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대단한 고소득 직종입니다. 전문직 중에서도 압도적인 소득을 기록하고 있지요. 그런데 작년 의대생들이 단체로 의사 면허 시험을 거부하더니, 정부에서는 재시험 기회를 줬죠. 무슨 일인지, 그 깊은 사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설문 있어요)
A.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 20년 만의 의사 파업 나비효과입니다
A-1. 의사들이 문재인 정부 하 보건복지부 추진 정책에 집단반발합니다
4가지를 하지 말라고 했죠.
1) 의사 수 늘이지마 = 의대생 수 늘이지 마
2) 공공의대 만들지 마
3) 일부 한방 첩약에 보험금 지급하지 마
4) 원격 의료 하지 마
이 중 핵심은 1과 2입니다. 3과 4는 매우 부분적으로 열린 것이라, 그렇게 큰 부분이 아니죠. 그러니까 의사 수 더 늘이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도 의사가 충분하다는 주장이죠. 국민의료는 뒤로 하고, 자기 소득만 보전하려 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A-2. 문재인은 원래 남의 이야기 잘 안 듣는지라, 생까고 정책을 실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의료계는 집단 반발, 이른바 의료계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수위는 모두 달랐습니다.
A-3. 개원의는 일부만 파업에 동참했고, 이조차도 며칠 병원을 쉬는 수준이었습니다
파업 첫날 개원의 휴진율은 10% 남짓이었고, 이조차도 빠르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사 면허를 찢는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면허증 찢는다고 바뀌는 건 없습니다. 우리도 운전면허증 찢는다고 자격 박탈이 되지 않듯 말이죠. 사실 개원의는 파업에서 크게 중요한 주체가 아니기도 합니다.
A-4. 전공의는 초기 70% 내외가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의대 6년을 마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일반의가 됩니다. 동네에 ‘병원’이 아닌 ‘의원’을 열 자격만이 생기죠. ‘전문의’ 이름으로 ‘병원’을 열기 위해서는 ‘수련의(인턴)’ 과정을 1년 겪으며 병원의 각 과를 경험하고, 그 중 특정 과를 선택하여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4년 겪어야 합니다. (2010년대 전공의 미달 사태가 일어나며, 3년으로 단축된 과도 있습니다)
의사 파업의 핵심은 전공의 파업입니다. 개원의가 파업한다고 죽을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내일 하는 사람은 응급실이 있는 대형병원으로 가죠. ‘전공의’는 그 대형병원의 개빡센 노가다를 도맡습니다. 즉, 전공의가 파업할 경우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 있지요.
의사는 긴 시간, 정부와의 협상에서 대개 더 많은 것을 얻어왔습니다. 그럼에도 극단적 투쟁, 파업까지 잘 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데 파업하는 순간, 국민 여론이 얼마나 악화될 수 있을지, 20년 전 의약분업 파업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A-5. 의대생은 의사 시험을 보지 않겠다 선언합니다
시험 안 보고 면허 못 따면 의대생들 손해가 아니냐고요? 그렇긴 한데… 이런 강짜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대형병원에 전공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즉 매년 의대생들이 꼬박꼬박 국가시험에 보고 인턴-레지던트가 되어, 대형병원 응급실에 투입되지 않으면, 응급실 인원이 부족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휴먼굴림체 전통은 의료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공의 평균 급여는 370만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응급실에 일이 터지면 자다가도 튀어나와야 합니다. 야간 당직도 돌아가면서 서야 하고요. ‘병원’을 열기 위해 필요한 ‘전문의’ 면허를 빌미로, 인턴-레지던트 기간 동안 병원에서 의대 졸업생을 싸게 부려먹는 겁니다.
인턴-레지던트 기간 동안 의사들의 응급실 생활은 굉장히 빡셉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마치면 상당수가 ‘전문의’ 시험에 합격 후 개원하지요. 빠져나간 의사 수만큼 의대 졸업생이 투입되지 않으면, 응급실 상황은 금방 비상이 됩니다.
