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알아차린 것들

어쩌다, 반야심경....._우나별

2024.06.18 | 조회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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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우리의 시간은 어쩌면 이렇게 쏜살같을까?

벌써 우리 가족이 독일에 들어온 지 10개월째 접어든다. 남편이 이곳 일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다 되어가고 있고, 우리가 이곳에 머물 날들도 이제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가족의 삶에 들어온 인연들이 많긴 하지만 그중 우리 가족에게 조금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약 8개월 전부터 거의 매주말마다 만나고 있는 A 씨네 가족이다.

A 씨는 남편의 30년 지기 대학 친구의 첫 직장 동료였다. 젊고 자유로웠던 청춘들은 퇴근 후 자주 만나 어울렸던 모양이다. 그러다 A 씨에게 아름다운 콜롬비아 출신의 여자친구가 생겼고, 곧이어 독일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남편과 그 친구는 그 후 연락이 뜸해졌고, 독일로 온 그 커플은 결국 스페인으로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 정착했다. 그 후로도 여전히 10년 넘게 결혼을 하지 않았던 남편과 그 친구의 삶은 서서히 멀어지는 듯했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20여 년이 흘렀고, 독일로 발령을 받아 오게 된 남편과 독일에 정착해 살게 된 친구 사이를 다시 한번 대학 친구가 인연의 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그렇게 연락이 닿아 지난해 10월 그 두 사람은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독일에서 다시 만났다.

신기하게도 우리 두 커플의 아이들은 성별이 같았고, 첫째와 둘째의 나이도 같았다. 거기에 아이들 성향도 비슷해서 같이 만나 놀아도 부딪히거나 마음 상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 넷은 세대를 건너 다시 한번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청춘의 두 사나이들이 이제 50대 아빠가 되어 다시 만난 것이다. 옛날 얘기, 친구들 얘기, 현재 직장 이야기, 독일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 그 둘은 그렇게 함께 즐거워한다. 신이 난 남편들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찰떡같이 수다를 떨고 있는 나와 그의 아내도 그래서 더 편안하고 즐겁다.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가 떠나지 않고 계속 독일에 정착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나 또한 이곳이 독일이 아니라 영어권의 나라였다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다. 어디에서 이렇게 멋진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이렇게 우리 둘은 또 헤어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인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만남의 순간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인연이 나의 삶 속에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없을까? 내 옷깃을 잠시 스친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연이 몇십 년 뒤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날지 지금 알아볼 수 있으면 어떨까? 곧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지금 함께하는 이 순간을 근심 없이 즐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 내가 종종 쓰는 말이 있다. See you later! (다음에 봐요!)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우리 또 만날 거예요?" 그게 언젠지는 모르지만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나이는 여섯 살, 일곱 살. 내 말을 이해하기는 아직 어린 나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회사를 떠날 때도 항상 비슷한 말을 했었다. 대충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마주치게 될지 모르지만 그땐 서로가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길 바라본다는 내용이다. 그냥 내가 스쳐 지나온 모든 인연의 끈들이 먼 훗날 어떻게 이어져 내 앞에 다시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때 서로가 지난날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그런 말을 썼던 것 같다. 항상 그렇게 헤어짐을 슬퍼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아마 어린 시절 이사가 잦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여행을 많이 하다 깨닫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기억들이 매번 어떤 깨달음을 주고 지나갔다. 다시 마주치는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싫어하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 '우리 길에서도 마주치지 말자!'라는 대사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와 자꾸 마주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 많진 않았지만 여행을 하다가 종종 스치듯 마주치는 여행자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기억 속에서 이름조차 희미하게 잊혀 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것이 좋았던 좋지 않았던 나를 스치는 인연은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 나와 한 마디도 섞지 않은 물건이나 동식물인 경우도 말이다. 그 의미는 누가 만들었을까? 여기서 나는 한 번 웃는다. 내 마음대로 그렇다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A 씨의 가족과 영화 세트장 투어를 다녀왔다. 그곳엔 3D 영화 관람과 과 VR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처음으로 3D 영화를 관람한 아이들은 너무 좋은 나머지 한동안 환호성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정말 멋졌다며 영화 관람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즐거워했다. 나도 오랜만에 관람해 보는 3D 영화였다. 영화 세트장 투어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VR 체험을 하는 곳으로 갔다. 3D영화에 비하면 이것저것 착용해야 하는 장치들이 참 많다. 시꺼멓게 무장한 아이들은 허공에 대고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글을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장애물도 요리조리 피하며 즐거워 보이긴 하지만 그 모습이 나에겐 기이하게 보였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 눈에는 보이는 그 무엇. 나에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것에 쫓고 피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존재하다'라는 것에 대한 물음표들이 내 머리 위에 형광등처럼 깜빡이며 나타났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것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느낀 것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적 목적에서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때로는 중요한 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해!’ 어린 왕자에서 여우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말했고, 성경에서도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봐야 한다’고 전한다. 그뿐인가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은 환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진실한 세계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질 수 없는 불교에서 또한 “색은 곧 공이고, 공은 곧 색이다”. 색즉시공 (色即是空)이라고 전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하다는 그 무엇.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 안 그래도 형편없는 시력을 가진 이 두 눈으로 눈앞에 있는 것도 잘 볼 수가 없는데, 볼 수 없고 꼭 마음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커지면 결국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며 생각이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내가 종종 그러하다. 아마 오늘 이 글에서 산으로 가는 나를 지켜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를 스치는 이 모든 인연에 반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얼마 전 법륜스님의 즉 문즉 답을 보다가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 또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북이나 종을 치면 북소리와 종소리가 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우리를 스치는 인연에 따라 좋거나 괴로운 반응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특별히 괴로워할 일도, 유난히 기뻐할 일들도 없으니 감정의 널뛰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내 마음속에 안방마님처럼 두 다리 뻗고 누워있는 괴로움과 불편한 감정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하고 있는 자세를 고치는 중이다. 실체가 없는 마음과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 자리 잡은 수많은 생각들 때문에 삶이 때론 괴롭고, 불편하다. 좋고 싫음을 두고 분별하기 시작하고 내가 가진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디 우리 혼자 사는 세상이던가? 나도 평가받고 나도 때론 싫고 미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우린 서로 괴로워한다.

