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총평 + 바이든 시대는 무엇이 바뀔까?

그래도 바이든 당선으로 세계멸망을 막은 미국인에게 감사를!

2021.01.22 | 조회 7.46K |
0
|

주간 이승환

언제 폐간될지 모르는 뉴스 큐레이션

트럼프 시대가 끝나고 바이든 시대가 열렸습니다. 익명의 전문가와 관련하여 현재 미국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3회 정도 트럼프-바이든 특집이 마련됩니다. (설문 바로가기)


Q. 트럼프 당선부터 논란이더니, 폭동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A. 미국 밑바닥 국민, 특히 점점 입지가 좁아져 가는 백인 서민들의 분노가 쌓인 결과로 봅니다. 산업이 몰락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진 내륙 사람들은, 지금 미국의 모습을 놀랍지 않게 여깁니다. 미국 동서부 해안가에 살며 여전히 고학력, 고소득인 계층이 무시해 왔을 뿐이죠. 중남부 내륙 백인들의 열패감은 상당합니다.

진할수록 살기 좋은 곳, 중남부에 옅은 색이 몰려있다
진할수록 살기 좋은 곳, 중남부에 옅은 색이 몰려있다

Q. 그나마 평등을 추구하는 쪽은 민주당인데, 백인 서민들은 왜 공화당에 표를 던졌을까요?

A. 민주당의 좌우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습니다. 다양한 마이너리티까지 품으려 하죠. 이러다 보니 정작 과거 주류 백인들은 자신들이 덜 대변된다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죠. 민주당 지지층의 PC함 때문에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기도, 그런 발언을 하기도 힘듭니다.

반면 공화당은 고학력층이 점점 리버럴로 기울고 있습니다. 정통 보수 엘리트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죠. 이 공백을 티파티 등으로 대변되는, 우파 포퓰리즘이 파고 들어와 급격히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공화당은 ‘밑바닥 민심의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세력이 파고든 정당’이 되어버린거죠.

티파티는 강경한 기독교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며, 공화당을 점점 잠식해갔다
티파티는 강경한 기독교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며, 공화당을 점점 잠식해갔다

Q. 그래도 극우 성향의 티파티가, 전통 공화당 지지층보다 더 강해졌다는 건 신기하네요.

A. 선거제도의 영향이 있죠. 대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 보수 엘리트들은 당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대도시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고학력 리버럴과 마이너리티 인구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반면 소도시와 시골은, 중저학력 백인 지지가 공고해지면서 당선이 쉽죠.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우경화는 더욱 가속화됩니다.

이런 인구 구성의 변화와 지역 산업의 흥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벨트’(미국 남부, 북위 37도 이남의 따뜻한 주)는 산업이 흥하고 백인이 늘던 20세기 중반에는 공화당 텃밭으로 넘어갔었죠. 그런데 이제는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대거 넘어오고 전통산업이 쇠퇴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어요. 이런 갈등의 현장에서 극단주의가 점점 커져가고 있죠.

‘선벨트’는 미국 남부 지방(앨라배마,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네바다, 뉴멕시코,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을 의미한다. 한때는 대체로 공화당의 텃밭이었으나, 최근 인구구조의 변화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선벨트’는 미국 남부 지방(앨라배마,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네바다, 뉴멕시코,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을 의미한다. 한때는 대체로 공화당의 텃밭이었으나, 최근 인구구조의 변화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Q. 그러면 트럼프는 그들의 대변자다? 차별을 자유롭게 내뱉고 실행하는?

A. 노골적으로 그걸 드러낸 건 맞죠. 하지만, 인종차별주의자라고만 매도하긴 힘듭니다. 인종차별자도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정치 기반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몰락한 백인 중산층이, 소위 잘난 사람들의 PC함에 반기를 들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Q. 그러면 그 몰락한 백인들에게, 트럼프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트럼프의 4년 역시 결국에는 돈 있고 배운 사람들이 혜택을 많이 봤죠. 다만 역사를 보면, 민중은 당장 체감적으로 나아지는 것보다 뭔가 눈에 보이는 통쾌함을 좋아하기 마련이죠.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재선에 목을 맸던 것도, 사이비 교주를 잡아넣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정말 지금 생활이 팍팍 나아지는 걸 체감해서가 아니라, 이제 좀 뭐가 되려 하는데 잡아들이면 어쩌냐, 다시 바이든 되면 옛날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 이런 심리도 있겠죠.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음에도, 트럼프주의자들은 부정선거를 외치며 의회를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점령’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음에도, 트럼프주의자들은 부정선거를 외치며 의회를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점령’했다

Q. 뭔가 말도 안 되는 심리 같은데요…

A.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더더욱 편향된 정보에 노출돼 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소비하는 뉴스를 보면 정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수준입니다. 사람의 인식은 소통하는 주변 지인과 노출된 정보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가 막아주지 않으면, 그나마 남은 기반까지 다른 마이너리티와 해안가 부자들이 뽑아갈 거라는 불안감을 정말 진지하게 안고 삽니다. 외국인들 눈에는 가짜뉴스에 속는 바보로 보이겠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정말 절박합니다.

