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난 거의 매일 게임을 한다. 툭하면 감상에 빠진 소리를 해대서인지 의외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릴 적부터 늘 게임과 가까웠다. 게임을 한 판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끝내게 되면 좀 허전하다. 야근 때문에 녹초가 돼서 돌아온 밤에도 게임을 해야 머리가 풀리는 것 같고 비로소 ‘이제 자도 되겠어’하는 기분이 든다.
어떤 게임을 하냐고 묻는다면 좀 난처한데, 별로 알려진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롤같이 유명한 게임은 하지 않고, 플레이스테이션을 TV에 연결해 혼자하는 게임을 주로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게임을 못한다. 나도 롤을 했던 적이 있는데 친구들과 할 때마다 예외없이 욕을 먹었다. 한 번은 기어코 같이 하자길래 「그럼 욕하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게임 시작 5분 만에 친구는 욕만 안 했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눈치를 보며 말 없이 게임을 꾸역꾸역 했던 그 날 이후로 나는 스스로가 게임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혼자 하는 게임을 주로 찾았다.
문제는 혼자하더라도 욕하는 사람만 없을 뿐, 못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패드를 잡고 게임을 하면서 「아씨」, 「또 졌네」 같은 소리를 내뱉는 나를 보며 아내 지원은 묻는다.
「뭘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해?」
「아니 이거, 난이도 제일 높은 걸로 해서 그래」
「그럼 좀 쉽게 설정하고 해」
「그럴 순 없어」
정말로 나는 늘 가장 어려운 난이도에서만 게임을 하기 때문에 자꾸 진다. 객관적으로 못 하는 편인데 어렵기까지 하니 패배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지원에게 「이래야 재밌어」라고 말한 뒤 다시 게임에 집중한다. 지원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잠시 쳐다보고, 방을 나간다.
많이 하는 축구 게임을 예로 들면, 보통은 7~8분 정도 하는 경기 시간을 30분 가까이로 늘려 플레이한다. 게임이지만 최대한 현실 축구에 가깝게, 현실 축구만큼 어렵게 설정하기 때문인데 패스 속도, 슛 정확도 같은 것도 하나하나 바꾼다. 설정하기 전에는 시원하게 굴러가던 공이 바람이 빠진 듯 느려진다. 답답하지만 훨씬 버거운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축구 게임 안에서도 여러 모드가 있다. 나는 팀 하나로 시즌을 운영하는 모드를 주로 하는데, 보통 2부 리그의 약팀으로 시작한다. 이름은 알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고 팬이 적은 곳으로 고른다. 약팀이기 때문에 시즌이 시작하면 9~10위 정도를 맴돈다. 혼자 하는 게임에서 이 정도 순위라니… 게이머들이 알면 비웃을만한 성적이지만 왠지 난이도를 잘 설정한 것 같아서 난 좀 뿌듯하다.
경기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 상대 팀 분석을 하고, 그에 맞는 전술과 조커 카드도 미리 준비한다. 진짜 경기라도 나가듯 심호흡을 하고 패드를 잡는다. 준비한 카드가 먹힐 때의 쾌감은 말로 못한다. 시즌 하나를 끝내는 데는 꼬박 두 달이 걸린다. 겨우겨우 1부 리그 진출을 위한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내는 정도의 성적을 올린다. 오래 걸리고 어렵고 번거롭지만, 마음은 가득 차 있다. 팀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고 선수 하나하나의 서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 같다.
좀 웃긴 건, 엔딩을 본 게임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축구 게임에서도 우승컵을 들어본 적이 없다. 거기까지 가기 전에 게임이 질려서 도중에 그만 둔다. 쓰면서도 어이가 없다. 그렇게 어렵게 설정해놓고, 그렇게 애써놓고, 정작 한 번도 끝을 본 적이 없다니. 말하자면 나는 승리를 사랑한 게 아니라, 승리를 준비하는 시간을 사랑한 셈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우승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했던 건 언제나 그 직전까지였다. 약팀이 조금씩 강해지는 과정, 처음엔 통하지 않던 전술이 어느 순간 맞아떨어지는 순간, 패배 끝에 겨우 한 경기를 따내는 밤. 그 버거움이 좋았다. 게임이 쉬워서 계속 이기기만 했다면, 나는 오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늘 조금 모자라고, 늘 조금 벅찬 상태여야 다음 경기가 기다려졌다. 패배가 주로 있는 어려운 전장에서 가끔씩 승리를 거두는 것이, 그렇게 천천히 승리 횟수를 늘려 나가는 게 내게는 가장 오래 그 게임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게임을 할 때 나는 종종 삶을 떠올린다. 둘은 꽤나 비슷한 면모를 갖고 있다.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 순간순간 판단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성공이나 승리가 가져다주는 행복은 때론 좀 아슬아슬하다. 기대보다 금방 휙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의 성공이 다시 찾아올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겪은 적 없던 조마조마한 마음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위해 이것저것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던 과정을 사랑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언제나 노력을 쏟을 과정이 숙제처럼 주어지니까,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을 잃을 일도 훨씬 줄어들 테다. 삶에는 그런 일이 왕왕 있는 듯 하다. 정작 사랑할 만한 것은 가까이에 있는데 알아채지 못한 채 먼 곳에만 시선이 몰리는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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