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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L;DR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 소멸과 학벌 쏠림을 막기 위한 교육 개혁 구상이지만, 단순한 확장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인도의 IIT는 23개 캠퍼스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세계적 인재를 길러낸 모델로, 비교를 통해 설계 철학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서울대 같은 대학 10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10개의 미래형 대학’입니다.
🎯 이런 분들은 꼭 읽어보세요
- 교육정책 기획·입안에 참여하는 공공기관 또는 연구자
- 지방균형발전, 고등교육 혁신에 관심 있는 정책 관계자
- 입시 경쟁 구조와 사교육 문제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학부모와 교사
- 브랜드 중심의 대학 시스템을 넘어 미래형 대학 모델을 고민하는 스타트업·HR 관계자
1. 왜 ‘서울대 10개’라는 공약이 나왔을까
“지방대 죽이기 아닌가요?”
“서울대가 10개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이 공약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자,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단순한 ‘좋은 대학 더 만들자’가 아닌, 한국의 구조적인 위기가 깔려 있습니다.
- 지방 청년 이탈 → 수도권 집중 → 지역 인구 소멸
- SKY 중심 서열화 → 입시 경쟁 심화 → 사교육 시장 팽창
- 지방 대학 몰락 → 지역 일자리 축소 → 정주 기반 해체
이 구조를 바꾸겠다는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입니다. 정부는 전국 9개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인프라와 예산을 투입해 지역 청년이 지역에 머무르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 수준’이라는 말에는 간과하기 쉬운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2. 서울대 '하나' 만드는 데 드는 비용
- 서울대 연간 예산: 약 1조 원
- 학생 1인당 교육비: 5,000만 원
- 거점 국립대 평균 예산: 약 2,000억 원
- 학생 1인당 교육비: 2,300만 원
서울대는 연간 약 1조 원의 예산을 사용합니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5천만 원 수준입니다.
반면, 현재 거점 국립대의 평균 예산은 2천억 원, 학생 1인당 교육비는 2천3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즉, 9개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매년 3~8조 원 규모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는 고등교육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마저도 돈만 투입한다고 해결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울대급’이라는 건 물리적 설비 이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네트워크, 연구 생태계, 교수진, 사회적 신뢰도 같은 무형의 자산이 포함돼 있습니다.
3. '돈'만으론 안 되는 이유
서울대는 캠퍼스가 좋아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입시 구조, 사회 시스템, 고용 시장 전반이 그 대학을 정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방에 좋은 캠퍼스를 세워도 학벌 중심 구조가 그대로면 서울 쏠림은 계속됩니다.
- 한국은 전체 대학의 80%가 사립대인 '비국립형 체제'입니다.
- 고등교육 시스템 전체가 함께 바뀌지 않으면, 10개의 서울대는 되려 경쟁을 10배 키우는 결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서울대 10개'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는 한 가지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IIT처럼 만들면, 달라질 수 있을까?”
4. 'IIT'라는 상상 실험
IIT(인도공과대학)는 인도 전역에 23개 캠퍼스를 운영하는 국가 전략형 대학 시스템입니다.
여러 캠퍼스가 있지만,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되어 있으며 단일 입시, 단일 졸업장 체계를 유지합니다.
- 입시는 전국 공통 시험(JEE)
- 최고 경쟁률 약 0.0012% (160만명 응시 → 약 1만7천명 합격)
- 캠퍼스는 물리적으로 분산돼 있지만, 브랜드는 하나(IIT)
- 교수 채용·운영 모두 자율
- 시스템 전체가 ‘분산+통합’ 모델로 설계됨
입시인 JEE Advanced는 MIT나 스탠퍼드보다 낮은 1.83% 평균 합격률을 기록합니다. 상위 캠퍼스는 0.2~0.5% 수준으로, 인도 인구 기준 약 0.0012%만 들어갈 수 있는 셈입니다. 한국 인구(5천만 명) 기준으로는 연 500명 뽑는 셈입니다.
시험은 단순한 문제풀이가 아니라 학생의 사고력을 평가하며, 학생들은 코타(Kota) 같은 도시에서 1~2년 이상 입시를 준비합니다.
5. IIT 사례를 통해 본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시사점
IIT의 시스템을 깊게 들여다보면, 단순히 캠퍼스 수가 많은 게 핵심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철학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정 투자 이상의 본질적 개혁
IIT는 낡은 시설 속에서도 최정예 인재를 뽑고, 자율성과 창의 기반의 교육을 실현해냈습니다. 봄베이 캠퍼스의 경우 R&D 투자 비중이 전체 예산의 40%에 달하며,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고, 교수 강의 중 질문과 반박은 일상입니다.
대학 자체의 혁신 주체성
1956년 제정된 IIT 특별법은 정부의 간섭 없이 입시, 학사 운영, 교수 채용까지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합니다. 지난 70년간 정부는 단 한 번도 시험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성과로 증명된 인재 배출력
이 구조 속에서 나온 인재들은 현재 전세계에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
순다르 피차이 (IIT Kharagpur) – 구글·알파벳 CEO
파라그 아그라왈 (IIT Bombay) – 전 트위터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IIT Kanpur) – IBM CEO
또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의 15%, NASA 인도계 연구원의 32%가 IIT 출신이라는 점은 이 시스템이 국가가 설계한 엘리트 플랫폼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6. IIT는 왜 다른가: 다캠퍼스지만 하나의 시스템
IIT는 분산된 캠퍼스지만 하나의 브랜드로 작동합니다.
- 입시는 단일화(JEE),
- 학사 시스템은 자율화,
- 캠퍼스마다 독립성과 협업 구조를 동시에 가집니다.
'서울대 10개 구상'이 만약 이처럼 통합된 설계 없이 각 지역 국립대에 단순히 '돈'만 더 주는 방식이라면, 결국 ‘서울대 본교’와 나머지 9개 사이의 격차는 지금과 큰 차이 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울대 10개'를 넘어,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발상은 지방 소멸과 교육 불균형이라는 진짜 문제를 고민한 시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가 아닌 설계 철학이 빠져 있다면, 이건 ‘대학 수 늘리기’ 그 이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서울대처럼 만들겠다’는 복제형 모델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지는 실험형 대학 10개’입니다. 지역별 산업과 연결된 기술대학, 인문·AI 융합형 교육기관, 창업과 실험을 중심에 둔 미래형 캠퍼스 같은 시도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은 '서울대 10개'가 아니라, 10개의 '미래형 질문이 가능한' 대학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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