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초면이네요. 저는 영우입니다. 초면이라는 말은 자주 쓰진 없죠. 처음 만났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처음이 조금 어렵습니다만, 용기를 내어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무슨 이야기로 시작할까, 고민을 하다가 3월에 기웃거렸던 아트바젤 홍콩 후기를 들고 왔습니다. 왜 사람들은 해외 아트페어에 갈까요? 그리고 흥분할까요? 아마 그것은 해외 유명 편집숍에 쇼핑하러 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글로벌 미술 편집숍, 아트바젤 홍콩
제가 생각하는 아트페어는 미술품 편집숍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갤러리가 셀렉한 다양한 작가, 다양한 작품을 판매하러 오는 곳이죠. 미술 업계에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들도 작품을 관람하고 구매할 수 있죠. 그러니 발품을 팔아서 각 갤러리에서 엄선한 작가와 작가를 만나는 재미가 꼭 편집숍에서 쇼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에 소개되기 전이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거나, 이제 막 로컬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죠. 게다가 미술품은 판매되면 개인 수장고, 미술관, 갤러리로 흩어지기 때문에 다시 보고 싶어도 그 작품을 볼 수 없기도 합니다. 매 전시가 한정판 발매 현장과 비슷하달까요. 아트바젤 홍콩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트페어이면서 서울에서 3시간 30분만 비행기를 타면 도착하는 홍콩에서 열리기 때문에 그나마 손쉽게 갈 수 있죠. 그렇다면 2024년 3월, 아트바젤 홍콩에서 만난 새로운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1. 유이치 히라코(Yuichi Hirako, Japan, b.1982)
2024년 아트바젤 홍콩 전시장에서 가장 자주 보였던 작가라고 하면 '유이치 히라코'입니다. 특히 인간과 나무를 섞어서 만든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회화와 조각이 많았는데요. 귀여워서 그런지 두 번, 세 번 눈길이 갔어요. 이 주인공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구 저편의 숲속에서 유유자적하며 다른 생명체와 고생하며 일상을 보내"는 "하이브리드 캐릭터"인데요. 회화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조각은 또 피규어나 아트토이처럼 귀엽습니다. 아트페어에 가면 지금 트렌드가 명확하게 보일 때가 있는데, 유이치 히라코가 여러 갤러리 부스마다 보였어요. 물론, 이렇게 귀엽고 평화로운 작품이 눈에 띈다는 것은 현실이 팍팍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삶에 여유가 있다면, 사회 비판적이고 강렬한 이미지가 더 눈에 들어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무슨 작품이 눈에 띄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자신을 돌아보는 관람법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다른 작가들도 더 많이 소개되었을 테니까요. 아, 국내에서는 최근에 마곡에 있는 '스페이스 K'에서 개인전을 했어요. 지금도 입구 정원에 <이그드라실/북스(Yggdrasill/Books)> 조각이 전시되어 있어요. 그리고 작가가 벽화도 남겨두었으니, 찾아보시기를.
2. 카를로스 아이르스(Carlos Aires, Spain, b.1974)
아트바젤 홍콩에 카를로스 아이르스를 소개한 갤러리는 2011년 마드리드에 개관한 사브리나 아마라니(Sabrina Amarain)입니다. 이번 캐비넷(Kabinett) 섹션에 카를로스 아이르스를 선보였어요. 캐비넷 섹션은 미술사적 의미를 중점으로 구성하는 전시 섹션인데요. 이번에는 카를로스 아이르스의 <Love Songs for times crisis> 시리즈였습니다. 싱가포르, 태국, 브루나이, 중국의 지폐에 나오는 인물, 건축물, 동물의 이미지를 그리고 액자의 아크릴(유리) 위에 가요의 가사를 이미지와 중첩되게 그려놓았는데요. 이렇게 텍스트를 회화에 활용하는 것은 역시 기호를 캔버스 위에 올려놓았을 때 생기는 인식적 충돌의 연장선에 있죠. 그리고 인용된 가사가 '영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죠. 언어와 문화와 충돌하기도 하면서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니까요. 특히 지폐에는 국가의 정체성이 표현되어 있는데, 그 도안 중에서 전통적인 인물상, 상상의 동물인 신수(용, 기린, 봉황 등)들이 나오는 게 좋았어요. 특히, 상상 속 동물을 가져온 게 좋았어요. 실제로는 볼 수 없지만, 가장 물질적인 것에 깃들어 있다는 점과 그것을 회화로 그렸다는 세 번의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바로크 시대 종교적 의미를 담은 황금색 액자"에 담아두었다는 것 까지요. 겹겹이 잘 쌓인 레이어케이크를 먹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3. 체린 셰르파(Tsherin Sherpa, Nepal, b.1968.)