2016년 대선 당시에도, 트럼프의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는 가짜뉴스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고 인기를 끌었다 (출처: 조선일보)
2016년 대선 당시에도, 트럼프의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는 가짜뉴스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고 인기를 끌었다 (출처: 조선일보)

Q. 미국의 소외된 계층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억하심정을 가지는 거죠?

A. 이렇게 극단으로 쏠리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세계화와 IT화가 진행되며, 그 반향으로 계층, 지역, 인종… 이런 갈등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과거 망국적이라던 지역갈등이 많이 완화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갈등의 전선이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죠. 한국이 경제가 아주 나쁘지는 않고, 이민자가 유입되기 어려워서 갈등이 덜할 뿐이라 봅니다. 미국은 이게 한계까지 와서 터진 것이지요.

Q. 미국이 특히 심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역경제가 폭망하고 생활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린 결과겠죠. 미국은 전통적으로 수십 개 나라, 수천 수만 개 지역 사회가 느슨하게 묶여 있는 형태입니다. 균질성이 높고 중앙집권 전통이 강한 한국과는 다르죠.

여전히 미국은 기회의 나라입니다. 능력이 있고 도전적인 사람은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거대한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지역 사회에 뿌리박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죠. 저학력 백인들 다수는 지역 사회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싶어해요. 하지만 기업은 중국 등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고, 그나마 남은 일자리도 이질적인 이민자들이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미는 거죠.

미국 이민자 수는 빠르게 늘고, 그만큼 전통업에 종사하는 백인들의 불만도 크다
미국 이민자 수는 빠르게 늘고, 그만큼 전통업에 종사하는 백인들의 불만도 크다

Q. 그럼 트럼프의 슬로건이었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란 무슨 의미인가요?

A. 트럼프 지지자가 볼 때, 미국은 특정 계층, 특정 지역, 특정 부분만이 위대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위대함이라는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미국이 잘 나가던 1950~70년대의 향수가 바닥에 깔려 있다고 봐야죠. 케네디 때에도 ‘Great America’를 역설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미국이 악의 무리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에 맞서는 가장 힘센 국가이기도 했고, 평범한 사람도 충분히 잘 살고, 기회를 얻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물론 철저히 주류 백인들 시각에서지만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미국은 위대함에서 벗어났다 생각하는 거죠.

존 F. 케네디는 공산주의와 강하게 맞섰다
존 F. 케네디는 공산주의와 강하게 맞섰다

Q. 어쨌든 민주당이 승리했습니다. 나름 미국 국민이 포퓰리즘은 안된다는 학습을 한 걸까요?

A. 학습으로 해결되거나 해소될 상황이 아닙니다. 트럼프 편 든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미쳐서는 안 됐다는 자성이 필요한데 쉽지 않죠.

Q. 자성보다는 약자 계층의 성장과 평등이 필요하지 않나요?

A. 그게 정석이기는 한데… 참 어렵습니다. 민주당도 이를 인식하고 해결책의 하나로 그린뉴딜을 들고 나왔지만, 효과가 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예전 뉴딜은 글로벌화 이전에 이뤄진 것이라, 국내에 효과가 직빵이었습니다. 지금은 돈을 풀고 사업을 벌여도 여기저기 많이 샙니다. 민주당은 내부 목소리가 다양한 만큼 이래도 저래도 불만이 터져 나오죠. 끈질기게 정책을 밀고 나갈지도 의문입니다. 앞으로 중심을 잘 잡아줄 바이든의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합니다.

공화당이 망가지는 것도 문제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패배 이후, 형식적인 절차일 뿐인 선거인단 인증에 훼방을 놓는 등 악질적으로 대응했다. 지난 1월 6일, 펜실베이니아의 선거인단 인증에 반대하는 표결이 상원에서 실패했음을 알리는 cnn 뉴스 홈페이지.
공화당이 망가지는 것도 문제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패배 이후, 형식적인 절차일 뿐인 선거인단 인증에 훼방을 놓는 등 악질적으로 대응했다. 지난 1월 6일, 펜실베이니아의 선거인단 인증에 반대하는 표결이 상원에서 실패했음을 알리는 cnn 뉴스 홈페이지.