A-6. 좌충우돌 끝 정부는 백기를 듭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의사와 응급실이 필요한 시점에 버티기는 힘들었죠. 민주당은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코로나 안정화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밝힙니다. 신규 의사 수(=의대생 수) 안 늘리고, 의사들 이권 침해하지 않겠다는 거죠.
A-7. 의사, 의대생에 대한 여론은 극도로 악화됩니다
한국은 원래 파업에 대한 인식이 나쁜 나라입니다. 하물며 사람 목숨 건 의사들의 파업에 좋은 시선을 줄 리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파업은 코로나 시국이었습니다. 항복한 건 민주당과 정부였지만, 의사들이 훨씬 많이 잃었습니다. 오죽하면 모든 댓글이 문재앙 개새끼로 대동단결하는 네이버에서조차, 의사들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부정적이었습니다.
이번 파업은 20년 전 의약분업 파업보다 더 나갔기에 옹호가 힘든 면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젊은 의사들이 ‘참진료지원단’을 구성하여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방 등 필수 의료를 끝까지 지키고자 애썼던 반면, 금번 파업은 처음부터 응급실, 중환자실을 포함했습니다. 명분이야 리베이트 이슈가 있던 20년 전보다 더 공익적이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는 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죠.
A-8. 전공의는 복귀하지만, 의대생들은 계속해서 시험을 거부합니다
정부는 의대생에게 ‘등록기간 사흘 더 줄 테니 시험 등록해’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험에 등록한 의대생은 14%에 불과했습니다. 의대생들은 구제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여론이 너무 싸늘했습니다. 마침 그때는 ‘덕분이라며 챌린지’와 ‘전교 1등 의대생’ 사건으로, 의대생에 우호적인 시선은 드물었죠.
또 한 가지 이슈는 사과 없는 의대생의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사과한 건 의대 교수들이었지요. 왜 사과해야 하냐는 의대생들의 모습에 국민 여론은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86%의 의대생 구제 없이 한 해가 마감되나 했는데…
A-9. 코로나로 의료인력이 부족해지자 구제됩니다(…)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이미 K방역은 무리한 의료진 갈아넣기로 버티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12월 매일 같이 코로나 1천명 확진이 이어집니다. 이런 대확산에 제대로 준비하고 있지 않던 정부는, 의료계의 더 많은 협조를 필요로 하게 되지요. 결국 정부는 의대생에게 추가 시험 기회를 제공합니다.
물론 시험에 합격한다고 당장 방역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의원’을 차릴 수 있음에도 바로 개업하지 않는 이유는, 의료행위 경험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최소 인턴 1년이라도 거쳐야, 임상현장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대생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부여한 건, 코로나 대응에서 의료계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의사단체에서 코로나 대응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의대생 구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겠지요. 코로나 유행 상황이 급박해지는 상황에서 정부도 의료계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욕먹을 거 알면서도 추가시험 실시를 선택했을 겁니다.
A-10. 의사도 정부도 신뢰를 잃은 치킨게임이 끝났습니다
만약 정부가 끝까지 구제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이는 의사와의 파워 게임에서 이긴 드문 사례로 남았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K방역이 계속 잘 돌아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심지어 겨울 코로나 대확산을 염두조차 하지 못한 듯, 허둥지둥 부족한 역량을 드러냈습니다.
의사들은 더 심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당장이야 의사 수 증원을 막았지만, 코로나 와중 극단적 자세를 견지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협상이 있을 것인데, 코로나 이후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싣기 힘들어졌습니다.
B. 의사 수가 충분하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맞는 거야?
: 아니오, 의사는 모자랍니다
B-1. 의협은 의사 수가 충분하다 주장합니다만, 사실과 다릅니다
의협은 국토 면적이 좁기에, 인구 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좀 부족해도 괜찮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OECD는, 한국의 진료 빈도가 높은 이유를 ‘의료공급자들의 과잉의료’로 해석하지요.
그리고 앞으로 의사가 더 필요해질 큰 이유가 ‘고령화’입니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합니다.
B-2. 예전부터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연구가 나왔지만 의사들은 생깠습니다
이미 2012년에 의사가 굉장히 부족해질 거라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의사들의 반발로, 신규 의사 수(=의대생 수)는 늘어나지 않았죠.
