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인생

2022.11.10 | 조회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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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의 주석

말보다 글이 유창한 인간의 주절주절

“야! 아까 쌤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이따가 쌤 오면 나랑 똑같이 말해.”

 

임성한 작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인데!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아이들의 작당 모의를 듣자니 소름이 쫙 끼쳤다. 불과 30분 전 울먹이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점점 거세져 갔다. 모든 것이 설계된 폭로였다. 소 뒷걸음치다 쥐를 잡긴 했는데 이런 순간엔 늘 쾌감보다 난감이 먼저다. 나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선생님 학폭위 열면 걔 생기부에 범죄 기록이 남아요?”

 

아이 여럿이 하나를 6개월간 가해자로 점 찍어 온 상태였고, 처음엔 사과만 받으면 된다고 했지만, 질문의 끄트머리엔 학폭위나 생기부 같은 단어를 꼭 덧붙였다. 마침내 여러 명의 입에서 범죄 기록이라는 말을 하였을 땐 숨이 턱 막혔다. 전부터 철석같이 믿는 신념 하나가 있다. 남을 뭐 되게 만들면 나도 뭐 되는 순간이 온다. ‘인스턴트 카르마’랄까?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惡의 부메랑을 멈추자!’

 

“아이야. 너는 스위치 몇 번을 딸깍거렸니?”

 

남 등쳐먹을까 말까. 소문을 퍼트릴까 말까. 쟤 인생 뭐 되고 만들고 나도 코 박고 죽을까 말까. 아이들은 善의 스위치를 ON 그리고 OFF로 몇 차례나 딸깍거렸을까? 예전에는 빠르게 여러 번, 어제는 느리게 두어 번 그러다가 오늘은 OFF에서 검지를 그만 멈추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이 단선으로 영원히 OFF, 惡에 멈추어 있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아이들이 야속해도.

 

“구세주가 지구를 구원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인지 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은 개인이 가진 신념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발생했을 때 행동 대신 신념을 바꾸는 행태를 이른다. 1954년 12월 21일 지구 대홍수를 예언했던 매리언 키치는 자정이 지나도 종말이 오지 않자 ‘구세주가 자구를 구원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라고 공표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은 이미 저지른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태도나 생각을 바꾸어 버리곤 한다. 피해자의 겁을 집어삼킨 가해자가 된 가여운 아이들처럼.

 

“착하게 살면 밥이 나오냐? 집이 생겨?”

 

아이들이 善의 스위치를 ON, OFF 시킬 동안 활용할 수 있는 예언은 무엇이 있을까? 흔히 듣는 “착하게 살면 너만 손해야.”가 아니라 “착하게 사니까 밥이 나오고 집이 생겼지?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해.”하는 근사한 도식이 아닐까? 스위치를 딸깍거리는 아이들에게 철학 할 거리를 계속 던져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맛난 포도를 올려다보며 ‘에이, 저건 분명 신맛 날 거야.’할 때, 목말 태우고 손엔 감대 쥐여 당당히 단맛 느껴보라고 하는 일 말이다.

 

“아이야. 환각과 부조리를 넘어 질투와 야만을 벗 삼아 善하게 살아. 결국 달 테니까.”

 

*마치 2인 3각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넘어질 듯 휘청하며 매일 상담을 이어갔죠. 대화와 공감으로 보낸지 꼬박 한 달, 마침내 아이들은 눈물 혹은 웃음을 쏟았습니다. 끝내지 못한 이야기 속 말 줄임표는 아이들 머리 위로 떠올라 톡톡하고 터졌다죠.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생각의 여름 - 활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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