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자주 ”빛“ 을 의식하면서 살까? 장담컨데 한 번도 의식하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도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밤 길을 걷는 데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어 플래시 라이트를 키지 못하는 등의 상황이 없으면 체감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빛을 직접 보진 못하지만, 빛이 있기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빛으로 비유한 게 찰떡같다고 느낀다. 예수님은 빛처럼 우리를 비추시고, 우리가 그의 빛을 반사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본다. 여기서 우리가 서로를 본다는 말은 하나의 물질로 이루어진 개체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본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기독교 가치관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각종 인권과 윤리, 법 체계에 예수님이 녹아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죄와 사망의 방식만을 따를 것이고, 서로 죽고 죽이고, 나를 위한 물적인 대상으로만 상대를 여기는, 대화와 소통과 관계는 없이 개인만 존재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 (여담: 이 상태가 지옥과 비슷하다는 간증을 여럿 보았다, 경험 상으로도 가장 지옥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정말로 끔찍하다)
빛이 있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음에도, 우리는 빛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 예수님이 계셔서 모든 것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데도, 예수님을 의식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떠나 육의 관점으로만 많은 것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받으면, 그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빛을 받아 드러나기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된다. 암흑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을 비출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무한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게 아닌, 유한함 속에 제한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 자신을 부와 직업, 명예로 규정한다거나, 외부에 받은 상처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또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 사회의 통념으로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등 - 진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아는 기쁨을 전해줄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받을 존재라고 여겨주시듯이 말이다. 예수님 이름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빛나며 어둠을 몰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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