B-3. 의협 데이터는 조작 수준인데, 그 조작이 좀 허섭합니다
의협은 한국이 OECD 타 국가 대비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기에, 의대생 증원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2028년, 한국의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에 수렴하지요.
하지만 의협이 제시한 데이터는 의사가 복리로(!) 늘어난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매년 100명씩 의사를 배출한다고 하면, 신규 의사의 누적은 1년뒤 100명, 2년뒤 200명, 3년뒤 300명이 됩니다. 하지만 의협의 그래프는 증가율이 3.1%로 일정하다고 둬서 100명, 203명, 312명으로 늘어난다는 거죠. 즉 의사가 자가증식하는 셈입니다(…)
제대로 된 그래프들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B-4. 의협은 여전히 이 데이터를 근거로 의사 수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숫자 장난이야 흔한 일이지만 좀 심하죠. 또한, 의사들은 한의사를 한방무당이라 조롱하지만, 의사 수 통계에는 한의사를 꼭 끼우기도 합니다.
참고로 한의사를 통계에 넣어야 하는가, 이는 관점 따라 다릅니다. 한의사는 1차의료기관, 그러니까 동네병원 업무에는 기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의사와 달리 수술 등을 하진 않기에, 대형병원에서 맡는 응급실 업무에는 기여하지 못합니다.
C. 우리동네 병원 많은데요?
: 서울만 많고 나머지 지역은 부족합니다,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C-1. 서울만 따지면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데, 반면 지역은 정말 의사가 많이 부족합니다
한국의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는 2.3명인데, 서울은 3.1명입니다. OECD 평균 3.5명과 별 차이도 없고, 서울의 인구 밀집도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외국보다 나을 수준이죠. 상급종합병원 수도 10개가 넘어서 (줄 서는 여부와는 무관하게) 접근성도 좋은 편입니다. 반면 경북, 울산, 충남 등은 OECD 평균의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C-2. 정부는 이에 대한 작은 대안으로 지역의사제를 가져왔으나, 의협에서 깠습니다
의사들은 지역의사제가 아무 효과가 없을 거라 말합니다. 근거는 이미 지방 병원에서 돈 많이 주는데도 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정부의 안은 해외 사례에 관한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기초로 제안한 정책입니다. 특히 가까운 일본의 안을 많이 참조했지요. 일본도 지방의 의사부족 해소를 위해, 지역에 기여할 의대 입학생을 별도로 뽑았습니다. 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대가로 의무적으로 지방 의료기관에서 9년 간 일하게 했죠. 이 실험은 의무이행 기간을 넘기고도 70%의 지역의를 남겼습니다.
이 제안이 그다지 급격한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폐교한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공공의료대학원으로 전환시키는 수준이었죠. 의협에서는 효과가 없을 거라 이 안을 비토 놓았으나, 매년 배출하는 의사 수가 3천명 이상임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매우 작은 테스트입니다.
C-3. 지역 의료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성적순 입시 전형만이 공정이란 건 착각입니다
의대생의 전교1등 드립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허나 서울 외 지역에서, 성적이 조금 떨어지지만 지역에 남을 학생을 뽑는 게 잘못이라 보긴 힘듭니다. 아울러 공공의대의 추천이 불공정하다는데, ‘시도지사’는 개인이 아닌 직위입니다. 이미 대학 입시에는 학교장 추천 전형이 있고요. 이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학교장이라는 직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니까요.
지금 중요한 것은 공공의 문제, 지역 의료 문제의 해결입니다. 수능 성적 좋다고 의사를 꼭 잘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지역에 남을 유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C-4. 현재 정부가 내놓은 안은, 오히려 지방 의료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수준입니다
이 기사는 요약하면, 정부가 내세운 안의 핵심은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이지만, 정부의 안이 그리 강하지 않단 이야기입니다. 지역의사제를 실시해서 10년 머무른다 해도, 인턴-레지던트-펠로우 기간을 제외하면 2~3년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지역에는 ‘기피전공의’가 부족한데, 이 부분도 간과했다는 것이죠.
