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산강 자락.
쪽이 자라는 이곳.
이곳에 오기 전, 내가 상상한 쪽염색은 정갈하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하얀 모시가 푸른 물에 잠기는 우아한 정적.

쿵쿵쿵!
"일어나셔야돼요!"
해가 뜨기 전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전체를 울리고 사라졌다.
전날 하루내 운전을 한지라 잠에서 미처 다 깨지도 못한 채 옷만 챙겨입고 밖으로 향한다.
해가 떠 이슬이 마르기 전에 쪽을 따야하는게 정석이라나.
눈이 반쯤 감긴 내 손에 쥐어진 건 목장갑과 낫 한 자루.
익숙한 듯 장인이 시범을 보인다.
착- 착- 우지끈-
노련한 낫질 몇 번에 쪽 한 큰 움큼이 베여 수레 위로 던져졌다.
본 대로 따라해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악취,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끊임없는 노동
식사를 한 뒤 작업장으로 향했다.
작업실 근처에 발을 들이자마자 코를 찌르는 것은 고약한 악취.
음식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가는 듯한, 숨이 턱 막히는 냄새.
사우나 안에 있는 듯한 습도와 따듯하게 데워진 바닥의 열기가 시큼시큼한 냄새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쪽이 발효되는 냄새란다.

푸를 거라 생각했던 발효 항아리 속의 물은
되려 탁하고 거무죽죽했으며, 노란 건더기들이 몽글몽글 떠다녔다.
장인은 마스크를 쓰고는 석회 가루를 체에 거르고는 무심하게 전부 항아리에 털어 넣는다.
그리곤 한 여름의 타는 듯한 열기 속에서 고무래라는 나무 막대기를 들고 그 탁한 물을 한참이나 저었다.
고무래가 물과 석회를 섞을 때면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처럼 '철썩'이는 소리가 작업장을 가득 메웠다.

터프하고, 거칠고,
냄새는 여전히 지독했다.
그 고독한 역경을 견뎌내고서야, 비로소 염료가 탄생한다고 한다.
가슴 서늘해지는 쪽빛
염료를 풀어 흰 천을 담갔다.
어떻게 변한 것인지 분명 파릇파릇하던 녹색 풀더미에서
가슴까지 서늘하게 만드는 파란색이 올라왔다.

바다보다 깊고 무거운 청색.
세상의 모든 빛을 온전히 받아 삼켜버리는 듯한 그 색은, 장인의 무언가가 서린 듯하여 어떤 경외감마저 주었다.
이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그 지독한 썩는 냄새를 견뎌야 했다고 생각하니 어느정도 납득이 된다.
장인의 곁
문득 장인의 뒤편을 보았다.
이 고집스러운 전승 작업을 지탱하는 것은 장인만이 아니다.
판매와 강의를 위해 전국을 다니는 아내,
관광과 지원 사업을 유치하며 가계를 일구는 자녀들,
그리고 곁에서 묵묵히 일손을 보태는 마을 주민들이 있다.
가족과 마을 전체가 하나의 사명을 위해 장인의 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일을 돕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고집이 꺾이지 않도록 온 마을이 지켜내고 있는 중이었다.

킁킁-
나주를 떠나며 다시 냄새를 맡는다.
처음의 그 시큼한 냄새는 어느덧 사라지고, 이것을 지키는 마을 사람들의 향기가 난다.
청출어람

녹색의 쪽에 사람의 땀이 섞일 때, 상상치도 못했던 푸른 쪽빛이 된다.
나도 내 인생의 '쪽'을 베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과정을,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 고통의 굴레가 멈추는 지점에서,
비로소 주변 빛을 삼켜버릴 듯한 검푸른색의 쪽빛이 시작된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가르침 받았다.
그리고 나의 그 고집을 위해, 묵묵히 옆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명하쪽빛마을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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