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에게도 MBTI가 있다면

그리고 코니 창업자 임이랑

2024.03.17 | 조회 1.2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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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최성운

최성운의 사고실험

계속 질문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0  오늘은 MBTI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벌써부터 하품이 나오신다면 죄송합니다. 이제 끝물이라는 이야기도 슬슬 나오고, 심심하면 SNS를 도배하던 성격 유형 테스트들도 많이 사라졌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기술이 도입되고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과정과 비슷한 그래프를 그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초반의 열기가 수그러들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MBTI가 자기표현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자연스레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까요.

1  한편, 아직도 MBTI가 활발하게 소비되는 장소들은 존재합니다. 주로 제 눈에 띄는 건 유튜브의 댓글창에서 열리는 T와 F 사이의 결투입니다. 한때는 T가 F에게 핀잔을 주는 여론이 주류처럼 보인 적도 있었는데, 요즘 "T발 C야?"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여론이 또 뒤집힌 것 같기도 합니다. 유독 T와 F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따지고 보면 이성과 감정 사이의 대립은 소크라테스 이래로 인류 역사 내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제가 대답할 범위의 질문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살짝 바꿔보겠습니다. "왜 이렇게 논쟁이 격렬할까요?"가 아니라 "왜 이렇게 논쟁이 격렬해 보일까요?" 로요.

2  그 이유는 어쩌면 T와 F가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가장 사건화시키기 쉬운' 특성이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MBTI의 다른 항목들은 주로 특수한 맥락과 밀착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I와 E의 경우에는, 집에서 혼자 쉬는 상황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죠. P와 J에 대해 얘기할 때는 대번에 여행 계획을 짜는 상황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N과 S는... 혹시 각각이 무엇의 약자인지 아시는 분? (저는 모릅니다)

3  그에 비해 T와 F는 상대적으로 높은 범용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임의의 갈등을 가져다가 'T편'과 'F편'으로 갈라두고 사람들을 부추기면 높은 확률로 싸움이 성립될 겁니다. 한 마디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는 꿀단지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T-F 대결을 부추기는 콘텐츠의 공급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더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 보이는 착시가 발생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도 해볼 수 있습니다.

4  고백하자면 [사고실험]에도 MBTI의 마수가 어느 정도 뻗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고실험]은 한 분의 게스트를 모시고 토크를 진행한 뒤, 1부와 2부 두 개의 영상으로 발행하는 구성입니다. 그리고 1부와 2부는 썸네일 형태도 서로 다르게 정해져 있습니다. 1부의 썸네일은 게스트를 단독으로 중앙에 배치하는 구도입니다. 보통 카피에서는 게스트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소개하고요. 2부의 썸네일은 게스트와 호스트가 마주보는 구도를 가집니다. 그리고 카피에는 특정한 '메시지'나 '질문'이 담긴 경우가 많습니다.

5  물론 위의 규칙을 항상 강박적으로 따르는 건 아닙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컨셉의 순서를 맞바꿀 때도 있고요. 다만 적어도 ‘1부와 2부의 성격이 달라보이는 것‘이 만드는 입장에서의 의도였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늘의 주인공 MBTI가 등장하는데요. 가급적이면 1부와 2부 중 하나는 T에 가깝게, 그리고 다른 하나는 F에 가깝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6  지난 2주 동안 발행되었던 이랑님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코니 브랜드의 창업자로서 비즈니스의 성장과 변화를 이야기한 1부가 T에 가깝다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으로서의 생각을 담은 2부는 F에 더 가깝습니다. 단순히 소재의 차이는 아니고, 재미가 발생하는 방식에 기인한 분류입니다. 그러니까 1부의 재미가 이성을 통한 이해에서 오는 비중이 높도록 설계했다면, 2부에서는 감정을 통한 공감을 지렛대로 사용하고자 더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제 자의적인 기준입니다)

7  그럼 이렇게 만드는 데 전략적인 이유도 있을까요? 보통 저는 영상의 제작과정 곳곳에 의도를 심어두기 급급한 편이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제가 T 51% F 49%인 INTP라서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아내겠다고 1, 2부 합쳐 50분이나 시간을 쓰는 주제에 한쪽 단면만 보여드리기는 염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8  그리고 지금껏 저를 감동시킨 이야기들은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개인적인 기호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랑님 2부 영상의 마지막 5분처럼 말이지요. 엄마로서의 임이랑과 경영자로서의 임이랑이 서로 고삐를 바꿔쥐고,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등장하는 그 에피소드를 도대체 어떻게 요약할 수가 있겠어요. 

9  그러니까 한 가지 작은 바램이 있다면, [사고실험]이 T와 F가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종종 환기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T나 F 같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 나와 마주본 사람이 집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가족들을 마주할 거란 사실을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잊으니까, 저를 위해서라도 자꾸자꾸 영상으로 만들어 남겨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추신 : 메일 제목의 형식을 조금 바꿔보았습니다. 사실 제목을 정하는 데까지 에너지를 쓰면 피곤해질까봐 번호만 매겼었는데, 나중에 오셔서 이전 레터를 읽어볼 분들은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요. 가능한 자극적이지 않고 정직하게 써볼게요)

@cloud.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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