또한 광역자치단체에서 ‘도립 의과대학’을 설립해, 의사들의 섬세한 경력 관리를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소개합니다. 돈 이외에도, 서울에 가서 피부과를 차리는 것 이상의 혜택을 줘야 한다는 거죠. 교수도 할 수 있고, 지방정부에서 일할 수도 있고, 등등의 상황을 만들지 않고서는, 지방 의료 문제의 해결은 매우 요원하다는 주장입니다.
이 기사 역시 정부 안의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지역 의사를 확충하고 싶다면, 먼저 지방의료원의 시설과 인력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민간주도 의사만을 양성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입니다. 사립의대를 중심으로 해서는 필연적으로 의료공공성 강화, 지역 필수 의사인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를 위해 공공의료병원과 공공병원을 함께 늘리라 권합니다.
D. 정부는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의협과 대화와 협상을 하나요?
: 대화할 곳이 의협 뿐입니다…
D-1. 자동가입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의협은 의사 면허를 받는 순간 자동으로 가입되는 ‘당연가입제’가 적용된 단체입니다. 때문에 병원장들 연합인 ‘병협’과 같은 단체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협의 능력이 부족하든 말든 정부는 타 단체가 아닌 의협과 대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D-2.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의사는 의협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최대집은 13만 의사 중 6천여 득표로 의협 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의사들 입장은 다양하고, 또 의협 입장에 찬성하지 않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개원의는 고소득이긴 하나, 본질적으로 자영업자입니다. 페이닥은 월급쟁이지요. 어느 쪽이든, 자기 먹고 사는 문제 고민하느라 바쁩니다. 이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도, 자기 밥벌이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와중에 의협의 우경화가 진행됐습니다. 구성원 다수의 관심이 없을수록 극단적인 주장이 환영받기 마련이니까요.
D-3. 이렇다 보니 의협 내부 역량도 별로입니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장조차, 현재 의료정책연구소가 민원에 의한 짜내기 연구로 급급한 상황임을 고백합니다. 큰 그림과 전략을 내놓기 버거운 상황이죠.
의협이 스스로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 정부 안에 비토를 놓는 이유도, 애초에 그럴 형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면 재협상’이란 말이 반복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지요. 의협 부회장 역시 제안 없이 반대만 하는 의협에 관해 자아비판을 한 적이 있습니다.
D-4. 의협은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합니다
의협은 정부가 의협과 이야기 없이 갑작스레 정책을 내세웠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의사 증원, 지역의사제 등에 있어, 정부는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의제를 내세웠습니다. 심지어 이건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지요.
D-5. 하지만 의사가 의협의 움직임에 비판을 내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이 기사는 “어느 전공의”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두 전공의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도 지방 의료진 부족, 병원급 의사 부족, 기피과 선택 부족 등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아울러 의료 공공성 강화의 방향, 파업이 이에 기여할 수 있는가 등 굵직한 질문을 던지지요. 하지만 이들이 운영 중인 페이지는 의사들에게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립니다.
물론 인의협 등이 진보적 아젠다를 던지지만, 의사 사회에서 의협의 목소리에 정면으로 반박하긴 힘든 분위기입니다. 이번 의대생 파업에서도 강압적 분위기가 역할을 했다는 기사들이 있었죠.
E. 수가는 정말로 싼가요? 병원이 적자 보며 진료한다던데요?
: 적자면 이미 병원 다 망했겠죠…
E-1. 일단 수가를 높이자고 해야, 의사 모두가 평화롭습니다
말이 ‘대한의사협회’지, 개별 의사의 상황은 모두 다릅니다. 이 모든 의사를 묶는 한 가지 방법이, ‘수가 인상’을 외치는 것이죠. 수가의 계산식이 복잡한 건 아니지만, 하지만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는 자체가 어렵습니다. 이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급여’는 가격이 정해진 의료행위이며, ‘비급여’는 병원이 임의로 가격을 정할 수 있는 의료행위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건의료 공급자단체(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간호협회 등)와 매년 5월 수가협상을 통해 결정하지요.
