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의 묵상] <마 1>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

2024.10.06 | 조회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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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의 모험기

일상을 모험한 기록을 나눕니다 :)

“Thus there were fourteen generations in all from Abraham to David, fourteen from David to the exile to Babylon, and fourteen from the exile to the Messiah.” (마 1:17)

하나님이 지으신 첫 사람인 아담이 탄생하고 예수님까지 마흔 둘 세대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 계획을 완성시키셨다. 문득 예수님 이후 나는 몇 번째 세대를 지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략 25세를 기준으로 잡고 (늘 첫째 아들을 통해 세대가 이어진 게 아니므로) 나의 세대를 계산해보면, 대략 2000 나누기 25 에서의 몫인 80 세대를 지나왔다. 고려 정종 때 (923-949년) 나의 시조가 금성 라씨 성씨를 사사 받았고 내가 36,7,8대손 정도 되니, 이 계산 법이 대략 맞아 떨어진다.

예수님이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오고 가고 위대한 업적 또한 생기고 사라지는 오랜 세대를 거쳤지만, 나는 예수님을 전한 자들에 의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묵상하고 있다. 2000년 전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겹으로 쌓여진 시간 차이에도 나는 같은 예수님을 경험한다. 버려진 사마리아 여인의 비참함에 빛이 되신 예수님을 경험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누렸지만 배신한 베드로의 후회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타나셔 잠잠히 숯불 위에 물고기를 구워주셨을 때의 감격을 느낀다. 말 그대로 예수님은 시간을 관통하신다. 

요즘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정작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다고 느꼈다. 내 시선을 빼앗고 머리를 어지럽히는 일들에 너무 몰두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말했지만, 정작 나의 마음과 말과 행동은 신뢰하지 않는 자의 그것을 보이고 있었다.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만나주지 않으신 게 아니라, 내가 만나지 않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 보다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예수님 이름을 전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내 안에 예수님을 향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주셔서 늘 다시 돌아오게 하심에 감사하다. 

마흔 세대든 여든 세대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우리를 모두 감싸 안는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 모두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땅에 육체로 계실 때든, 지금 영으로 하나님 옆에 계시든  상관없다. 성경에 적힌 그대로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번에 읽을 마태복음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지금 예수님의 마음을 다시 있을 같아서, 내가 차마 몰랐던 새로운 예수님의 모습을 예전보다 자란 지금 보여주실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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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먼저 묵상을 하고 토요의 모험기에 붙여 넣기를 하는데, 이번 글이 100번째 글임을 방금 확인 했다. 내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완전히 새로운 시즌이 열렸다고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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