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모든 것이 내 집이면서 그 어느 곳도 내 집이 아니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아트선재센터

2024.08.25 | 조회 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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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다리를 놓는 집: 모형 1 (1/16 스케일)> 207 × 119 × 191cm, 2015
<다리를 놓는 집: 모형 1 (1/16 스케일)> 207 × 119 × 191cm, 2015

구독자 님, 오랜만에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습니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가 8월 17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됩니다. 서도호의 국내 개인전은 리움에서 열렸던 《집 속의 집 Home within home》 이후 12년만인데요. 작가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천으로 지은 집을 기대하셨다면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대신, 더 많은 집을 더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만날 수 있어요.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 사변(思辨)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변은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머리 속에 있는 개념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요. 전시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집에 대한 개념, 공간 사이의 틈을 잇는 가상의 집-들, 장소 특정적 미술을 장소와 무관한 곳으로 연결하는 시도 등에 대한 작가의 아이디어와 리서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작가가 어린 시절 거주했던 성북동의 옛 서울집을 모티브로 한 세 작품을 이야기합니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집'들 중에서도 이 한옥집은 너무나 한국적이라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데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중 한옥집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테니까요. 물론 한옥을 한국적인 주거 형태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에요. 한옥을 한국적 정체성과 연결짓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동질성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과거 ‘태어난 곳의’ 문화에 대한 향수

<다리를 놓는 집, 리버풀>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1분 30초, 2010
<다리를 놓는 집, 리버풀>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1분 30초, 2010

2010년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다리를 놓는 집>은 지극히 서구적인 건물과 건물 사이에, 불시착한 듯 기묘하게 충돌한 한옥집이 끼어있는 모습입니다. 한옥집에 살면서 동양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 누구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띤 작가. 한옥을 빼닮은 한국인 그 자체인 '내'가이역만리 타향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불시착한 상황. 어느날 서양으로 다시 미술을 전공하러 집을 떠나온 뒤 타향에서 온몸으로 느꼈을 '문화충돌'의 현장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듯합니다. 

어쨌든 두 문화는 어떤 형태로든 서로 만났습니다. 견고한 서양 문화 사이에 낀 존재일지언정, 한국에서 나고 자란 집 한채가 덩그러니 끼었습니다. 불편해보이지만 그래서 더 눈에 띄는 모습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듯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계속 통로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통로들은 신체적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되었던 저의 개인적 경험과 연결됩니다…. 과거 ‘태어난 곳의’ 문화에 대한 향수와 현재의 이주 문화 사이의 거대한 틈을 연결하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1)


집을 떠나서야 집을 생각하다

<연결하는 집, 런던(1/125 스케일)> 판수지, 레진, 종이, 스테인리스스틸, 144.6 × 144 × 144cm, 2024
<연결하는 집, 런던(1/125 스케일)> 판수지, 레진, 종이, 스테인리스스틸, 144.6 × 144 × 144cm, 2024

<연결하는 집, 런던>은 2018년 런던 웜우드 스트리트(Wormwood Street)의 육교 중간에 설치했던 한옥의 재현품입니다. 다리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이어주는 공간이지요. 공간과 공간 사이, 통로에 덩그러니 놓인 한옥은 보다 공공의 영역에 '떨어진' 상태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2024년 재현된 1/125 스케일의 빌딩과 버스 안의, 또는 길 위의 사람들은 저 낯선 집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작가를 비롯한 우리 한국인들에게 런던 한복판의 한옥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용했던 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이라는 것을 서도호의 집은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타향으로 이주한 뒤 거주한 시간이 고향에서의 시간을 초과한다고 해도, 어린시절 내재된 기억은 여전히 나의 정체성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을 겁니다. 작가는 집을 만들때 꼼꼼히 치수를 재고 세밀하게 집중해서 만들었습니다. 집을 본뜨는 과정은 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그 자체였습니다. 집을 떠나서야 집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저는 기억을 영속화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의 집’이 저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언제 사라질지 몰라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 집을 자로 꼼꼼히 재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굉장히 집중적으로 그 공간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음악도 한참 들으면 지루해지듯이, 그렇게 되면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그 음악이 나오면 다시 따라 부르듯이 언제든지 기억 속에서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


