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언니의 智樂생활[꼼지락]

연습_이정

2024.01.16 | 조회 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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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자주 안 하던 짓을 했다. 이른 아침 장을 보러 인근 대형몰에 갔다. 바이오 식품 칸 앞에서 제법 시간을 썼다. 최근 헤르페스로 입술이 터지고, 뒤늦게 코로나가 걸리고 변비가 더해진 탓이다. 특별하게 달라진 일상은 없는데, 어디서 엇나가 몸에서 이상신호를 주나 생각했다. 그럼에도 병원 갈 생각은 애당초 안 한다. 프랑스 병원에 기대를 거둔 지 오래기에 간소하게나마 먹거리로 변주해 보자 싶었다. 시간을 들여 챙겨온 병아리콩은 12시간 불려야 한단다. 12시간 불린 콩을 다시 한 시간 삶았다. 이어 렌틸콩도 불리고 삶고. 오랜만에 수제 요구르트를 만들었다. 장바구니 가득 담아온 색색들이 채소들 씻어 그릭 샐러드도 만들었다. 고작 몇 가지를 준비하느라 부엌은 난장판이다. 지금 치워도 나중에 치워도 어차피 치우는 건 난데, 안 치우고 말 묘안이 달리 없어 지금 치우자 하고 시작한다. 부엌이 말끔해지니 눈앞 거실이 열리듯 보이고, 따라 치우며 열린 공간들 하나씩 클리어하다 보니 집안 청소 완료다.    

자주 하던 짓이다. 마감 전이면 정작 해야 할 일, 그 언저리를 뉘엿뉘엿 계속 모면하며 하는 딴짓들. 주말 내내 몸을 핑계 삼아 장을 보고 요리 아닌 요리를 준비하고, 치운다며 집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렸다.

화요일은 <이상한 요일들> 셀프 마감이자 발행일이다. 한국 플랫폼이라 시차 8시간을 생각하면 늦어도 이른 오후까진 발행 버튼을 눌러야 한다. 나의 화요일 일상은 자체 지뢰밭이다. 5시에 기상 모임이 끝나면 곧이어 아침 북클럽, 이어 점심 북클럽, 다음은 개인 수업이 있다. (기상모임도 북클럽도 본인이 운영자라 불참이 불가능하다) 몸에 익은 일상에 자칫 미끄러지듯 다른 무엇이 닿으면, 그동안 깊이 제대로 잘 심어 무사했던 지뢰가 터져버리는 아슬아슬한 하루가 바로 화요일이다. 어쩌자고 하루에 이리 많은 일을 구겨넣듯 만든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다. 마감 외 나머지 일들은 시간도 붙고 몸에도 익어 무탈히 넘어가련만 삼십 년 전 밥벌이로 했던 글 마감은 무심하게도 이제 낯선 일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겪는 일이라 익숙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

한편, 인정하기 싫은 욕심 탓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글을 얼마나 잘 쓰겠다고 이리 미루고 벼루나 싶어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 나이에 무슨 영광과 벼슬을 하겠다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나 몰래 무슨 영광과 벼슬을 하고픈 자아가 생긴 건가), 그럴 필요도 없는데, 그저 맘 들여다보려, 내 이야기를 기록해 보잔 맘으로 시작한 일인데, 그 글 앞에서 납작해진 날 발견한다. 그동안 재미나게 잘 읽던 책 읽기도, 그 끄트머리 불쑥 부러움으로 남곤 한다. 결국 질투와 부러움은 날 기어코 지게 만들며, 그렇게 쪼그라든 날 보며 홀로 애틋해한다.   

헌데 오늘은 애틋해할 짬이 없다 정신 차렷!!! 얼른 샤워를 했다. 새벽 내내 얼었던 몸에 따뜻한 물줄기가 흐르자 피가 돌아 몰고 왔는지 어떤 감정 하나가 며칠 전 읽었던 몇 줄 글 조각과 함께 몸을 적셨다.

'사랑하는 사람과 얼음을 지칠 때 평소보다 부주의한 채 걸었다'던 짧은 글 한 조각. 최선을 다했다면 넘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덕분에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서고 틀어줄 수 있었다던. 자꾸 빳빳이 넘어지지 않으려고만 하다 보니 몸이 이리도 얼어붙는걸. 자꾸 넘어져야 하는데. 살면서 자꾸 넘어져야 걸을 수 있다고 그리도 옆 사람에게 잔소리를 해댔건만, 정작 난 넘어질 때마다 아팠던 그 감정을 되새기며 두려워한다. 두려워해서 옆 사람 기운 보태서 일어나려고 <이상한 요일들>을 만든 건데 고작 두 주 지났건만 잊었다. 아직도 넘어지는 연습이 꾸준히 필요하구나. 그래서 손잡을 누군가의 온기가 이리도 필요하구나. 잊으면 잊는 대로 버려두고, 일단 매일 연습하는 수밖엔. 그리하며 마감 전이면 터질 것 같은 심박수를 조금씩 낮춰보자. 넉넉하게 오늘도 마감시간 겨우 맞춰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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