Q. 혹시 포퓰리즘에 취약한 양당제의 한계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A. 단언하기 쉽지 않습니다. 제도주의적 입장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정당의 출현과 권력 분산이 극단을 막는 경향성은 있지만, 정답이라 보기는 힘듭니다. 제도로 다 해결되는게 아님은 다당제 유럽이 잘 보여주고 있지요. 난민, 이민자 문제로 포퓰리즘의 유혹에 계속 빠져들고 있잖습니까.

Q. 그러고 보면 유럽도 어째 포퓰리즘으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

A. 미국도, 그나마 ‘미국은 원래 이민자의 나라였다’고 주입식 학습이라도 시켰기에 저 정도라고 봅니다. 어느 사회나 제노포비아 본성은 있습니다. 유럽도 20세기에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깔린 세계대전과 제노사이드를 겪으며 학습했으니 이 정도인거죠.

하지만 이것도 비극의 가해자인 독일 같은 곳 이야기고, 주변부 국가들은 제노포비아가 굉장히 심합니다. 교육으로 끊임없이 본성을 억제해야만 하는 이유죠. 그런 면에서 취약한 동유럽 국가는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굉장히 심하고, 중서유럽 국가에서도 비극의 기억이 옅어지고 현실의 고통이 가중되니 그 불길이 자꾸 고개를 들고 있죠.

유럽 인종차별 지수, 동쪽이 확실히 심함을 알 수 있다
유럽 인종차별 지수, 동쪽이 확실히 심함을 알 수 있다

Q. 그래서 트럼프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됐나요?

A. 솔직히 모두가 외면해오던 문제를 드러낸 건 사실입니다. 말썽쟁이도 나름의 순기능이 있습니다. 너무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누적된 문제를 직시하는 기회가 되죠. 또 시도조차 힘들었던 해결책을 꺼내 드는 기폭제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파격적 해법은 대개 결과도 좋지 않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구조적인 함정을 탈출하는 기회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미중 무역전쟁이 있습니다. 많은 미국 정치인들이 꺼내 들지 못한 부분인데, 트럼프가 제대로 질렀죠. 방식이 거칠긴 했지만 할 일을 했다는 인식도 존재합니다.

Q. 미중 무역전쟁 외에, 트럼프 시대의 의의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수십년간 진행된 백인 중산층 몰락의 심각성을 보여준 거겠죠. 편향된 시각이라 해도 전통적인 미국의 존립 구조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저도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돌풍은 일으켜도 당선은 못할 것이라 굳게 믿었는데 한방 먹었죠. 설마 이 정도였을까 싶은 미국의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점에서 역사적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트럼프의 당선 자체가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폭로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의 당선 자체가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폭로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Q. 미국의 전통 가치는 무엇인가요? 교회 다니는 가족 중심 백인…?

A. 전통적인 주류 백인 입장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종교적 의미도 깊습니다. 이들에게 미국은 언약의 땅이기도 합니다. 구대륙을 떠나 하나님 믿으며 열심히 살면, 하나님이 젖과 꿀이 가득한 터전을 주실 것이다…, 그런 종교적 믿음이 있었죠. 미국은 이를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로 발전시켜 전 세계에 전파하는 선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노포비아의 본성을 억제하고 그나마 공동체를 결합해주는 데에는 종교의 역할도 매우 컸죠.

오랫동안 북미 대륙에 터를 잡은 서민 백인들 입장은 이렇습니다. 미국은 그렇게 기독교적 전통과 자유민주주의, 둘을 결합하며 가치를 전파하는 선구적인 낙원이었는데, 지금 이게 뭐냐… 기독교 믿지도 않는 이교도들이 들어와서 우리보다 잘 살고 있지 않냐… 공산당 깨부수고 소련 붕괴시켰는데, 이제는 중국놈들이 기어올라오고 있지 않냐… 이렇게 불만들이 더욱 커져가는 거죠.

