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삶

사순절 단상_월요

2024.04.08 | 조회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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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순’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순우리말로 ‘10’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사순절은 40일의 기간을 뜻한다. 부활절 전 대략 40일을 정해 기념하는 절기이다. 교파마다 교회마다 이 기간을 지내는 방식은 각양 각색이다. 성당에서는 죽음을 묵상하는 죄의 수요일을 첫 날로 하여 부활까지 한 주 한 주 기념하는 것들이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하여 개신교에서는 아예 사순절을 언급하지 않는 교회도 있지만 우리 동네 교회처럼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를 여는 곳도 있고 금식과 절제의 삶을 제안하는 곳도 있다. 사순절 마지막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리는 고난 주일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의 생애는 서른 세 해로 매우 짧았는데, 태어나실 때의 사건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서른 살 이후 사역을 시작하신 이후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도 삼 년의 기간이 고루고루 있다기보다는 (갈릴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예루살렘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일들 그리고 잡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일들에 큰 비중을 두어 기록하고 있다. 사순절을 특별히 여기고 기억하는 것은 성경에 나와있는 예수님, 특별히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사순절을 특별히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 한 작은 교회에 다닐 때 사순절 기간 교인들과 함께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금식을 했던 경험이 무척 의미가 있었다. (문자대로라면 금식은 식사를 안 하는 것이지만 좀 넓은 범위로 적용해서 자신의 즐거움이나 중독적인 행위들을 금식의 리스트에 올렸었다.) 그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올해 사순절은 어떻게 보낼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새벽 기도를 다니는 동네 교회에서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를 한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성당에 다니시는 어머니께 여쭤보니 사순 시기가 시작되어 이제 재를 이마에 바르러 성당에 간다고 하셔서 이번 해는 사순절 시작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춘분을 기준으로 하는 부활절이 매년 변하기 때문에 사순절도 매년 변한다. 올해 부활절은 3월 31일이었다.)

내 삶의 어떤 중독을 끊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웹툰과 예능 유튜브를 보지 않기로 했다. 십자가 위에서 마취약이 담긴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다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체육관에서 이십분 트레드밀 위를 걸을 때 티브이를 켜지 않고 걸어보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부활절을 기다리며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했을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그동안에 자기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학생도 있었다.

사순절이 지나고 이제 내가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야호! 이제 맘껏 다시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그동안 잠시 참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를 한 후 요요가 와서 그전보다 더 살이 찐다면 그 다이어트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지 않을까? 이 모든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정리하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한 번 돌아보기 위해서

일단은, 그동안 그런 작은 절제를 했다고 해서 생각보다 시간이 남거나 하지는 않았다. 미뤄두었던 책을 좀 더 읽을 수 있었고 수업 준비도 중국어 공부도 좀 더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하루에 조금씩 읽는 성격 읽기도 대부분 빠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 삶을 충실하게 하려면 그렇게 인터넷에 빠져 있으면 안 되는구나, 그동안 시간이 남아서 인터넷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영상이나 웹툰을 보면 참 즐겁다. 당연히 많이 보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지만 심심할 때 힘들 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 동안에는 ‘누가 날 좀 건드리지 말아 줘. 움직이기 싫어.’라는 상태가 된다. 특별히 혼자서 볼 때 그렇다. 그리고 항상 처음 생각한 것보다 많은 시간을 보게 된다. 즉 주위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채 자신 안으로 뭉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기력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 보니 금식의 기간 동안에는 신기하게도 저녁 식사 이후 시간에 오던 이런 무기력감이 많이 줄었다.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다면, 어떤 행위에 중독되기에는 나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주신 삶인데. 아자, 오늘도 기운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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