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위한 성찰

《남아 있는 나날》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2021.10.02 | 조회 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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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코로나전에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깨달음을 얻고 배웠다면 요즘 저는 독서와 특강에서 성찰을 얻습니다. 정적이지만 이런 취미라도 있어서 다행인데요. 활동적인 분은 이런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견딜지 궁금합니다.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순 없지만 예전에 비해 독서량이 늘었습니다. 여기에 오디오북까지 산책하며 들으니 한 달에 10권 이상은 읽습니다. 아무튼 책 덕분에 감사한 나날을 보냅니다.

예전에 기업교육 컨설팅회사에 다니던 시절 잘 모르는 분이 공개 교육 팀장인 저를 찾아왔습니다. 빙빙 둘러 설명하던 그는 전문 브로커였습니다. 정부에 허위 신고를 해서 몇천을 당겨올 테니 자신과 나누자는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깜짝 놀라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다른 회사는 다 그렇게 한다며 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처럼 가엾이 쳐다봤습니다. 

대표님께 보고 후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보고고 뭐고 말도 안 되니 무시할 것인지 그래도 보고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에 빠졌죠. 만일 대표님이 저에게 그런 사기 같은 엉터리 일을 하라고 시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만일 그런 상황이라면 퇴사를 해야 하는 건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다행히 대표님은 저에게 그 일을 지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의 다른 여러 가지 비도덕적인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퇴사했습니다. 그 이후 CEO의 철학은 제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추석 연휴를 포함해서 시간이 많아 미루어 두었던 책을 읽었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의 원제는 《The Remains of the Day》로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화제가 된 책입니다. 이 책은 부커 상을 받은 책으로 노벨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제목의 번역이 화제가 되었어요. 'The Remains of the Day'는 특정한 날 하루의 남은 시간을 의미하는데 '남아 있는 나날'은 인생 전체의 남아있는 시간을 의미하므로 오역이라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기사를 보고 호기심이 일어 영어 선생님께 물어보기도 했죠. 직역하면 '그날의 흔적'이 맞지만, 책 내용상 주인공 스티븐슨의 남은 삶이기도 합니다.

평생을 충성심으로 직업적 품위에만 집착한 스티븐슨은 결정적으로 인간적 품위를 위한 성찰이 부족했습니다. 스티븐슨은 주인의 행동과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충직한 집사였습니다. 주인이나 손님이 그의 의견을 물어도 주인에게 폐가 될까 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스포가 되므로 말을 아낍니다.) 과거 저와 같은 딜레마 빠졌다면 스티븐슨은 상사의 비도덕적인 지시에 따랐을 겁니다. (실제 그는 주인이 유대인 하녀 둘을 주인의 지시 때문에 이유 없이 해고했어요.) 엉뚱하게도 스티븐슨은 주인에게 전할 농담 실력 향상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하루의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듯 비록 과거는 부족했지만, 그만 돌아보고 더 적극적인 시선으로 하루의 나머지 시간, 남아 있는 나날을 멋지게 보내야겠다고 스티븐슨은 결심하거든요. 그래서 제목을 남아 있는 나날》로 번역한 것 같아요.

가끔 자기성찰이 부족한 직원을 만납니다. 스티븐슨처럼 개념이 없거나(자기 생각은 없고 상사가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자신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과 회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거죠.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근시안적인 시선으로만 현상을 바라봅니다. (물론 저 역시 과거에 그랬어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지속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합니다. 피드백은 다른 사람에게서 받기도 하지만, 책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때로는 독서가 수동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런 묵직한 질문이 '쿵' 하고 다가오는 순간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도끼가 되어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립니다. 여기에 글을 쓰며 성찰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하루 중 가장 좋은 때가 저녁이라지만, 솔직히 전 저녁이 되면 편안함보다 약간의 아쉬움을 느낍니다. 즐기며 살아야 하는데 아직 집착과 욕심이 저를 다스리나 봅니다. 오늘 저녁엔 다리를 쭉 뻗고 즐겨야겠어요. 여러분의 저녁도 편안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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