현실보다 성경을 우선시하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트럼프주의와 결합하기도 했다, 이들은 낙태와 동성애에도 강하게 반발한다
현실보다 성경을 우선시하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트럼프주의와 결합하기도 했다, 이들은 낙태와 동성애에도 강하게 반발한다

Q. 일단 모순이 드러나긴 했는데요. 그래서, 수습은 됐나요?

A. 뚜렷한 해답은 트럼프도 못 찾았죠. 트럼프의 사업 이력을 보면, 허점을 노리기는 잘 해도 뒷수습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는 그리 능란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동산 사업도 망하고 배째라로 나간 게 한 두 건이 아닌데, 운 좋게 금융권이 봐주고 온갖 쇼맨십으로 치장해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죠. 대통령 업무도 그 모양이어서 임기 내내 폭주했고요. 그러다가 특유의 자기 최면에 빠져 막판에 폭동도 부추기는 데까지 치달은 거죠.

그래도 미국은 법에 대한 권위가 굉장히 높습니다. 의사당 점거사건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반역이란 비판을 할 정도죠. 의사당 안에서 남부연합 깃발을 든 시위대가 활보한 것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흡수 통일된 한국에서 인공기 들고 국회 난입하는 꼴입니다.

의회에 난입한 트럼프주의자 폭도들은 남부연합기를 흔들기도 했다.
의회에 난입한 트럼프주의자 폭도들은 남부연합기를 흔들기도 했다.

Q. 중국을 쪼는 건 미국에게 이익인가요?

A. 최근 십 수년간 미국 정계에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이룬 인식이, 중국을 너무 오냐오냐 키워줬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잘 반영된 대표적 저작이 필스버리의 ‘백년의 마라톤’이죠. 미국 민주당-공화당 모두, “그간 너무 순진하게 중국을 키워줬는데, 중국은 절대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쫓아오지 않을 놈들”이라는 배신감만 느끼고 있습니다.

Q. 대중 제재가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됐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역전쟁이 당장의 후생을 좋게 하지는 못합니다. 관세를 더 물린다 해도, 중국의 생산에 의지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수입대체 효과는 매우 낮았죠. 다만,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를 늦추는 데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이건 말 그대로 전쟁이라고 봐야 합니다. 전쟁은 내가 100을 손해보고 상대가 50만 손해보더라도 나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게 1000이고 상대가 가진 게 100이면 나는 10%, 상대는 50%의 타격을 입은 거니까요. 중국이 더 맷집을 키우기 전에 해 볼만한 일이었던 거죠.

그간 대중 적자가 무진장 크긴 했다;;;
그간 대중 적자가 무진장 크긴 했다;;;

Q. 외려 미국이 러시아와는 친하게 지낸 느낌입니다.

A. 군사적 위협이 남았지만,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이 심대한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경제도 미국과 별로 겹치지 않고, 미국에 크게 위협이 될 만한 기업도 없습니다. 저출산에 인구도 감소 추세여서 거대한 영토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를 더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장기적인 활력이 부족합니다.

이 점에서 1970년대 데탕트 시절, 미국이 중국에 접근한 것과 비슷한 전략도 계속 제기됩니다. 당시 중국은 소련의 침공을 걱정했고, 미국은 이를 이용해 중-소 결탁을 막으며 소련을 견제했죠. 이제는 거꾸로 중국이 커지고 있으니, 중-러를 이간하는 게 분명 필요합니다.

다만 러시아가 지난 몇 년간 미국 대선에 개입하고 사이버전 도발, NATO 변방 도발을 계속해와서, 바이든 시대에는 적극적 밀착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미-러 관계의 극적인 반전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봅니다.

푸틴을 추켜세우며, 미국마저 디스한 트럼프
푸틴을 추켜세우며, 미국마저 디스한 트럼프

Q. EU와 관계는 왜 이리 안 좋았던 건가요?

A. 이건 근본적인 것보다, 트럼프 특유의 난폭함 때문입니다.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몰락한 귀족과 비슷했습니다.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유럽도 자존심과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지역이죠. 미국은 실력차가 있어도 유럽의 이런 면을 인정하고 존중해줬습니다. 미국은 NATO라는 거대한 안보 공동체를 꾸려 대소전선을 공고히 하고, 유럽 각국은 큰 부담 없이도 적정한 지위를 누리게 해줬죠.

이렇게 한 발씩 양보하는 게 수십년간 이어진 스탠스였는데, 트럼프는 그걸 뭉갰습니다. 계속 유럽 국가들에 대해서 모욕을 퍼부었죠. 브렉시트 때는 “내가 영국인이라면 브렉시트에 투표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NATO의 집단 안보체제의 가치를 뒤흔들었죠. 유럽 국가들은 미국 유권자들이 감당하는 안보에 무임승차하지 말고, 돈 내놓으라고 윽박질렀죠.