다양한 의료행위의 수가를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가에는 ‘상대가치’ 항목이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상대가치를 조정하면 특정 전공의 수가가 높아지는 만큼, 타 전공의 수가가 낮아지죠. 그런데 이 상대가치는 정부에서 정하는 것도 아니고 의료인들이 결정합니다. 의사들 사이 밥그릇 싸움이 쉽지 않죠. 전공끼리 싸울 것 없이, 차라리 전체 수가 높이자는 쪽이 편합니다.
E-2. 수가가 마냥 낮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특정 의료행위의 수가가 높고 낮음은 있겠지만, 수가가 전반적으로 낮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수가가 정말로 낮다면 병의원이 주루룩 망해야 정상이거나, 적어도 의사들이 저소득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물론 의료보험이 아닌, 환자 주머니에서 바로 고액이 나가는 비급여가 있지만, 의사들이 양심 없이 비급여에만 기대서 먹고 사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수가는 높은지 낮은지 따지기도 힘듭니다. 수가는 회계적 용어인데, 정작 병의원의 회계는 그렇게 투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의료계는 계속해서 수가가 원가 이하라 주장하지만,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죠.
E-3. 꼬여버린 진료비 지불방식이 3분 진료를 낳았습니다
병원의 진료 수입에 있어 수가만큼 중요한 게 진료비 지불방식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에서 진료비 지불방식은 '행위별수가제'입니다. 의료행위, 약제, 치료재료 등, 의사가 제공한 의료서비스별로 수가를 정해놓고 지불하는 방식이죠.
따라서 의사들은 보상 수준이 높은 의료행위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료수입 증대를 꾀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검체·영상검사 분야는 보상 수준이 높고, 수술·처치·기능 검사 분야 보상수준은 낮습니다. 그러다 보니 ‘1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 구조가 고착화했습니다. 어찌 보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잘못 짜인 제도인 거죠.
여기서 의사협회와 병원협회의 입장이 달라집니다. 수가에는 방문 환자 수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개원의 방문 환자는 줄어들고 있죠. ‘요즘 의사 예전같지 않아’라는 불안감도,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그래도 매출은 늘고 있습니다)
대형병원 의사들은, 그 나름대로 고생입니다. 기형적으로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며, 3분진료를 강제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래서 의사도 환자도 불만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병원은 진료 난이도에 따라 진료비 차등화가 필요하다 주장합니다.
E-4. 정부에서 회계기준을 맞추려는 노력을 의협은 계속해서 회피했습니다
당연히 수가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정부 측에서는 제대로 된 수가를 측정하고 건강보험에 적용하기 위해 의료기관 회계제도 연구용역을 수행했습니다. 그렇지만 의협은 이 노력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정확한 공개를 미루고 있으며, 회계기준 적용대상 확대에 병협 역시 반대하는 상황입니다.
E-5 그럼에도 수가는 최소 소비자물가 수준으로는 꾸준히 올랐습니다
링크에서 볼 수 있듯, 시작점에 따라 수가 인상률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허나, 의협이 시작점으로 잡은 2000년 12월 기준으로도 소비자물가지수 만큼은 꾸준히 올랐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 만큼만 올라와도, 고소득자인 의사에게는 이익입니다. 똑같이 10년 간 50%가 오른다고 할 때, 월 3백만원 소득자는 450만원이 되지만, 월 1천만원 소득자는 1500만원이 되기 때문이죠.
E-6 기피전공은 수가를 높인다고 채워질 일이 아니며, 전공의 자체가 부족하다 보기도 힘듭니다
수가 인상의 근거 중 하나가 기피전공입니다. 허나, 이미 흉부외과와 외과의 수가를 인상시켜보았음에도, 기피현상은 여전합니다. (물론 이 수가를 의사들이 온전히 받는 건 아니고, 병원으로 간 후 의사에게 일부 분배되는 형태입니다) 기피과는 다양한 문제가 작용해서 생긴 현상이기에, 단순 경제적 유인으로 쉬이 해결하기는 힘든 것이죠. 예로 개원이 힘든 분야이기에 기피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심지어 기피전공이라고, 지원자가 아주 형편없이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원래 의대 전공의 충원율은 어느 정도 여유를 둡니다. 충원율 70%만 돼도, 사실 필요 의사의 100%를 모은 셈이죠. 현재 흉부외과 충원율이 60%에 가까우니, 아주 부족하다고 보기만도 힘듭니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전공의 생활을 끝낸 후, 다른 의원을 개원하거나 페이닥의 길을 간다는 것이겠죠. 기피전공을 일괄적인 수가 문제로 해결하려는 자체가 안일한 생각입니다.
