여성’이 왜 사회적 소수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 대상들을 공격하는 혐오 표현을 들은 경험이 없다 등의 반응이 나왔고, 대체로 ‘선생님의 의도는 이해했지만, 오늘 수업은 어려웠다’라는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수업 내용의 수준과 학생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점과 그만큼 사전에 선행되어야 했던 다양한 개념과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수업은 실패를 참고로 다른 선생님들과 섬세하게 다듬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업은 끝났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글이 너무 길어지는 느낌이 들어 급히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위의 세 주제가 제가 구상했던 연결되는 맥락의 핵심이었기에 나눠야만 했던 내용은 충분히 다룬 듯합니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수업은 긴 호흡으로 진행된, 두 명의 교사가 함께 만든 수업이었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소개하지 못한 ‘패션의 인문학’, ‘대중가요 속 인문학’, ‘친구야, 나를 소개해줘’와 같은 수업도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다시 기회가 될 때 수업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끝으로 이 글을 보진 못하겠지만, 저와 함께 수업하며 다음 수업을 기다렸던 토요인문학교실 참여 학생들에게, 너희와 함께 해서 선생님도 많이 배웠고 행복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모두가 존중받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 어려운 길을 즐겁게 가보려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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