트럼프는 NATO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 외 국가들이 NATO에 돈을 더 써야 한다고 트윗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NATO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 외 국가들이 NATO에 돈을 더 써야 한다고 트윗하기도 했다

Q. 방위비 이야기는 한국에도 그랬는데… 무임승차 맞긴 합니까?

A. 사실 일부는 맞는 말입니다.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는 처참한 수준이죠. 세계대전 당시에 수백만 명을 동원하던 군사강국은 역사책 속에나 있습니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 가까운 적이 없어지니 엉망이 되었죠. 이것도 미중무역과 마찬가지로 불편한 진실을 깐 겁니다.

트럼프가 이야기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런 겁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하는 건 더 이상 ‘아낌없이 퍼주는 나라’가 아니라 ‘계산도 확실히 하며 내 이익을 챙기는 나라’죠. 솔직히 방위비 몇 푼 더 받는다고 당장 큰 보탬이 되진 않습니다. 다만 체면 때문에 할말 못하던 나라가 아닌, 당당하고 거침없이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거죠.

트럼프의 슬로건인 ‘MAGA’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 슬로건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과 유사성이 있다. 당시 미국이 공산주의라는 명료한 적들을 퇴치하는 신나는 미국이었다면, 트럼프는 좀 아무한테나 시비 건 느낌이긴 하다…
트럼프의 슬로건인 ‘MAGA’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 슬로건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과 유사성이 있다. 당시 미국이 공산주의라는 명료한 적들을 퇴치하는 신나는 미국이었다면, 트럼프는 좀 아무한테나 시비 건 느낌이긴 하다…

Q. 그래서, 미국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방위비를 좀 받았나요?

A. 한국에서는 꽤 뜯어냈죠. 작년에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트럼프가 만족 못 한다고 어깃장을 놔서 여전히 미정이긴 하지만, 바이든이라고 해서 이걸 다시 깎아 주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른 나라는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에 트럼프가 바이든으로 갈렸네요(…).

Q. 이제 대통령이 바이든으로 바뀌었잖아요. 어떤 변화가 올까요?

A. 미국의 전통적인 엘리트층 시각에서는 미국의 국제적 위신이 엄청 추락한 상태입니다. 그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는 게 최우선이죠.

어쨌든 누가 보든 미-중 패권대결이 불가피하니 전선을 정비해야 합니다. 트럼프는 중국과 대립하면서도, 당장의 이익 역시 중시해 동맹국들로부터도 돈을 더 뜯어내려 했습니다. 반면, 바이든은 좀 더 긴 호흡으로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연합세력 확보에도 가치를 둘 거라는 차이가 있겠죠.

민주당이라고 해서 미-중 패권대결을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미-중 패권대결을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Q. 미국 국내 경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A. 여전히 미국은 심각히 분열돼 있고, 백인과 흑인 모두의 큰 불만 원인인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바이든 경제정책에서 내세우는 그린 뉴딜도 이 맥락에서 나온 거죠.

미국은 돈을 엄청 풀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든 상황이니, 인플레이션이든 뭐든 돈을 뿌려 경제부터 살리자는 거죠. 그런 면에서 건설/토목으로 경기 일으키는 건 고통이 집중되는 중하층 계층에게 그나마 도움이 됩니다. 마침 미국은 인프라 노후화로 사고가 많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시대적 가치인 친환경, 그린 색깔을 입히니 명분도 좋지요.

미국 사회인프라는 이만큼 후졌다 (2013 자료)
미국 사회인프라는 이만큼 후졌다 (2013 자료)

Q. 트럼프는 왜 그린 뉴딜을 안 했죠?

A. 트럼프도 하려고 했습니다. 다만 집권 1기에는 민주당의 의회에서 반대를 했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민주-공화당 할 것 없이 돈을 풀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거고요. 인프라 1조 달러 투자는 이번 재선에 나선 트럼프 공약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이제 거기에 한 술 더 뜨고 있죠.

그 외에 트럼프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모순된 경제정책을 남발했습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을 공부한 입장에서는 참 주먹구구식 대책투성이였죠. 금리 낮춰서 돈 빵빵 풀고 경기 활성화시키고 달러가치 떨어뜨려 경쟁력 회복시키자고 하다가, 정작 달러가치가 떨어지니 또 다시 구매력 떨어진다고 달러가치 올려야 한다고 하고…

근데 이런 행보가 좌충우돌로 기업을 일으켜온 사업가에서 많이 나타나는 성향이긴 합니다. 패러독스 경영이란 말도 있지만, 기업은 그렇게 하다가 대박 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경제는 중국을 압박해서 조금 좋아지는 듯하다가 코로나로 결국 다 물거품이 된 상황이고, 주식시장 투자자들만 승자가 됐죠.

