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유락을 운영했던 미로입니다.
먼저, 정말 너무나 늦은 사과임을 압니다만, 유락을 아끼고 활동했던 멤버들과 운영진분들 그리고 관련된 모든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릇이 안 되는 인간이 일을 너무 크게 저지른 탓에 일일이 찾아뵙지 못한 점 또한 사과드립니다.
이제는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일 테지만, 활발했던 유락의 활동을 접고 갑작스럽게 숨어버린 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1년,
저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이전부터 힘들었던 아픔들이 발끝부터 옥죄어 오면서 숨쉬기도 힘들 만큼 불안 증세가 심해졌습니다.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이 심해 넘어져 머리가 찢어지기도 하고요. 여기저기 몸이 많이 상했었는데, 사실 몸이 아픈 건 아무렇지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너무 불안정해 여러 차례 자해도 했습니다. 하고 나면 잠깐 동안은 해소가 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엔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화장도 하고 길을 나섰어요. 죽으려고요. 스스로 택하는 죽음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잖아요. '목을 맬까, 약을 먹을까, 아니면 또 손목을 그을까' 고민이 길어졌습니다.
평소 먹지 않는 술을 안주도 없이 병째로 들이켰어요. 용기가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증상이 심해지더라고요. 결심하는 순간, 너무 무서워서 소리 내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울다가 정신을 잃었던 건 처음이었어요. 평소 겁이 없는 편인데도, 죽음이란 무게는 참 크더라고요. 자살도 실패한 저는 그 날부로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중심이 무너지니 모든 것에 예민해졌어요.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온 세상을 흔드는 소리처럼 공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즐거웠던 사람들과의 소통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며, 모든 연락이 공격처럼 느껴져 더 철저히 단절을 택했습니다.
저는 이미 죽은 인간이었으니까요.
세상이 너무 어두웠어요. 이보다 짙은 어둠이 존재할까? 저를 걱정하는 마음도, 고심해서 보냈을 연락들도 답을 하기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말 한마디가 그땐 왜 그렇게 버거웠을까요.
흔히 생활 반응이 전혀 없어서 누구는 정신병원, 더 극단적으로는 감옥에 갔다고도 생각했다고 해요. 나약한 인간이 벌린 일들이 너무 버거워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깊은 패배감과 죄스러움에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어요.
일주일이 하루처럼 느껴지고 한 달이 일주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죽은 사람처럼 정말 긴 시간 동안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눈을 뜨면 괴로워서요. 정말 단 하루도 꿈을 꾸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늘 무언가에 쫓기고 시달리며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나기를 반복했어요. 깊은 바닥이 온몸을 자석처럼 끌어내려 축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저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인생을 놓고 봤을 때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습니다. 사람이 그 정도로 씻지 않으면 그런 몰골과 그런 냄새가 나는구나. 아무리 방이 쓰레기장이어도 쓰레기통에 버릴 에너지조차 나지 않는구나. 이번 인생에서 지독하게 실패했구나. 다시 세상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누구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마음을 먹고 한동안 가지 않았던 병원에도 다시 갔어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말을 잘 못할 것 같아서 종이에 빼곡하게 당시 상태를 적어 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시 숨어들었습니다. 약도 상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했냐고요? 평소 같으면 소리 지르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을 텐데 이상하게 그러지 않으시더라고요. 서로 부둥켜 앉고 운 적도 많았지만 도대체 왜 정신을 못 차리냐는 질책 섞인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어요. 그렇게까지 못난 저를 믿어주시더라고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시체처럼 누워만 있는 저에게 잘하고 있다고. 잘 견뎌내고 있다고. 매일 다독여 주셨어요. 일 끝나고 와서 힘드셨을 텐데도, 저의 끼니부터 챙겨주셨어요. 긴 시간 동안 묵묵하게 기다려준 가족들 덕분에 겨우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저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개인채무조정 중에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납부도 하지 않았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들어놓았던 보험도 전부 끊겨서 다시 재신청을 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이러단 우울이 전염되겠다 싶어서 겨우 마음을 다 잡고, 기존과 전혀 다른 업계에 취직하여 예전보다 적은 월급으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리된 포트폴리오도 없고, 통장 사용이 불가한 저를 받아준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여전히 두렵습니다만, 꾸준히 병원 치료도 받으면서 이런 폭력적인 회피 성향을 고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번아웃이라고는 하지만 저의 이런 기질도 한몫했다고 보거든요.
메일을 쓰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압니다만 이제라도 제가 처했던 상황을 뒤늦게나마 해명합니다. 이것 또한 저의 이기적인 마음으로요.
문득 생각해 보니 지난 제 작업물들은 사실 그리 먼 과거의 상처가 아니었음을, 그 당시에도 끊임없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단 생각이 듭니다. 한번 뚫렸던 구멍은 또 빠지기도 쉽더라고요.
최근 1년 넘게 접속하지 않았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갔어요. 다들 여전히 멋지시더라고요. 끊임없이 무언갈 만들고 해내는 모습들의 여러분들을 참 사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응원할게요.
변명이 너무 길었죠?
저의 무례함과 이런 메일을 보내는 용감함을 가엾게 여겨주세요.
부디 노여움을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요.
여러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해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마지막 뉴스레터까지 이기적인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늘 건강하세요.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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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andlife
힘내세요 미로님. 마음 다잡으셨으니 차차 나아지시리라 생각합니다. 뽜이팅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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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시려고 했던 마음, 또 이렇게 돌아와 안부 들려주신 용기에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미로님의 편안함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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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루카
미로님.... 기운내세요 지금은 누구나 암울한 시기입니다 서로 토닥이며 살아갈때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힘을 내시어 함께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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