문득 그렇게 존재에 대해, 마음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 내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꼭 잡으려고 하는 헛된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한번 들여다본다.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마음속에 담아둔 것은 없었는지 실체는 없지만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그 마음을 환기시키고 청소를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연이라는 것이 꼭 인간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처한 상황일 수도, 나에게 온 물건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그 자체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많이 갖고 싶다는 욕심이 덜해질 것 같다. 그래서 그 인연에 반응하여 울리는 나의 마음 소리도 잔잔해질 것 같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생각인데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담아 본다. 사실 나는 불교신자이신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그래서 어린 시절 열심히 어린이 불교 학교도 다녔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우연히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었고, 친구의 제안으로 불국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고 1여름 방학 이후에는 엄마에게 비구니가 되고 싶다는 얘기도 했었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나는 다니던 절의 큰스님께서 주신 용돈 10만 원과 스님께서 주신 단주도 챙겨왔었다. 그랬던 내가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24세가 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직도 사도신경보다 반야심경이 더 입에 탁 붙어 나온다는 것이다. 목탁소리만 들으면 박자에 맞춰 자동으로 툭 입 밖으로 반야심경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당연히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이렇게 들어서야 다시 반야심경의 뜻을 살펴볼 기회가 왔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거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급이다. 우주의 먼지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내가 잠깐 들여다본다고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여전히 천주교 신자인 나이지만 다시 한번 반야심경만큼은 깊게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나는 신나게 종교를 넘나드는 행보를 하는 중이다.

매일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든다. 그것은 엄마인 나의 불안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또 부모가 되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매일 나의 부족함도 깨달아가는 중이다. 좀 더 공부하고 나를 다듬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 주변에는 나의 잘못을 신랄하게 지적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가끔은 작은 내가 또 작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잘 살다가 떠나야. 아이들이 나의 뒤꿈치를 보며 따라와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부단히 노력했던 우주에서 가장 무거운 먼지 같은 엄마로 말이다.

나의 삶에 들어온 이 수많은 인연들을 온전하게 다 누려야겠다. 실체도 없는 무수한 감정들과 나를 부르는 수많은 명칭들로, 과거에 떨궈내지 못한 채 허물처럼 나의 무의식에 끌려온 나의 과오들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나의 현재를 옭아 매지 않고,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지금 이 순간들을 누리고 즐길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다짐’한다는 말에는 힘이 있어 보이지만 무척 모호한 의미를 갖는 것 같기도 하다. 다짐은 현재, 지금이 아니라 내일 혹은 다음을 염두에 두는 말처럼 느껴져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을 산다. 오늘을 누리며. 나를 스치는 수많은 인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반야심경을 열심히 또 읽고 이해하고 나서 다시 글을 써봐야겠다. 나에게 올라가 봐야 할 산이 두 개 생겼다. 코스모스에 이어서 반야심경.

- 우주의 무거운 먼지 역할을 맡고 있는 천주교 신자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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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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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을

    0
    3 months 전

    어쩌나 우나님을 알게되고 글을통해 당신을 더 알아갑니다. 작은데 더 작아진다는 말씀, 넘 겸손하신것 같네요. 철없이 날뛰던 저의 과거를 우나님 글을 읽고 저 또한 더 작아지는 저를 알게됩니다. 글이 아주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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