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하는 사피어-워프 가설(언어 결정론)은 현대 언어학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고,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즉 언어 때문에 사고가 제한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는 점은 실증적으로 밝혀졌다네요.
기 도이처(Guy Deutscher)라는 언어학자가 쓴 Through the Language Glass: Why the World Looks Different in Other Languages(『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번역서를 읽었지만 원제가 책의 주제를 보다 명확하게 알려줍니다)를 보면, 명사에 성별을 부여하는 언어를 쓰는 사람이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지 확인하는 실험 등이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메커니즘의 하나로, 그 언어를 구사할 때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강제적인 요소나 구조를 언급합니다.
"언어는 언어가 ‘전달할 수 있는’ 부분에서가 아니라 ‘전달해야 하는 부분’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말이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한국어에서 꼭 '전달해야 하는' 부분은 뭘까요?
우선 존대 여부가 떠오릅니다. A라는 사람이 식사한 사실을 표현할 때, A가 누구인지에 따라 "A께서 진지를 드셨을" 수도 있고, "A가 밥을 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높임말 사용 여부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포함해서 '전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상하 관계를 중시(적어도 의식)하는 문화가 언어에 존댓말의 형태로 반영되고, 이제 말을 할 때마다 그 부분을 신경 써야 하니 다시 의식이 강화되는 그런 순환 관계에 있지는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주의! 한국어를 쓰면 단순히 그 언어적 특성 때문에 상하 관계를 중시하게 된다는 식으로 과대해석하면 안 된다는 게 언어 결정론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특정 언어의 고유성을 발견하려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언어만 가지고는 뭐가 특별한지 알 수 없으니까요. 다행히도 우리에겐 영어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말이죠.
한국어에는 없고 영어에만 있는 요소를 찾아보면... 관사가 있네요. 단수와 복수의 구분도 보다 철저하고요. 명사를 말할 때마다 a(n)와 the를 구분해야 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거실에 사과가 있다고 말할 때 한 개인지 여러 개인지를 아주 약간이라도 더 신경 쓰게 될까요?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을 쓴 박혜윤 님은, 이런 걸 영어 모국어 화자의 머릿속을 상상하는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꼭 원어민의 머릿속만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책 저자는 본인 스스로 영어와 한국어로 말할 때 뭔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게 어디서 비롯하는지를 곱씹기도 합니다. 영어, 아니 외국어를 수단으로 삼아 나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의 한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확장한다는 것. 이건 아는 언어가 하나밖에 없을 때는 누릴 수 없는 경험이겠죠.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영어 배우는 게 쉬워지지는 않겠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흥미로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참고 자료
- 박혜윤,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 동양북스(2024)
- 기 도이처,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윤영삼 옮김, 21세기북스(2011)
- 이 책을 읽고 썼던 감상문.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흥미로운 언어와 사고의 관계 추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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