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82] 전설의 해녀와 마지막의 1/2

영화 <물꽃의 전설>

2023.11.18 | 조회 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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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데이 원무비

이상한 영화평론가 김철홍이 보내는 영화 뉴스레터 @1day1m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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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고령의 나이에 도달했음에도 계속해서 ‘현직’에 머물며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름 전문직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그럴 때마다 나의 노년기가 어떠할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때도 나는 매주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삶을 살고 있을까. 그 영화를 보고 쓴 노인 김철홍의 글은 과연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의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을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한 번 시작하게 되면 그 종착지는 항상 같은 곳이다. 애초에 영화관이란 곳이 남아 있기는 할 것인가 하는 비관적 상상. 그렇게 한때 현대인들에게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쇼를 제공했었던 극장이라는 인간의 발명품은 이미 멸종된 상태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끝으로, 청년 철홍의 상상 극장이 막을 내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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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영화의 위기에 대한 거창한 담론은 오늘 하려는 얘기가 아니긴 하다.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전설적인 한 현직에 대해서다. 이분이 전설인 이유는, 무엇보다 이 사람이 고령이어서다. 무려 2020년, 94세의 나이로 빗창을 들고 제주 성산읍에 위치한 삼달리 바다 밑으로 잠수를 하는 해녀. 이 해녀의 이름은 현순직이다.

영화 <물꽃의 전설>은 이 해녀의 은퇴, 그리고 그의 제자인 40대 막내 해녀(최지애)가 성장하는 6년간의 과정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를 보다 보면 할머니 해녀 분들의 엄청난 실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데, 자연스레 얼마 전 본 류승완 감독의 <밀수>에 나온 젊은 해녀들의 퍼포먼스는 애교 수준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그들은 물속에서 자유롭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다 똑같아 보이는 물속 지리를 꿰고 있다는 것이다. 현순직 해녀는 극 중에서 특별한 한 장소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때 덧붙이는 한마디가 정말 포스 넘친다. “거긴 아무나 들어가지 못해.” 이 말이 멋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생략돼 있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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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에 있는 ‘물꽃’은 바로 그 특별한 장소 ‘들물여’에 있는 생명체이다. 현순직 해녀는 들물여에 물꽃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제자 해녀는 아직 본인의 눈으로 그걸 보지 못한 상태다. 영화는 마지막에 두 해녀가 그곳에 배를 타고 직접 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은퇴한 스승은 배에서 기다리고, 제자가 홀로 해저로 향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바다가 급격히 오염된 탓에, 이제 더 이상 스승이 말한 위치에선 물꽃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물꽃의 정확한 식물명은 ‘밤수지맨드라미’라고 한다(감독 인터뷰에서 확인). 고희영 감독은 이 엔딩을 통해 황폐해져가는 제주 바다에 대한 일침을 던진다.

영화 중반부엔 현순직 해녀가 마지막 물질을 한 날에 대한 기록이 있다. 무려 87년 동안 물질을 한 해녀가 어깨에 그날 수확한 해물이 든 그물을 메고 집으로 향한다. 무척 무거워 보인다. 물에선 자유롭던 그지만, 물 위에선 지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 그가 바로 다음 하는 행동은, 잡은 수확물을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물질에서 캔 해물의 반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에게 건넨다.

오늘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나의 마지막 영화 관람질을 상상한다. 내가 쓸 마지막 영화 글이 어떨지 한번 떠올려 본다. 나는 내가 영화에서 본 것의 반을, 아니 반의 반만이라도를, 누군가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늙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직일 수 있는 영화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소박한 꿈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 전설의 해녀를 보며, 그것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물꽃(밤수지맨드라미)
물꽃(밤수지맨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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