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

2025.06.13 | 조회 199 |
0
from.
두부
2주간의 두부의 프로필 이미지

2주간의 두부

격주로(에 가깝게) 에세이를 씁니다!

어릴 때 저지른 실수의 대부분은 ‘어려서 그랬지 뭐’하며 웃어넘길 수 있지만 어떤 기억은 도저히 그냥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다. 내겐 나 잘난 맛에 심취해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그렇다. 그런 순간이 떠오르면 자동으로 머리를 감싸게 된다. 그 장면으로 날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나는 내가 글을 끝내주게 잘 쓴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대표님이 전체 회의에서 공개 칭찬을 할 정도였다. 분명 신입의 기를 살리려는 의도가 있었을 텐데 난 그것도 모르고 우쭐해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같은 팀의 선배가 말했다. “두현님, 인터뷰 글에 적절한 이미지들 넣어서 콘텐츠 완성해 보시죠.” 내가 대답했다. “아 저는 제 글 중간에 사진 넣는 거 싫어하는데…” 내 글은 그 자체로 리듬감이 있고 몰입을 이끄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미지를 넣는 건 내 글의 고귀한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라는 의미였다.

대문호라도 안 할 말을 20대 중반의 정두현이 한 것이다. 내 말을 듣던 선배의 얼굴이 생생하다.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한 걸까? 그 일이 너무 부끄러워서 요즘도 이불을 찬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셀 수 없는 실패를 겪으면서 나는 겸손해져 갔다. 일이라는 건 알수록 어려운 거였다.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순간 여지없이 넘어지는 게 커리어였다. 훌륭한 사람이라서 

겸손해진 게 아니라 겸손하지 않으면 망신을 피할 수 없어서 나는 손을 공손히 모았다. 분명 어릴 적보다 아는 게 많은데 말은 아끼게 되는 스스로를 보면서, 내가 겪은 시간을 똑같이 지나오며 잘난 척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되뇌었다. “인간은 애매하게 알수록 자만한다.” 이 문장은 내가 마음속에 새긴 몇 안 되는 진리 중 하나가 됐다.

일 뿐이 아니었다. 운전이든 운동이든 사람 사이 관계든, 애매하게 알 때 인간은 자만을 했다. 자만을 하면 탈이 났다. 운전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을 때 꼭 사고가 나는 것처럼. 이를 문득 실감했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자만을 한다는 건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고 자신감이 있다는 건 편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않나. 사랑을 할 때 나는 늘 그 관계가 편안해지는 수준까지 가고 싶었다. 그러지 못할 때 괴로웠으니까. 헌데 편안해지는 건, 그러니까 자신이 있는 건 애매하게 알 때뿐이라고 하면, 누군가를 깊게 알고 사랑할수록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결국 인간은 소중한 것 앞에서 편안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가게 되는 건가.

출간 이후 북토크를 다니고 있다. 최소 2번, 최대 6번 할 수 있는데 얼마나 하고 싶냐고 편집자님이 물었는데 “6번 다 하고 싶다”라고 고민없이 답했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최근 몇 개월간 느낀 터였다. 책을 더 팔고 싶다는 마음과 나 신나는 시간을 더 갖고 싶다는 욕심에 결국 8번이나 하게 됐다.

첫 북토크를 가는 날이었다. 북토크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주도해야 한댔다. 1년 전이었다면 전 날부터 손에 땀이 줄줄 흘렀을 텐데 이번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날 만난 지인들이 긴장 안 되냐고 물었다. 누구라도 떨릴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난 긴장이 안 된다고 답했다. 근 6개월 여러차례 마주했던 발표 자리가 날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았다. 스스로를 신기해하고 기뻐하면서 북토크 장소로 갔다.

책방지기님이 나를 반기며 15명이었던 정원이 마감됐다고 했다. 가림막 뒤에서 한 명 한 명 자리를 잡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북토크 시작 1분 전까지도 하나도 긴장이 안 됐다. 내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니까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북토크가 시작되고 5분 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분은 당황했을 것이다. 내가 땀을 뻘뻘 흘렸기 때문이다. 15명 앞에서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머릿 속에 완벽히 정리돼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막상 말로 나오는 순간 스텝이 꼬였다. 고비를 몇 번이나 겨우겨우 넘기며 발표를 마쳤다. 더 큰 고비는 질답 시간에 찾아왔다. 내 책을 읽고 할 거라곤 생각도 못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허를 찌르는 질문을 했다. 고민하느라 짧지않은 정적을 만들기도 하고 ‘하하, 어려운 질문이네요’라고 웃기도 하며 순간들을 넘겼다.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 북토크 준비에 성의가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내 책을 읽은 사람들과 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라고 해서, 독자들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걸까.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었던 건 나는 내 책을 읽었다며 행사까지 찾아온 한 분 한 분의 독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다는 점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 <인생의 역사>에서 자식을 대하는 마음을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빗댄 문장을 읽은 적 있다. 새를 실제로 쥐어본 적 없으면서도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만큼 적확한 표현이었다. 일주일 뒤 두 번째 북토크가 있었다. 발표 자료를 다듬고 해야할 말을 가다듬은 후였다. 새로운 사람들, 내가 궁금해 그 자리까지 온 또다른 사람들을 앞에서 마이크를 손을 쥐며, 머릿 속으로 새를 조심스럽게 쥐는 상상을 했다. 소중한 존재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조심스러워지겠다는 다짐을 하며.

첨부 이미지

글쓴이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면 아래 링크에서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익명)

한마디 하러가기 >>>

제 첫 산문집 <말 더더더듬는 사람>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보기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2주간의 두부

격주로(에 가깝게) 에세이를 씁니다!

뉴스레터 문의duboothewriter@gmail.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