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호의 시와 음악과 회고와 < 버스 >

제 4회, 버스

2022.01.21 | 조회 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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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시와 음악과 회고와 < 버스 >

여수 서효인 (전략)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축축한 아스팔트와 운하
축축한 아스팔트와 운하

2022.01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섭섭해졌다. 귀국을 당기고 싶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여기서 어떠한 목적 없이 부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서운한 얘기겠지만, 한국에 있는 어떤 것도 그립지 않았다. 구태여 말하자면 온수 매트와 깨끗한 수돗물, 강한 수압 정도일까.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면 잠이 오지 않았고 그럼에도 다음날이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 좋았다. 사소한 목적들로 구성된 그리고 적당한 타인으로 살아갈  있는 삶의 형태가 쓸쓸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익숙한 소음에 시달리게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예감 이후에 오는 것들은 이미 늦음을 동반하고 있다. 그렇게 흘려보낸 것들이 많다. 지금이라도 매일 보던 거리를 눈으로 진득이 담는 버릇을 들인다. 고장  필름 카메라 덕에   실제로 보고 담는 장면 많아 다행일까. 친구의 말대로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의 경계선에 위치한 기분이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돌아가야 하고 근데 돌아가야 하는  알긴 아는데 이미 편하고 좋은 상태. 아쉬운 마음에 다시 오리라는 다짐으로 가고 싶었던  부러 가지 않고 둔다. 다음번에  일을 남겨두기 위함이다. 그렇게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파리와 나
파리와 나

오늘은 < 버스 > 대해 회고한다. 어떤 말들로 시작해야 할지 적잖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기억에 남았던 일화를 바탕으로 들었던 생각들과 결국엔 사랑으로 귀결시켜버리는 뻔한 결론을 미리 고한다. 

루브르를 지나는 버스
루브르를 지나는 버스

경기도에 거주하는 나는 최근  년간 회사가 마포구에 위치했었기 때문에 주로 홍대, 합정 직행버스를 타거나 당산으로 가는 버스를  지하철로 환승한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신호를 사이에 두고 직행버스가 운명적으로 홀연 출발해버리는 경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트 B 상심치 않을  있는 이유는 B 버스가 운행하는 어떤 구간 때문이다.

성산대교에서 당산으로 진입하는 회전교차로 구간에 나무 터널이 있다.   초간의 울창함과 나뭇잎이 만드는 초록색  그림자가 너무 좋아서 여름엔 반드시 B 버스  뒷좌석 왼쪽 자리(창이 가장 크고 나무에 가장 가까운 자리) 앉아 매일 그곳을 지나갔다. 지브리 만화  푸르게 우거진 수풀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 듯한  구간은 경관 가깝다. 아침 출근길의  피곤하고 적막한 대중교통 속에서  장면을 통과하는 일은 나에게 어김없는 해방감을 주었다.

초록의 경관
초록의 경관

그날도 나는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탔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당산으로 진입해야  버스가 돌연 여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여자가 기사님께 다가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거냐며 항의를 하면서 자고 있던 나머지 승객들까지 일제히 상황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버스는 계속해서 잘못 달리고 있었다. 기사님은 버스 운전을 시작한  얼마   상황으로,  노선이 초행길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승객은 부리나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각자의 일정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크고 작은  섞인 소리들로 웅성였고  안에서 나만은  상황이 너무 재밌을 따름이었다. 회사에 지각을 알리는 연락을 남겨둔 , 기사님의 타들어가는 마음은 모른 체하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버스는 차선에 제때 진입하지 못한 사유로 정해진 노선을 거스르고 사십분가량을 크게 돌아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할  있었다. 

아마도  버스는 그날을 제외하고, 계속 같은 풍경을 지날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이렇게 지속되는 약속으로 삶이 구성되지만, 나는 가끔의 예상치 못한 상황을 기다린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이라는 다짐으로 출발했음에도, 끝이라 생각한 곳에 다시 바다가 나타나면서 목적이 잠시 유예되는 상황을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자주 다짐을 멈추고 미루는 나는 끝나가고 있으면서 가능한 오래 발음하고 싶은 루트 B 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목적지 당도한 나는 자연스럽게도 길게 늘어지는 노선이 가장 빠른 길보다   오래 기억에남는다는 투정* 버스에 빗대어 부리고 있을 것이다. 

*

🎧 이영훈 - 투정

생각 없이 걷던 이 거리에는 우리가 함께 좋아했던 풍경들이 나를 자꾸 멈춰 서게 만들어 다시 너를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내 마음을

이영훈 - 투정

*

본문에서 인용한 시와 음악의 작가 정보는 링크를 통해 확인할  있습니다.

거리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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