F. 왜 보건의료 문제는 이렇게 개판인가?
: 국가의 대계, 전략이 없다
F-1. 뼈대가 돼야 할 전략이 20년째 없습니다
김대중정부는 2000년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제정했습니다. 이후 5년 단위 로드맵을 정하고 세부계획을 도출해야 했죠. 의료진 공급 조절도, 각 지역별 보건의료계획도, 여기에서 도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단 한 번도 계획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케어도, 지방의료기관도, 의료인 수 조절도, 큰 틀에서는 ‘전술’입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이라는 명확한 전략이 없이 전술 하나하나를 움직이려니 조율이 쉽지 않은 것이죠.
F-2. 전략을 짜기는 커녕, 오히려 후퇴만 했습니다
이후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근혜를 건너 문재인까지… 여전히 제대로 된 전략은 없습니다. 오히려 좀 후퇴했는데요. 원래 ‘보건의료발전계획’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의 심의를 거쳐 수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 보정심은 구성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심의기구조차 없었던 거죠.
정책은 더욱 임시방편으로 되어 갔습니다. 아래 기사는 20년 간 전략 부재가 낳은 문제를 잘 다룬 기사입니다. 한국의 모든 보건의료 문제가 여기와 엮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F-3.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공공의료 개념조차 사라져갔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 분야에 ‘철학 없음’을 잘 보여줬습니다. 계속해서 지역의료가 부실해지는 상황에서, ‘원격의료 활성화’와 ‘의료세계화’를 외쳤죠. 지역의료 이슈는 또 고령화와 맞물립니다. 현재와 같은 병원체계로는 촌으로 들어갈수록 ‘의료난민’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진주의료원을 닫아버린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소외계층을 진료하는 공공병원의 적자가 그리 이상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얼마나 지역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잣대로 삼아야 했지요. 하지만 노조와 적자 이슈로 공공병원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F-4. 문재인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전략이 없거니와 전술도 부실합니다.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근본적인 대책은 뒷전입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전체 의료기관 수 대비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은 5.8%에 불과합니다. OECD 평균은 53.5%로 한국과 비교하면 9배 이상이 높습니다. 이렇게 부족하니 코로나 와중, 민간 병상 돌려막기를 하는 것이죠.
문재인케어 역시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5조를 넘게 썼지만, 건강보험 보장률(=국민이 쓰는 의료비 중, 건강보험에서 나가는 돈의 비율) 상승폭이 박근혜 정부 당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보다 낮습니다.
G.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하나하나 다양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G-1. 의료는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대전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면허업입니다. 국가에서 공급제한을 걸고,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해주죠. 의사의 권리와 지위는 사회가 부여한 것이고, 그렇기에 사회는 그들에게 일정 수준의 공적 역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차가 현대차 노조와 협상하는 것과, 국가가 의사와 협상하는 기준은 달라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의사들의 협상은 공적 가치와 무관한, 집단적 이익에 매몰되어 진행되었습니다. 면허를 부여한 정부는, 역설적으로 그 면허의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의사는 계속해서 협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플레이어인 의사가 협상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이라 비판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건 잘못입니다. 의술이 뛰어나다고 의료정책을 잘 아는 건 아닙니다. 야구 잘한다고 세이버매트릭스에 밝지 않듯 말이죠. 의료정책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을 기본으로, 의료 정책이 나아감이 마땅합니다.
G-2. 재정 확보를 위한 정부의 강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OECD 국가의 평균 가계직접부담 의료비 비율은 20% 내외입니다. 한국은 35% 내외이니,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죠.
