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의 즐거움과 플렉스에 대해

도쿄 세간 살이 둘

2022.11.14 | 조회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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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세간살이

어쩌다 도쿄에서 사는 사람이 마주친 일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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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관한 맹랑한 추억 하나. 그건 내 기억 회로 심층부에 저장된 돈에 관한 첫 기억이기도 하다. 

난생 처음 기차를 타본 날이었다. 버스로 가도 될 길을 엄마는 굳이 기차표를 끊어 언니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엄마는 표를 끊으면서 기차에 올라서면서 자리에 앉으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꼭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하듯이. 

"그래. 너희들도 기차 한번 타봐야지." 

가만히 자리에 앉아 빠르게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차는 아빠 똥차보다 훨씬 빠르구나.'

풍경에 대한 감탄은 5분으로 끝났고 나와 언니는 금세 배고파졌다. 엄마는 칭얼대는 우리를 어르고 달래다 결국 간식 카트를 끌며 지나가는 역무원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샀다. 6살 인생에 길이남을 충격을 가져다준 그것, 갈색 소스에 풍덩 빠졌다 나온 동그란 미트볼을.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보았다. 고기보다도 부드럽고 과자보다도 달큰하며 밥이랑도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정신이 몽롱하고 아득해졌다. 매일 이걸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짜릿하고 강렬했던 그 때 기억이 요즘도 종종 떠오른다. 특히 마약 관련 뉴스를 보면서 불현듯 생각한다.

'저 사람들. 그 미트볼 먹었을 때 느낀 기분이랑 비슷한 걸 느꼈을까?' 

이후 나는 기차만 타면 '미트볼'을 외치는 아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건은 기차역에서 내린 뒤 엄마를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한참을 역 앞에 멀뚱이 서있기만 하던 엄마는 30분이 지나도록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자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수첩을 뒤적여 펼쳐들고 역 한쪽 편에 설치된 공중전화기로 향했다. 엄마가 대뜸 내게 물었다.

"지윤이. 동전 있제? 하나 주봐라." 

그즈음 나는 야무지고 돈에 민감한 꼬마였는데 십원 하나 백원 하나를 허투루 쓰질 못했다. 용돈을 모으는 재미로 살다가 사고 싶은 걸 충동적으로 사고 나면 후회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유달리 철이 일찍 든 아이여서가 아니라 돈을 아끼는 일이 쓰는 일보다 즐겁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놀라운 쾌감을 나는 엄마를 보며 배우고 느끼고 깨우쳤다. 그러니 엄마 요청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게 정해져있었다. 

"응 있어. 근데 언제 갚을 건데?"

엄마 얼굴이 순식간에 굳더니 퍼렇게 질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불씨가 당겨진 두려움이 나를 향한 분노로 바뀌기 시작한 거였다. 

"이노무 가시나가. 엄마가 언제 니꺼 뺏아간 적 있드나. 언제 갚을 끼냐니!" 

나는 그런 엄마 얼굴이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에게 200원을 주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가 그때부터 나를 줄곧 짠순이라 생각한다는 거다. 나는 내 아낌의 역사가 엄마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누누이 강조하곤 했다. 우주 최강 짠순이. 돈 아끼는 맛을 누구보다 풍요롭게 누리며 산 사람이 바로 내 엄마. 란 여사니까. 

나이가 든 엄마는 이제 가난하지 않다. 그렇다고 썩 부유하지도 않은데 요즘은 그렇게 돈 자랑을 하고 다닌다. 올해 은퇴를 한 란 여사는 지난 달에 느닷없이 가족 단톡방에 이런 카톡을 보냈다. 

"엄마 은퇴했으니 지윤이 보러 도쿄 갈끼다. 11월로 예정."

이제 막 일본 관광비자가 풀리기 시작해서 비행기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물음표를 띄우며 굳이? 지금? 내년은 어때? 물었지만 란 여사 의지는 확고했다. 

"비행기값. 그까이꺼 얼마나 한다고. 가격 상관 말고 끊으삼."

아끼지 마라. 엄마는 자주 그런 말을 한다. 그러면 '우리 엄마 부자네' 응수해버리고 말지만 사실 알고 있다. 엄마가 내뱉는 문장의 괄호 안에 숨겨진 너는 이라는 단어를. 

(너는) 아끼면서 살지 마라. 

(너는) 사고 싶은 거 망설이지 말고 사면서 살아라.

(너는) 젊을 때 여행 가라.

돈자랑을 할 때 란여사는 조금 안쓰럽고 많이 사랑스럽다. 낯부끄러운 돈자랑, 누가보면 자랑으로도 보이지 않을 그런 자랑을 엄마가 언제까지고 하면서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런 란여사를 보는 게 참 좋으니까.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 그 돈을 모조리 다 써버렸으면. 그런 마음으로 조용히 외친다. 플렉스 플렉스 란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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