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월 한 달 쉬고 돌아온 김철홍입니다. 사실 쉬긴 쉬었는데 뭔가 제대로 쉰 것 같은 느낌이 들진 않습니다. 물론 태어나서 보낸 모든 방학들이 끝날 땐 같은 허무함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번엔 진짜 진짜 쉰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이 기간 동안 제가 나름 바쁜 나날들을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는 대체 1월 한 달 동안 김철홍이 무얼 했길래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것인지에 관한 보고서 같은 글이 될 것 같아요. 방학이었으니까 ‘방학 일기’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요? 빨간 펜을 들고 잘했는지 못했는지 체크하면서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
우선 이건 광고는 아니고 홍보인데 드디어 영화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적당히 알고 지내던 남지우님과 작당해서 [노골 무비]라는 이름의 방송을 만들었는데요. 눈치 보느라 어디에도 하지 못했던 말들, 혹은 너무 하찮아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머릿속 잡생각들을 몇 시간 동안 두서없이 떠드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주 개봉한 영화들에 관한 정보뿐만 아니라, 영화 관련이 아닌 다양한 사회 이슈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담기게 되더라구요. 업로드 주기가 일정치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 할 때마다는 최대한 꽉꽉 채워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니 한가할 때 한 번쯤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아직 어디에 밝힌 적은 없는데- 2회 이후부터 삽입된 방송 오프닝 음악들은 전부 제가 직접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음악들이랍니다. 앞으로 공개될 새로운 회차엔 (아주 짧고 유치하지만) 늘 새로 작곡한 음악을 넣을 계획이니 기대해 주세요.
바빴던 두 번째 이유는, 이번 달에 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분야와 관련된 일이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기획 관련자 분들을 상대로 강연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국중박은 올해 6월 ‘북미 인디언의 문화’와 관련한 전시를 할 계획이라는데요. 이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다양한 조언을 듣는 과정에 거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전문가 중 한 명이 놀랍게도 저였고..!! 그래서 그 강연 준비를 하느라 1월을 정말 바쁘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강연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땐 망설임이 컸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인디언 박사’가 아니기도 하고, 그렇다고 평소에 영화 속 인디언들을 주의 깊게 봤던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들이 등장하는 영화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화를 주신 담당자님의 어떤 말 때문에 용기를 내게 되었는데요. 그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저의 여러 작업물들을 보고 다른 평론가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무엇보다 저의 대중친화적인 결과물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해 보면 원래 박물관 전시라는 게, 아니 예술이라는 게, 대중과 멀어서는 안 되는 무엇인 거잖아요? 박물관에서 일하시는 분이 저를 그렇게 보시고 저에게 부탁을 주신 거라면, 내가 거절할 이유가 뭐 있겠나.. 기꺼이 원하시는 대로 도움을 드리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강연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저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구요.
자세한 강연 내용을 여기에 다 적을 순 없지만, 제가 준비한 강연은 이런 방향이었습니다. 내 이야기가 그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없어도 상관없다. 그것까지 욕심내지 말자. 다만 재밌자. 도움이 못된다면 차라리 재밌는 시간이라도 제공하자는 것이 저의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그 어떤 분야보다 영화를 통해 북미 인디언들의 문화를 파악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솔직히 다른 분야도 잘 모르지만, 그냥 질러버렸습니다. 초장에 확 질러서 흥미를 돋우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근거 없이 허풍을 떨었던 건 아니구요. 영화 역사, 특히 서부극 영화들에 북미 인디언들의 모습이 너무나 많이 그려져 왔기 때문에, 충분히 흥미로운 얘기를 해드릴 자신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재미난(?) 강연을 마치게 되었는데요. 끝나고 나서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저 또한 뿌듯함을 느끼게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마지막에 보여주신 영화가 너무 좋았다.”였습니다. 그 영화는 <노매드랜드>로 미국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감독 클로이 자오의 데뷔작,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Songs My Brothers Taught Me)였는데요.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영화 내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요.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북미 인디언들의 녹록지 못한 현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감독 클로이 자오는 그런 인디언들의 현실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 비인디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듯 말입니다. 바로 그 영화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의 엔딩 영상을 여기에 첨부합니다. 이 영화는 현재 한국 OTT에선 볼 수 없어서요. 제가 드리는 프라이빗 유튜브 링크에서 살짝 맛만 봐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저는 설 연휴 한 주만 더 쉬고 오겠습니다!
모두 설 연휴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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