코로나19는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을 망친 가장 큰 사고이기도 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을 망친 가장 큰 사고이기도 했을 것이다

Q. 그래도 시진핑을 누르는 데는 성공했다 봐야 하나요?

A. 그 점에서 사업가적 본능은 분명했습니다. 기존 미국 엘리트 입장에서는 터부시되는, 중국의 약점을 잘 조졌죠. 중국 입장에서는 ‘설마 이런 짓까지 할 줄이야’ 할 부분을 많이 밀어붙였습니다.

화웨이, 틱톡 등 IT 업체들 밟아 죽이기는 이제 시작이고, 첨단산업 경쟁력에서 중국은 아직 아킬레스건이 여럿 있습니다. SW, 반도체, 소재 등 중요 원천기술에 공백이 있죠. 미국에게 이 카드가 유효하며, 지금부터 써야 하는 카드라는 걸 보여줬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작년 한일 무역갈등을 보세요, 일본이 고순도 불산 등의 공급을 조여 한국 반도체 업체들을 위협해보려 했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없었죠. 이걸 10, 20년 전에 꺼내 들었으면 정말 치명적이었을 겁니다.

세계 1위를 노리던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미국의 제재로 급격히 추락할 것이 예상된다. (출처: 중앙일보)
세계 1위를 노리던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미국의 제재로 급격히 추락할 것이 예상된다. (출처: 중앙일보)

Q. 사기업간의 일인데, 제재가 가능한가요?

A. 당장 못 쓰게 하거나 하진 않아도, 위협만으로 협상 카드가 되지요.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매년 몇천억 달러씩 손해를 보고 있는데,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온갖 짓을 다 했지만 아직은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핵심 생산기계를 사와야 하는데, 아직도 미국과 유럽만이 공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미국이 이걸로 중국을 굉장히 잘 눌렀죠.

체면만 차리며 이런 카드를 안 쓰고 10년 정도를 보냈으면 그나마도 효과가 사라졌을 텐데,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일이라고 봅니다. 특히 반도체로 먹고 사는 우리 한국은 트럼프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고마워해야 할 노릇이죠.

삼성도 많이 까였는데, 미국에 가전공장 세운다 하니 사랑한다고…
삼성도 많이 까였는데, 미국에 가전공장 세운다 하니 사랑한다고…

Q. 반대로 중국 입장은 어떨까요?

A. 중국은 앞으로 바이든 재임 기간에 중요 이벤트가 많습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눈앞이고, 2023년은 시진핑 3선 시작입니다. “공산당 기치 하에 단결했더니, 드디어 대국굴기의 꿈을 이뤄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하려 한다”… 이런 메시지로 엄청나게 결속할 겁니다. 중국의 교육과 언론은 더욱 선동 수단으로 쓰이고, 사석에서도 조심할 정도로 통제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의 경직된 사회분위기를 만든 데에는 트럼프 도발의 영향도 컸습니다.

Q. 트럼프가 코로나에도 영향을 줬을까요?

A. 없진 않죠. 지금까지도 미국인의 음모론적 시각 확산에 기여했고, 정책적으로도 많은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 않았을까 싶네요. 미국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팬데믹에 엄청난 취약성을 드러냈으니까요. 민주당이었다고 지금보다 잘했을까…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을 거라 봅니다.

물론 트럼프가 팬데믹 대응 매뉴얼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반면 민주당 소속의 쿠오모 뉴욕 주지사 등은 강력한 셧다운 조치 등으로 방역에 선전했다는 평도 있습니다. (참조 링크) 그러나 민주당이 집권을 했어도 정확한 상황 파악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고, 미국의 민심 분열과 의료체계의 허점은 여전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주당이 집권했어도 수많은 미국인들은 마스크 안 쓰고 활개치면서 바이러스를 곳곳으로 전파시켰겠죠.

미국인들은 마스크 착용 반대 시위를 벌이며 코로나19를 더욱 전파시키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마스크 착용 반대 시위를 벌이며 코로나19를 더욱 전파시키기도 했다(…)

Q. 금융시장 대처는 어떻게 봅니까?

A. 이 부분도 트럼프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금융당국이 학습한 게 제일 컸습니다. 어느 시스템이든 위기를 겪어봐야 노하우가 생깁니다. 한국의 K방역도 메르스 때 된통 당해봐서 쌓인 노하우가 결정적이었죠.

