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의 일상] 나는 로봇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도구와 생명의 사이 그 무언가

2024.09.08 | 조회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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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의 모험기

일상을 모험한 기록을 나눕니다 :)

학계를 잠시 떠나 회사에 취직한 지 4달 차에 접어들었다. 확실히 학계에 있을 때와 다른 시선으로 로봇을 바라보게 된다. 학계에 있을 때는 로봇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관심을 두었다. 이제껏 만들어 본 적 없는 도구를 만드는 데 의미를 두었다. 또, 그 도구를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아직 가보지 못한 심해를 탐사하고, 다른 행성을 탐험하고 건설까지 하는 로봇 - SF 에 나올 법한 - 에 관심을 가졌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고안하고 만들려 했다.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해내가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며 그 위대한 일의 일부가 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현실과 미래의 괴리가 너무 컸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작았고, 허술했고, 불완전했다. 현실과 미래를 연결하기 위한 블록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현실과 미래를 잇기 위해서는 미래를 상상하고 필요한 것들을 고안하기도 중요하지만, 현실과 미래를 잇는 블록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가 더 중요하다고 늘 느꼈다. 쉽게 말하면 실제 경험 & 실력이 상상력과 창의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는 능력말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경험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사에서 로봇의 주행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지금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제품화하고 있다. 내가 원했던 경험이다. 그러나 이 경험을 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능력 자체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전의 내가 추구했던 미래를 상상하고 현재를 미래와 연결하는 것도 그와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을 경우 현실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에 대한 방향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고 깨닫고 있다. 만드는 과정 안에 있는 수많은 의사결정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방향 없이는 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어 결국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또 다시 확증하게 된 것이 있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경험을 쌓기 위해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렸던 부분이 있었다. 과연 나는 비즈니스적인 관점만 가지고 100% 몰입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늘 의미있다고 여기는 것을 하고 싶었다보니 - 한편으로는 스스로 너무 복잡하고 답답하다 여길 정도로 - 일반적이 비즈니스적 가치관 (이윤 증대) 만 가지고 일에 몰입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었다. 요즘 그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그냥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로봇을 만드는 일에 대한 의미를 다시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추구하면 너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일단 나부터 확실하게 발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로봇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로봇에 대한 나의 관점을 다시 돌아보자. 처음에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느낀 계기는 영화 "빅 히어로 6" 를 보고 난 다음이었다. 다들 아이언맨을 보고 로봇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는 빅 히어로 6 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빅 히어로 6에 나오는 사람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베이맥스" 라는 로봇과, 천재 개발자가 제작했지만 악당이 사용하는 수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원하는 형태를 뇌파 연결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MicroBot" 이라는 로봇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여담: 나는 결국 학부 프로젝트를 MicroBot 과 비슷한 컨셉인 Swarm Robotics 라는 분야에서 선택했고, 그 프로젝트를 통해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고 그 분야의 연구를 했다).

 

베이맥스와 Microbot 에 왜 매력을 느꼈나? 라고 스스로 물었을 때 로봇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 (사실은 영화에서 그렇게 보이게 한 것이지만)이 나를 매료시켰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베이맥스가 가진 인간을 도울 수 있는 특성이었다. 베이맥스는 다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험에서 사람을 보호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을 정서적으로 치유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을 닮았고, 사람을 보완할 수 있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로봇의 특성이 매력적이었다. 더 따뜻하고 안전한 세상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두번째는 Microbot 이 가진 놀라운 가능성이었다. 이 로봇은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원하는 형태로 재구성이 가능한데,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강을 건너게 할 수 있는 다리도 될 수 있고, 실시간으로 사람을 운반해줄 수도 있고, 망치와 같은 도구가 될 수도, 아니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는 매력이 있었다. Microbot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가진 한계를 너끈히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나의 영감의 출처는 영화, 심지어는 애니메이션이었기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컸다. 무엇을 만들어내는 Craftman 으로서의 경험이 전무한 채로 대학에 진학했기에, 내가 매력을 느끼는 특성을 포함한 로봇을 만들기 어려웠다. 사실 꿈도 못꾸었다! 학교에서는 로봇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웠다. 그런데 기초 지식을 기초 지식으로만 배워서 영 재미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배우는 기초 지식을 내가 매력을 느끼는 특성에 힘써 연결을 했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흥미를 잃었고 심지어 나는 이 분야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특히 이미 Craftmanship 을 갖춘 친구들을 보며 이런 친구들이 내 분야에 있어야한다고 많이 느끼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로봇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며 로봇에 대한 정의도 새로 배웠다. 신기하게도 로봇은 딱 하나의 정의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의가 있었다. Sensors (감각 기관; 눈과 귀),  Actuators (이동 기관; 팔과 다리)  그리고 Computers (지능 기관; 뇌와 신경) 을 가진 Mechatronic system 이 곧 Robot 이라는 말이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자율주행 자동차도 로봇이었다. 미디어로 본 로봇이 흔히 사람과 동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긴" 것들이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좀 더 건조하게, 물체의 관점으로 로봇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 가졌던 매력은 사라지고 말았다. 흥미를 잃었었다.


