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떠올리며 우는 순간들

2025.04.28 | 조회 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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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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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두부

격주로(에 가깝게) 에세이를 씁니다!

아내 지원이 그린 그림!
아내 지원이 그린 그림!

유난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종종 지원과 결혼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운다. 아무 맥락 없이 그런다. 일하다가 짬이 났을 때, 우두커니 서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 갑자기 지원이 언제나 내 곁에 있게 되었다는 게 감동스러워서 울컥한다.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무해한 사람인지, 세상을 얼마나 따스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인지, 얼마나 진중하게 인생을 대하는지 되뇔 때마다 눈물이 차오른다. 이런 경험은 흔치 않기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렇게 말하면 나와 지원의 결혼 생활은 아무 탈 없이 즐거울 것만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린 종종 다툰다. 사소한 어긋남 때문에 말싸움을 하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을 은연 중에 드러내 서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은 못난 고집이 다툼을 지난하게 끌고 가기도 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나는 5년 가까이 함께한 지원에게도 새로운 모습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새로운 모습은 내게 깊이 이해해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로 느껴진다. 이해해내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다. 내게도 35년간 살아온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35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평면적이지 않다. 실은 나는 복잡한 삶을 살아온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낯설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난 이십대 후반에 세계일주를 떠난 적 있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사무실에 제약을 두지 않고 여행하며 일하는 프로젝트 팀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로 참여했다. 그 팀에 합격하자마자 날 받아준 첫 회사에 사표를 내고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능력 부족과 이런저런 마찰로 한 달만에 팀에서 하차하게 된다. 팀과 헤어진 건 쿠바와 미국을 거쳐 아이슬란드의 케플라비크 공항에 착륙한 직후였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중앙 아메리카의 뜨거운 바람을 맞던 나는 순식간에 북극 가까이 있는 아이슬란드 공항에 혼자 남았다. 돈이 부족해서, 아니 마음에 여유가 부족해서 아이슬란드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알파벳도 아니고 알파벳이 아닌 것도 아닌 글자가 가득한 낯선 공항에서 10시간 가까이를 멍하니 보냈다. 그리곤 가장 값이 쌌던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향했다.

나온 김에 여행을 -그 여행이 내게 남길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했다. 청년들의 취업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한국발 뉴스를 애써 외면하며 유럽에 혼자 남겨진 나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욕심과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물거품이 됐다는 막막함 사이에서 떨었다. 혼자 유럽을 돌고 돈을 아끼기 위해 시간을 쓰면서 나의 대책없었던 낭만에 대해 생각했다. 남들이 따라가는 취업 전선에 덩달아 몸을 던지는 게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쓰며 작가로서 세상을 누비며 살겠다던 비현실적인, 하지만 나를 희망으로 압도했던 낭만에 대해 말이다. 생애 가장 많은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고 아무런 성취도 없이 완전히 지쳐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십대 내내 날 지탱했던 모호한 꿈에 대해 냉정해졌다. 더이상 꿈을 함부로 떠들며 웃거나 자랑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분히 현실적인 사람이 더 성숙하고 멋져 보였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냉소적인 면면이 있다면, 너무 T스럽거나 차가운 모습들이 있다면 이십대 후반에 세계 일주를 떠난 그 경험이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타지에서 겪은 실패와 좌절은 나라는 사람을 한 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들을 마주하기 전엔 보다 꿈을 좇던 사람이었는데 몇 발짝 현실적인 쪽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그치만 완전히 옮겨간 건 아니다. 제버릇 남 못 준다고, 여전히 여기저기선 낭만을 추구하는 면모가 튀어나기도 한다. 여행이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심어준 것이다.

아마 지원도 그때그때 변하는 내 면면에 혼란스러울 것 같다. 내가 그에게 예측하지 못했던 모습을 봤을 때 당황한 것처럼 말이다.

한 달 전 지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위로서 나는 장례식장을 지켰다. 가장 늦게 그 집안의 일원이 된 사람으로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지원이 30년 가까이 몸 담아온 가족의 체온을 느꼈다.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가족을 위해 얼마나 기꺼운지, 하는 것들을 말이다. 신기하게도 지원과 살을 맞대며 살아온 1년보다 그의 뒤를 받쳐준 가족들과 함께한 3일의 시간 동안 아내를 더 깊게 이해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족이 개인의 면모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인지 이모들의 말 한마디, 사촌 언니 오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린 날의 지원에게 어떤 성격이나 가치관을 한 움큼씩 쥐어줬겠구나 하는 생각을 매 순간 했다. 워낙 다양하고 섬세한 말과 행동들이 있었기에 요약하기 어렵지만 지원의 가족이 총체적으로 띠고 있었던 건 ‘사랑’이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장례식이 거행되는 3일간 곳곳에서 실감했다. 이미 갖고 있는 지원에 대한 이해가 몇 층 깊어지는 느낌도 있었고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가족으로부터 나온 사랑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눈치보는 것 없이 피곤함을 말하는 처제의 모습과 그를 사랑스럽고 귀엽게 지켜보는 어른들의 눈빛들 속에서. 

앞으로도 나는 지원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것이고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그 새로움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딱히 명쾌한 답을 전할 수 없었다. 지원이 어떤 사람이다, 라고는 나조차도 정의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뒤에서 은은하게 비쳐지는 햇빛같은 따스함, 대부분 사랑으로 가득했을 그의 가족, 그 가운데서 피어난 여성의 담대한 가치관과 발걸음이 어떠한 확신으로 내게 다가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내겐 어떤 총체적 느낌이 느껴질지 알기 어렵지만, 선한 것이길 빌며, 나는 이 글을 마치는 중에도 나의 아내를 생각하며 울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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