미국도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위기가 어떻게 번져나가고 어느 부분에서 빨리 대처해야 하는지 이미 많은 사람이 학습했습니다. 그래서 연준이 신속하게 금리를 팍팍 내렸죠. 이런 부분은 누가 집권하고 있었든 미국 금융 당국자들이 잘 대처했을 겁니다.

Q. 그러면 트럼프가 긍정적 영향을 미친 부분이란 건…?

A. 트럼프는 성향상 주식시장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습니다. 적어도 주식시장만 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느 정도 지지해줄 거란 생각이었겠죠. 주식시장이 주저앉을 기미가 보이면, 당장 돈 풀라고 연준과 재무부장관을 닥달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관적인 심리가 전염되는 것을 차단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도 했다

Q. 근데 덕택에 지금 엄청난 인플레이션 위기 아닌가요?

A. 약달러 지속에는 대부분의 시장참여자가 동의합니다. 이 여파를 감당할 곳도 없습니다. EU도 상황이 안 좋고, 기회만 보이면 위안화 가치 낮게 유지하려는 중국의 대처도 불안하지요. 그 누구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돈을 안 풀 수도 없습니다. 실물경제가 가라앉는 불부터 꺼야 하니까요. 그 사이 부작용은 감수해야죠. 그게 주식으로 튀든 비트코인으로 튀든, 지금은 인플레 걱정할 상황이 아닙니다. 코로나 집단면역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회복하는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가뜩이나 분열된 여론이 더욱 흉흉해지기 전에 돈을 쥐어줘서라도 심리를 억제해야지요.

Q. 바이든의 중미관계는 어떻게 보세요?

A. 민주당 입장에서는 좋은 핑계가 생겼죠. 어떻게든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당에도 팽배했는데, 그간 체면 때문에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온갖 사문화된 법조문을 다 꺼내서 각종 중국 제재를 발동했죠. 민주당은 이 기조를 유지하며 압박을 이어갈 겁니다. 트럼프가 용감하게 깨준 걸 이 걷어찰 이유는 없으니까요. 민주당 입장에서 중국과의 공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이걸 협상 카드로 쓸 수도 있고요.

트럼프는 홍콩자치법에 서명하여 중국의 ‘내정 간섭’이란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기본 수위를 많이 높였기에 바이든은 오히려 수월한 셈
트럼프는 홍콩자치법에 서명하여 중국의 ‘내정 간섭’이란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기본 수위를 많이 높였기에 바이든은 오히려 수월한 셈

Q. EU관계는 어떻게 보나요?

A. 트럼프 이전과 마찬가지로, EU 체면을 챙겨주며 관계를 복원하겠지요. 사실 EU의 협조 없이 중국을 견제하긴 힘듭니다. 실제로 미국의 중국 압박에 EU가 여러 차례 딴지를 걸었습니다. 워낙 경제적 이익이 첨예하니까요. 독일만 해도 중국에 엄청나게 투자했고, 중국의 경제적 비중이 낮지 않습니다. 독일이 EU에서 헤게모니를 지키려면 중국을 버릴 수 없죠. 그렇기에 미국 입장에서는 EU와의 줄타기가 중요합니다.

Q.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북미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A. 트럼프 때는 그냥 망했죠. 트럼프가 ‘왜 이제까지 이 쉬운 문제 하나 해결 못한 거야, 내가 화끈하게 해결해줄게’ 라고 달려들었죠. 그렇게 공수표를 남발했다가, 왜 북미관계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지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결국 트럼프도 북한과는 아무리 잘해도 본전치기밖에 안 되니 냅두자고 판단한 것 같아요. 북한 입장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천재일우의 기회로 기대했는데, 얻은 건 없고 자존심만 상하니 땡깡을 부린 거고요.

큰 기대를 받았던 북미정상회담은 아무 수확도 없이 끝났다
큰 기대를 받았던 북미정상회담은 아무 수확도 없이 끝났다

Q.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잘 지내려 했는데 미사일이나 쏘고… 북한에겐 남한이 중요하지 않나요?

