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87] 똑똑. 아직 거기 계신가요? 2023 연말 결산(1)

2023.12.23 | 조회 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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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데이 원무비

이상한 영화평론가 김철홍이 보내는 영화 뉴스레터 @1day1m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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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아직 거기 계신가요?

2023년 올해에도 원데이원무비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매 편 꾸준히 꼬박꼬박 챙겨서 읽어주신 분들께 특히 더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예전보단 뜨문뜨문하게 메일을 열어보시고 계신다 하더라도, 원데이원무비에 담긴 김철홍의 글이 작년보다 재미없게 느껴지신다 하더라도, 아니 이제 더 이상 저의 글이 기대가 안 된다 하시더라도, 그저 이렇게 구독자로서 존재하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 있어주셨기에 덕분에 올해도 포기하지 않고 글 쓰는 것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역시, 여러 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는 건 이제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일이 되었지만, 그렇게 써낸 글을 보면서 갈수록 아쉬움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솔직히 올해의 원데이원무비는 작년의 원데이원무비보다 별로였습니다. 깊이도 없고 날카롭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원데이원무비를 향한 관심 자체도 많이 줄어들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걸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는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이어갔던 건,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한 주 한 주 쓰다 보니 오늘까지 쓰게 된 것이었습니다. 쓴다고 했으니까. 쓴다고 했더니 그걸 지켜보기 위해 구독 신청을 해주신 여러분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쭉 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젠 제 글을 읽지 않으시고 있다 하더라도 감사하다고 말한 것은 진짜입니다.

감사한 여러분들께-. 내년엔 진짜로 더 재밌는 글을 보내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더불어 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 메일을 빠지지 않고 매주 챙겨 보신 분들은, 거기서 디테일한 드라마가 느껴져 더욱 큰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니 틈틈이 못 본 메일을 열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느껴집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계속 거기에 남아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특히 아직 저의 ‘부산영화제 방문기’(클릭) 글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글만큼은 정말 최고로 재밌으니 꼭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데이원무비는 이번 주 87호와 다음 주 88호까지 연말 결산 특집으로 발송된 뒤, 1월 한 달을 쉬어갑니다. 2024년의 첫 원데이원무비, 원데이원무비 89호 2월 3일에 발송될 예정입니다. 추운 연말 따뜻한 옷 단디 챙겨 입으시고, 맛있는 음식 충분히 드시면서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2023년 베스트 영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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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감독 : 웨스 앤더슨

올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이한 감각을 느끼게 해준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이상한 영화다. 너무 이상해서 애초에 이게 영화이긴 한 걸까 의심을 하게 만든다. 영화의 막이 오르면 WXYZ라는 티비의 로고가 뜬 뒤 한 TV쇼의 제작 현장이 보인다. 이윽고 한 사회자가 등장해, 앞으로 자신들이 보여줄 쇼에 관한 설명을 시작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이 쇼는 미국에서 공연되는 한 연극의 모든 제작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그 연극의 이름은 ‘애스터로이드 시티’. 정리하자면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영화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연극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TV쇼가 들어 있는 영화다. 그렇다면 이것은 연극일까 TV쇼일까 영화일까. 이 영화를 ‘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이것이 그 어디도 아닌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스크린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끊임 없이 재인식하지 않은 채 본다면, 금세 영화임을 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를 영화라고 생각하며 몰입하려 해도, 사회자가 자꾸만 화면에 등장해 이것이 TV쇼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이러는 이유는 무엇일까. 웨스 앤더슨은 왜 다른 영화감독들처럼 촬영과 편집의 결과물인 ‘영화’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것일까. 관객이 그걸 봐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은 영화에 결말이 없다는 거다. 단순히 결말이 모호하게 끝나는 영화라는 말이 아니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이 영화는 그냥 끝나지 않았는데 끝난다. 가장 먼저 끝나지 않은 채 끝나는 건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연극이다. 영화 속 시티 사람들이 격리 해제되는 날, 외계인이 다시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찾는 순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난 도무지 이 ‘연극’이 이해가 가지 않아.” 그렇게 극을 연기하던 인물의 극을 벗어난 대사와 함께 영화는 또 한번 무대를 이탈한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극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극은 그냥 그 아비규환 속에서 (끝이 나지 않았는데) 끝난다. 영화가 대신 보여주는 것은,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그 극을 이해하기 위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이다. 그는 먼저 극작가를 찾아간다. 그리고 묻는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이대로 해도 괜찮은가요. 저 우주에 뭔가 정해진 답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극작가가 답한다. “상관 없어. 그냥 계속 해. 자넨 잘하고 있다네.” 그 대답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배우는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밖에서 한 배우를 만난다. 이 배우는 ‘원래 극에 출연해야 했으나 분량 문제로 등장하지 못한’ 주인공의 죽은 아내 역을 맡은 배우다. 죽은 아내는 본극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는 잘린 장면 속 대사를 회상하지만, 여기서도 주인공이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은 없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영화엔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는 ‘영화의 끝’ 같은 장면이 없다. 그런 장면 없이 영화는 ‘정해진 순서대로’ 연극의 에필로그를 보여준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갑자기 끝난다. 시작할 때 분명 TV쇼였던 영화가, 극중극에서 끝나는 것이다. 대체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끝나는 곳의 위치를 어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극일까 TV쇼일까 영화일까. 웨스 앤더슨은 몇 겹의 픽션이 혼재된 공간 속에 우리를 남겨둔 채 룰루랄라 떠나버린다. 불현듯 그 공간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도무지 이 현실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이걸 깨달은 사람만이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주인공처럼,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무대를 벗어나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속한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2023년(한국 개봉 기준)에 웨스 앤더슨만큼 현실을 창조적으로 리얼하게 표현한 감독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걸 매해 현실 속 재료로 해내고 있던 감독은 홍상수이고, 완전한 허구의 재료로 베리에이션 해내고 있는 감독이 웨스 앤더슨이다. 내 기준 홍상수와 웨스 앤더슨은 완전히 반대편에서 같은 것을 하고 있는 두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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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낙엽을 타고> Fallen Leaves
감독 : 아키 카우리스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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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파이어> Afire
감독 : 크리스티안 펫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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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
감독 : 마틴 맥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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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미집>
감독 :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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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Indiana Jones and the Dial of Destiny
감독 : 제임스 맨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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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어> Air
감독 : 벤 애플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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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당나귀 EO> EO
감독 :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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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킴스 비디오> Kim's Video
감독 : 데이빗 레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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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스즈메의 문단속> Suzume
감독 : 신카이 마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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