모든 것이 내 집이면서 그 어느 곳도 내 집이 아니다

<향수병(1/80 스케일)> 혼합 재료, 122.5 × 83 × 83cm, 2024
<향수병(1/80 스케일)> 혼합 재료, 122.5 × 83 × 83cm, 2024

천천히 움직이며 물결치는 <향수병(1/80 스케일)>이 보여주는 풍경은 여러 가지 감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직관적으로 이민은 바다를 건너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죠. 어렵사리 건너온 바다, 타향의 파도에 의해 서서히 마모되고 변화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특정 시간에 멈춰선 작가의 집에 대한 구체적인 시각적 기억이 천천히 훼손되는 경험 자체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제는 없는 집, 없는 시간을 영원히 그리워하는 향수병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으로서 조난된 현장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요. 아마 나고 자란 고향을 평생 그리워하게 될 운명이 아닐까요. 유년의 기억은 신체에 새겨져 내 혈관을 타고 뇌에 스며들어 나의 일부로서 생생하게 정체성을 구축하고 때로 강화되겠죠.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고향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전히 변했을 겁니다. 1962년생인 작가가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부터, 어쩌면 작가의 한국은 90년대에 멈춰있는 셈이니까요. 작가가 그리워하는 서울의 어느 공간은 이미 없는 한국일지도요.  

"모든 곳이 내 집이면서 그 어느 곳도 내 집이 아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한국을 떠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경험이었다. 집을 떠나는 경험이야말로 내가 처음으로 집이라는 것 그 자체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인식하게 해주었다. 따라서 집은 내가 그것을 더는 갖고 있지 않게 되었을 때에서야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집은 대체 어디에, 그리고 언제 존재하는가? ... 한국을 떠난 뒤 집은 내게 하나의 관심사로 존재하기 시작했고,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3)


서도호 작가의 아버지인 서세옥 화백이 1974년 성북동 한옥을 지었을 당시에도,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지었다는 이 한옥 건물은 그 자체로 낯선 집이었습니다.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는 한옥보다는 양옥 건물을 선호하던 시절이니까요.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 작가는 집에 대해 절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대개 그렇듯 나의 집은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눈에 들어오지 않는 풍경이었을지도요. 그래서 한국을 떠났을 때,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더 오랫동안 반추하게 되는 풍경이 아니었을지 상상해 봅니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 흩어져 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현장을 서도호의 한옥집에서 조심스럽게 읽어냅니다. 고향과 새로운 고향-타향 사이에서 완벽한 집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보면 이주민에게 완벽한 집이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인 것 같아요. 작가가 거쳐온 수많은 집의 형태를 함께 되짚어가다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사실 많은 집을 관통해 생존해왔고 많은 기억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문화적 이민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서도호의 작품이 우리에게, 또 전세계에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겠지요.

첨부 이미지

각주

1) 아트선재센터 큐레토리얼 에세이 https://artsonje.org/

2) 시인, 서도호를 만나다(시인 반칠환/최혜경 기자, 행복이 가득한집 2012년 5월호)
https://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00010005/3610

3) 리움미술관 집 속의 집 https://www.leeumhoam.org/leeum/exhibition/11

 

참고 자료

리만머핀, 서도호 https://www.lehmannmaupin.com/ko/jagga/seodoho

서도호의 '기억으로 지은 집' (전영백 교수, 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

https://www.formmca.org/post/%EC%84%9C%EB%8F%84%ED%98%B8%EC%9D%98-%EA%B8%B0%EC%96%B5%EC%9C%BC%EB%A1%9C-%EC%A7%80%EC%9D%80-%EC%A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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