한국에서 만나보기 힘든 국가의 동시대 작가를 찾아보는 것도 해외 아트페어를 가는 즐거움이죠. 로시앤로시(Rossi&RossI)에서는 캐비닛 시리즈로 네팔 출신 작가, 체린 셰르파의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티베트 탕카에서 볼 수 있는 티베트 전통 문화의 도상, 불교의 도상을 가져와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하는 작가였어요. 특히 티베트하면 떠오르는 '직조'와 '자수' 기술을 가져온 것도 좋았죠. 위의 이미지는 이미지를 자수로 짜고, 퍼즐처럼 흩어놓았는데요. 작품 위를 한번 쓸어보고 싶을 정도로, 촉감이 궁금했어요. 그리고 원래 어떤 이미지인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는 더욱 복잡한 이미지로 느껴질 것 같았죠. 체린 셰르파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주목을 끌었는데요. 이 작가는 12세부터 유명한 탕카 화가였던 아버지, 우르겐 도르제 셰르파(Urgen Dorje Shepa)에게서 탕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대만에서 중국어,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 네팔로 돌아와 탕카 제작, 사원 벽화 작업에 참가했죠. 그 이후 1998년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가면서 스스로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작가들이 모인 아트페어에 가면 역시 작가 자신의 국적, 경험, 문화적 내러티브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나만의 것이 무기가 되죠.
4. 가오레이(GaoLei, China, b.1980.)
가오레이는 일상 속 사물을 묘한 긴장감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이번에는 화이트스페이스(WhiteSpace) 갤러리 부스를 훑어보다가 치즈의 구멍을 열쇠고리로 채워서 연결해둔 이미지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치즈는 조금만 힘을 줘도 무너지는 물건인데, 두 개의 치즈 조각을 연결해둔 것이 모순되잖아요. 원래는 하나의 덩어리였을 것 같은 치즈를 덧없이 연결해둔 것일 수도 있고, 약간의 고통을 이겨내면 극복할 수 있는 구속이지만 결코 그 고통을 감수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죠. 하나의 이미지가 다양한 서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예술 작품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게다가 반짝거리고 매트한 질감으로 얹어서 더욱 작품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죠. 실물로 봤을 때, 더욱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디지털로 보는 것이 해상도 측면에서 생생할 수 있더라도 직접 발품을 팔아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오레이는 상하이와 베이징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베이징 중앙 미술 아카데미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전공했고, 회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 작업을 하고 있어요.
홍콩에서 기웃기웃
이번에는 "아트바젤 홍콩에 간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요. 가기 직전에 <백종원의 배고파>를 우연히 보게 된 덕분에, 카도라 베이커리(Kadorar Bakery)의 푸딩빵을 알게 되었어요. 주로 홍콩섬에 있었던 지난 여행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마작패를 사러 구룡반도로 넘어가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찾아갔는데요. 운 좋게도 웨이팅 없이 사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 가기 전에는 부드러운 빵과 크림을 상상했는데, 직접 먹어보니 쫄깃한 바게트 빵에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이 가득 담겨 있어서, 맛과 식감의 밸런스가 좋았어요. 빠네 파스타에 파스타 대신 크림이 가득한 느낌? 다시 가면, 또 먹으러 갈 만하다. 그렇지만 주요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서 홍콩이 처음인 분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동선을 열리하게 짜는 '빵순이'와 '빵돌이'라면 추천합니다.
EDITOR. 영우
IG. @visitor.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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