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와 사랑에 대하여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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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인스타그램에서 주고받는 하트 말이다. 문득 스스로에 대해 어떤 자각을 할 때가 있는데, 최근 나는 충분한 좋아요를 받지 못해 낙담하는 나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유쾌한 일은 아녔다. 좋아요를 못 받았다고 실망하는 모습은 멋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좋아요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하트를 누르는 행위에는 크든 작든 의도가 있지 않은가. 나만 봐도, 좋지 않은 이야기에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콘텐츠가 좋거나 올린 사람을 좋아하거나 그에게 내 관심을 티내고 싶을 때만 좋아요를 누른다. 싫은 이야기를 만나면 ‘숨기기’도 적극적으로 한다.

난 좋아요를 무시할 수 없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다. 마케터는 본질적으로 타인의 관심을 끌어야하는 사람이니까, 종종 적은 좋아요는 직업적으로 실패작을 내놓았다는 성적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래저래 얘기하다보니 핑곗거리를 늘어놓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스스로가 좋아요에 연연하는 사람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좋아요에 목을 매는 사람이라는 걸 약간 괴롭게 인정하는 바이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 T가 인스타그램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T는 화면에 뜨는 거의 모든 친구의 게시물에 하트를 날리고 있었다.

「야, 뭐 하냐」

「인스타 하는데?」

「왜 그렇게 좋아요를 다 눌러?」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거다 인마」

난 피식 웃고, 맥주를 마저 마셨을 뿐이었다.

T와는 졸업 후 거의 만나지 못했다. 1년에 한 두번 볼까 말까였다. 저저번주가 그 일년에 몇 없는 자리였는데, 그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좀 놀랐다. T가 내 근황을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런저런 통로로 내 소식을 전했다 해도, 진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늘 관심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못했다. 갑자기 몇 년 전 웃어 넘겼던 T의 말,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거다 인마」가 떠올랐다. 어딘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 시기가 바로 충분한 좋아요를 받지 못해 낙담하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였다.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회사에서 공들였던 캠페인도 그랬고 개인 공간에 쓰는 글도 계속해서 차가운 반응을 마주했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싶었던 것도 여지없이 관심을 못 받았다. 그럴 때마다 슬펐다. 분명 이보단 많은 관심을 받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받던 사랑을 더이상 받지 못한다는 건 애석한 일이었고, 직업적으로 관심을 끌어야만 하는 내게 불안까지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 뭐 이런 생각들에 내내 빠져있던 차에 오랜만에 만난 T의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거다 인마」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할까)이 내게 어떤 여파로 다가온 거였다.

턱도 없이 적은 좋아요가 찍힐 때마다 나는 원인을 찾는데 혈안이었다. 그럴수록 생각은 나 자신을 향했다. 내가 만드는 것들이 예전같지 않아서 사람들이 실망했나? 내가 트렌드에 뒤처져서 철 지난 얘기만 하고 있나? 등등.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과정은 괴로웠다. 부족함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내 못난 점이 쉬지 않고 드러나는 것 같았다. 또 시선이 나 자신을 향하면 향할수록, 나 말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됐다. 나에 대해 생각하느라 바빠서 나 이외의 것, 그러니까 타인에게는 조금의 신경도 쓰기 어렵게 된 것이다. 타인의 슬픔이나 기쁨같이 내 안에서 문제를 찾는 일과 상관 없는 일에는 한없이 차가워졌다.

T는 아낌없이 좋아요를 누르듯 나에게 다가와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부드럽게 건네는 듯했다. 안그래도 좋아요가 줄어들어 낙담하고 있던 내게 T의 그런 모습은 반가웠다. 새삼스레 그에게 호감을 갖는 나 자신을 보고 생각했다.

좋아요를 사랑으로 치환해도 괜찮다면, 사랑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해야 하는 건가.

어떻게 나는 다시 좋아요를, 아니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 어렴풋이 피어나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받을만한 모습이 된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이고, 타인의 소식에 차가워져버린 사람이다. 차가운 마음은 쉽게 포장되지 않고 드러난다. 타인은 자연히 그에게서 멀어진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런 질문을 해야 할 거다. 어떻게하면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을 받기 위해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 중 가장 근사한 것은 스스로에 대해 글을 쓰는 거였다. 한 편의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나면 나는 나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얼마쯤은 실제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뭐든 그랬다. 어떤 것이라도 글로 표현하고자 하면,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고, 들여다 볼수록 대상은 훨씬 근사한 무엇이 됐다.

타인을 사랑하고 싶다면 타인에 대해 들여다보고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만나자고 연락하고 싶은 사람을 찾았으나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내 안은 한동안 나로만 가득차 있던 것 같았다.

언젠가, 대체 커서 무슨 일을 하며 살지 알 수가 없어 막막하면서도 막연한 희망은 가득했던 때, 나는 고민 끝에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나는 돈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사랑 많이 받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사랑, 혹은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 애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숨가쁘게 달려온 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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