여기에는 국민들의 인식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 국민은 건강보험 보장률을 지금보다 10%p 더 올려야 한다고 보지만, 보험료 추가 부담에는 부정적입니다. 쓰는 거 없이 받겠다는 K정신인데… 장기적으로 국민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겠고, 설사 인식이 바뀌지 않더라도, 지지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문제에 돈을 쓰는 과감한 정치적 리더십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G-3. 기피전공이 생기는 걸 단순히 수가 문제로 치환해서는 안 됩니다
흉부외과는 수련과정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서, 날밤 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공의는 물론이고 교수도 집에 가는 일이 더 드물 지경입니다. 전공의 과정 자체가 빡센데, 기피전공은 특히 빡셉니다.
사람을 더 써야 하는데, 어찌저찌 전공의 굴리는 걸로 뻗대어 온 결과가 지금입니다. 이제는 좋은 전공의를 키울 교수 자체가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12시간 씩 수술하고도 매번 당직을 서야 하는 힘든 생활을 나이 먹어까지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러 측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G-4. 전공의 과로 문제를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대형병원은 사실상 전공의 갈아먹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특별법이 나오며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으로 제한(?)됐으나, 이 80시간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혹사 수준의 과로이고,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사라져야 할 구습입니다.
현재는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수련병원의 의사인력 부족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대안으로, 입원환자만을 전담해 관리하는 ‘입원전담전문의’에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공의도 사람답게 일하고, 일한만큼 받아갈 수 있는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G-5. 의사에게도 일정 부분 파업의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미 영국에서는 전공의들이 정부가 당직비를 떨어뜨리려 하자 파업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7일 연속 근무 상한시간을 91시간에서 72시간으로 줄이길 요구했죠. 사실 한국은 매주 100시간 이상 하고 있는데, 이건 환자에게도 좋을 게 없습니다. 풀컨디션일 리가 없으니까요. 이처럼 의사의 권리 주장에도 열려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G-6. 지방 의료 문제는 정말 정말, 정부 역량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지방에서는 의사 수급보다 더 큰 문제가, 여타 의료직종 수급입니다. 병원은 의사만으로 돌아갈 수 없고, 간호인력, 의료기사, 행정직 등 다양한 직종을 골고루 갖춰야 합니다. 페이닥은 높은 연봉으로 유치할 수라도 있지만, 간호사나 의료기사 등 다른 보건의료인력 직종 임금은 대도시에 비해 더 열악합니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의사보다 간호인력 확보가 더 힘듭니다.
때문에,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수준을 넘은 대책이 필요합니다. 당장 지방 의사 부족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 이상의 대책 마련이 없이는, 지방의료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G-7. 더 큰 틀에서는 지역 균형발전이 동반돼야 합니다
화순전남대병원 사례와 칠곡 경북대병원 사례가 지방 대형병원 우수 사례로 종종 등장합니다. 지역에 남는 의사들에게 자신의 발전과 긍지, 기회 등, 돈을 넘어 다양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들만 해도 광주, 대구에 인접해 있고, 국립대병원인 전남대병원과 경북대병원이라는 본원을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면 병원유지를 위한 환자와 의사 유치가 힘들었겠지요.
지방 내려가면 페이닥으로 세후 1.5억 이상을 받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대기업에서 20년 이상 일한, 1% 임원들이나 받을 연봉이죠. 그럼에도 지방에 내려가지 않을 이유는 너무 많습니다. 자녀교육에 유리한 환경이 아니고 문화적 격차는 엄청납니다. 일자리와 젊은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며, 시골은 아예 멸실을 향해가고 있죠.
이렇듯, 지방의료는 단순히 의사, 또 보건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러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사람은 살고, 이들 국민들도 의료와 건강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높으신 분들이 서울 못 잃어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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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하
1월에 예고된 1차 고시는 단순구제가 아니고 지방선택권이 제한되었다고 압니다. 원칙은 깼지만 시국이 시국인만큼 어쩔수없는 선택인것 같기도 하네요. 후반부 국가차원에서의 의료대전략이 없다는 지적은 처음 들어봣어요. 오늘도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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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ildss
결론적으로 독재에 가까운 정부가 들어서야 해결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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