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아~ 두현님 진짜 말 많아.” 좀 황당했다. 나는 한 번도 스스로가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나는 어떤 사람인가' 같은 새삼스러운 생각에 곧잘 빠지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 속의 나는 확실히 말이 없다. 나서기보단 머뭇거리고 별거 아닌 말을 해 놓고도 상대의 반응이 어떨지, 그러니까 ‘혹시나 날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하고 눈치 보는 사람이 나다. 그런데 말이 많다니, “오늘따라 두현님 답지 않게 말이 많네요"도 아니고 늘상 그런 사람이라는 듯이 ‘두현님은 진짜 말이 많다’라니.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더욱 황당했던 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음, 두현님은 확실히 그렇지'라는 듯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나는 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실은 말이 많은 편인 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회사 밖 지인들은 나를 말수 적은 사람으로 볼 거란 점이다. 최소한 ‘수다쟁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이전에 몸담았던 학교나 군대에서는 “말좀 해”라던가 “남자가 너무 소심하고 여리다” 같은 말을 툭하면 들어왔으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 말을 잘하기란 늘 어려웠으니까.
좀 혼란스런 마음으로 새삼스러운 생각을 계속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쯤 음악실에서의 일이다. 음악 선생님은 새로운 노래를 배울 때면 나를 앞에 세웠다. 시범 조교 같은 거였다. 어린 나는 노래를 곧잘 했나보다. 아니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나보다. 나는 당연히 내 일이라는 듯 친구들 앞에 서서 노래했었다. 반에도 ‘역시 이런 건 두현이가 해야지'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또다른 기억도 떠올랐는데 아빠가 내가 다 큰 후에 했던 얘기였다. “네가 어릴 때는 겁이 없었는데… 스키장에 가면 잘 타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부려 상급자 코스로 올라가기도 했어.” 단순히 스키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말한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돌아보니 크면서 겁이 많아진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음악 시간에 시범 조교 역할을 전담했다거나 스키를 탈 때 겁이 없었다는 기억만으로 수다쟁이였다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 툭하면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기 주제도 모를 만큼 용감한 사람이 소심하거나 눈치를 볼 것 같지도 않다. 이런저런 사소한 기억이 겹치면서 ‘어릴적의 나는 수다스러웠고 크면서 달라진 건가’라는 생각에 닿았다.
그렇게 사라졌던 모습이 서른 중반의 내게 다시 찾아오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내 수다스러움에게 묻고 싶었다. 왜 사라졌던 거냐고. 뭐가 널 숨게 만들었던 거냐고. 그리고 지금 다시 나타난 건 왜냐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불안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불안 지수가 높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나서고 싶어도 불안이 가장 먼저 솟아올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망설였고 뒤로 몸을 뺐다. 차라리 스스로를 말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게 내가 숨을 구석이었다. 어쩌다 불안을 쉽게 느끼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2>에서처럼 사춘기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정을 잘 못 다뤄서 그런 거일 수 있다. 아니면 어릴 적의 어떤 상처나 말 더듬이 불안을 쉽게 느끼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닿자 좀 애틋했다. 수다스러움은 내게 아주 먼 표현이었는데 사실은 내 안의 어딘가에 늘 있어왔다는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안에 묻힌 채 말이다. 너무 오래 잊고 지낸 것이 미안했다. 깊은 속 어딘가에 있던 상처가 여물다 또 다치고 조금 더 여물다 한 번 더 다치고 그렇게 긴 세월을 거쳐 수다스러움이 다시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울먹거릴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사람은 나이를 들면서 소중한 걸 잃어간다고 한다. 동심이라던지 순수함같은 것들 말이다. 내겐 수다스러움이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다스러웠을 때 나는 호기심을 참지 않았으니까. 할 말이 있을 때 기꺼이 나설 수 있었으니까. 때론 무모한 용기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으니까. 그럴 때면 사람들과 깊게 연결되고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원에게 문득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는 돈을 많이 벌기보다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녔다. 내가 더 행복을 느끼는 건 사랑을 받는 일이라는 얘기다. 그건 진심이었다. 나는,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수다스러움을 붙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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