A. 우호적이긴 했죠. 그런데 북한이 남한에 불만인 건… 너네는 결국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종속적 변수 아니냐, 이런 거죠. 계속 북한이 남한에 볼멘소리를 하는 게, 잘 해줄 생각이 있으면 실천을 하라는 겁니다. 그냥 먹을 거 좀 던져주는 정도가 아니라, 확실한 체제 안전 보장하고, 한미연합훈련 다 중지하고, 무기 증강 이런 거 포기하고, 그렇게 전향적으로 나서라 한 거죠. 그런데 현 정부는 그렇게까지 할 의사는 없어 보입니다.

Q. 거 국방비 좀 줄이고 훈련 줄이고 하면 안 되나요?

A. 북한이 아니라 중국 때문이라도 힘듭니다. 냉전 시대 주한미군은 소련의 남진을 막는 전선이었고, 지금은 중국의 동진을 막는 전초기지입니다. 과거 소련을 막는 전선이 한국과 일본이었다면, 지금은 한국과 대만, 인도가 중국을 막는 전선입니다. 양다리는 걸쳐도 이 전선에서 아예 떨어져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한 도박이죠.

한국, 대만, 인도는 오늘날 중국을 막는 주요 전선이다 (출처: 문화일보)
한국, 대만, 인도는 오늘날 중국을 막는 주요 전선이다 (출처: 문화일보)

Q. 비핵화는 가능할까요?

비핵화는 솔직히 아무도 내심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만한 유인이 없죠. 트럼프는 돈 적당히 뿌려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체제 보장 수준, 경제 지원 수준의 눈높이가 달랐죠. 사실, 근본적으로 가격이 맞을 수가 없는 게… 미국은 핵을 없애야 뭐라도 해주겠다 하는데, 북한 입장에서는 핵은 없애면 물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미국이 리비아건 이라크건 핵 보유국에 사기 쳐서 없앤 전례가 너무 많아서... 이 강한 불신의 게임을 깰 방법이 뭘까요. 전문가마다 여러 방안을 내놓지만, 북한의 불신을 해결하긴 힘들 겁니다.

Q. 중국이 북한을 버린단 썰도 있습니다.

A. 힘듭니다. 시진핑 이전에는 중국이 북한을 몹시 불편해하기는 했습니다. 이상한 놈들이 핵무기까지 갖고 설치니 분위기가 험악했죠. 능력도 없는 것들이 불장난하면, 중국 동북 쪽까지 위험해집니다. 중국 내 대북 여론도 안 좋을뿐더러, 트럼프 초기에는 미국 요구를 맞춰주며 화기애애하게 지내려고도 했죠.

하지만 지금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완충지대 역할도 인정할 수밖에 없죠. 핵무기를 들고 있는 북한에 경제 목줄을 채워서 행동대원으로 데리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앞으로도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적 종속관계가 이어지도록 여러 차례 고삐를 조였다 풀기를 반복할 겁니다.

시진핑의 머리가 작아보이는 착시효과
시진핑의 머리가 작아보이는 착시효과

Q. 그래서 북미관계는 어떻게 변할까요?

A.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희한하고 파격적인 접근을 택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트럼프 이후 미국에는 외교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북한 문제는 후순위죠.

또 북핵이 초기 단계일 때라면 모를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북한 보유 탄두가 몇 개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김정은의 핵무기 완성 선언은, 이미 핵탄두 최소 수십개를 갖고 있으니 당분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Q. 그러면 나름 미국에 실질적 위협 아닌가요?

핵무력은 중요한 협상 카드이긴 하지만 미국이 거기에 끌려다닐 수준이 아닙니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핵무기를 투하할 능력부터 의심됩니다. ICBM의 정확도와 안정성을 높이기엔 영토가 좁아 실험을 할 수가 없어요. 또 SLBM을 태평양으로 투입해 잠수함으로 쏘려니, 잠수함이 아직 너무 후져서 한미일 대잠방어망을 뚫을 길이 없습니다. 그럼 미국에 위협될 일은 없다고 봐야죠. 지금 열병식에 들고 나오는 미사일도 허세일 겁니다. 미국은 뻥카에 말려서 호들갑 떨 시간에 세계 곳곳과 자국 내에 놓인 중요 문제부터 해결하려 할 겁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는 김정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는 김정은
과연 바이든 임기 중에는?
과연 바이든 임기 중에는?

설문 한 번만 부탁 드립니다 (설문 바로가기)

의견을 주시면 더욱 좋은 뉴스레터가 될지도 모릅니다. 바빠서 언제 반영될지는 모릅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주간 이승환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주간 이승환

언제 폐간될지 모르는 뉴스 큐레이션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