그러다 학부 프로젝트로 Swarm Robotics 분야의 연구를 하며 다시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연구를 하는 동안, 많은 개체 수로 이루어진 로봇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그것이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생각하며 흥미를 되찾았다. 그리고 이 연구는 학회 논문으로 출판되었는데, 처음으로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 되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정말 우연하고 감사한 계기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를 많이 하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읽고 연구자들을 만나며 첫 연구를 했을 때의 흥미가 커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미래는 현재와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내가 징검다리를 놓는 한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 때의 나에게 로봇은 다시 기능적이고 요소적인 관점을 벗어나 "미래" 와 등치되었다.

그러나 앞선 부분에 말했듯, 내가 놓는 징검다리가 형편이 없다고 느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나 예술가들도 당대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심지어 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르는 일들을 하다 나중에 그것의 유용함을 깨닫게 되는 케이스들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스카치 테이프로 놀다가 그래핀을 발견하게 된 안드레 가임 교수님 연구팀의 케이스나,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케이스처럼 나도 모르는 발견과 창작을 하게 될거라고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실제로 주변의 훌륭한 연구자들과 창작자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없어졌다. 나의 작음이 너무 커보였다. 교수님의 위안도 소용이 없었다. 징검다리를 잘 만들고 놓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로봇 = 미래 라고 여기긴 했어도, 내가 관여할 미래라는 생각이 덜 들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회사를 오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로봇을 도구로 생각한다. 다른 많은 곳들도 이윤 창출을 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가치 중립적인 도구로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 관점이 특별히 매력있게 다가오진 않는다. 다행인건 내가 다니는 회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로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있어 좋으나, 내가 8년 전 로봇에 대해 가졌던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로봇일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로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가 궁금해서 SF 소설과 영화를 보며 토론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로봇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로봇과 미래의 디스토피아 적인 측면에 더 집중하고는 했다. 나의 연구가 기사화되었을 때 전쟁에 쓰일 것을 염려하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쉽구나 라고 알고 있었지만, 내가 동의하고 참여하고 싶은 관점은 아니었다. 그 모임에서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체코 작가 Karel Capek 의 희곡 Rossum's Universal Robot 을 읽으며 Robot 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2022년 공동 연구를 위해 체코 프라하로 갔을 때 교수님 집에서 머물다 선물 받은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선물을 받은 도시와 같은 도시에서 쓰여진 책이라 내게 더 의미가 있었다.

 

본론으로 돌아가 이 희곡에서 로봇은 섬뜩한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을 표현하고 있었다. 기능적으로는 사람과 동일하거나 우월하지만, 사람임을 결정하는 본질은 없는 최상의 도구로서 그려졌다. 이 희곡에서 로봇들은 결국 인간을 소멸시키고 본인들도 소멸될 운명에 처하는 비극에 치닫는다. 로봇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 를 대비되게 드러내는 희곡이었다. 한편으로는 어이 없었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쓰인 첫 작품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로봇을 전공하고 만들고 연구했다는 사실이 코미디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 카페에 앉아 어떻게 하면 로봇에 다시 흥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도구로서의 로봇만을 만들며 채워지지 않는 만족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에 답을 찾지 못하면 다음 한 주도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냥 인정했다. 나는 도구로서의 로봇을 만드는 데 관심이 없구나. 그러면 무엇을 원하는 거지? 무엇을 기대하는 거지? 스스로 물었다. 도구 이상의 몫을 로봇에게 원한다고 깨달았다. 단순히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세탁기 처럼 사람의 물리적 한계를 넘게 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벗어나, 로봇이 하나의 생명에 가깝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구와 생명 사이 그 어딘가 새로운 창조물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구 이상의 창조물으로 만들어 관계를 맺고 싶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물건을 넘어서 애완동물이나 동료, 친구에 가까운 존재가 되길 원했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것을 창조하는 일이 경이롭고 아름답다고 느껴진다고 깨달았다. 다시 돌아보니 내가 베이맥스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도 이 생각과 같았다. 나 뿐만 아니라 로봇의 존재를 긍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사람들이 지금 나오는 로봇에 대해 실망하는 이유도 아직 로봇이 도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준이 높은 것이다. 

 

도구와 생명 사이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할 때 사랑하려고 (즉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나도 비슷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상위차원의 만족을 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로봇은 도구와 생명의 사이의 무언가이다 라는 생각의 실마리가 떠올라서 손이 흘러가는 대로 적은 글이다. 결론은 없지만, 내일 회사에 출근에 로봇을 만들 동기는 충분히 생겼다. 내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하고 기대하게 한다. 문득 로봇에만 적용되는 생각일까 싶다. 음악도, 요리도, 서비스도, 프로그램도, 영상도 이와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단순한 물건이나 도구, 대상을 넘어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괜시리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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