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과의 주말을 보내던 아침이었다. 가은, 채은, 영은. 우리는 이름 끝의 ‘은’과 처음이 연결된 사이자 서로를 가장 모르지만 편안한 사람들. 나이 차가 한두 살 밖에 나지 않는 우리는 어쩌면 가장 먼 친구. 미지근한 마음으로 채워진 사이.
연말을 맞아 올라온 둘은 온 김에 미뤄온 일을 모두 해야겠다며 할 일들을 늘어놨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영은의 사진 촬영으로, 주민등록증에 들어갈 증명사진을 깔끔하게 찍는 일이었다. 이미 경험을 해 왔던 우리는 영은이 사뭇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아댔지만.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둘의 분주한 움직임을 봤다. 서로 제 머리와 얼굴을 보며 까르르 웃는 얼굴. 이 옷과 저 옷 중에서 고민하는 눈동자. 각자의 고민을 농담처럼 말하는 가벼운 대화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사랑하고 있는 모습.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비스듬히 누워 피식 웃어대는 것뿐이었다.
나갈 준비를 해야 했으므로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창 바깥의 경치마저도 찬란했다. 얼마 전 내리던 눈과 추위는 거짓처럼 햇빛이 길었다. 아주 따뜻하게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맑은 날일수록 더 춥게 느껴지니까. 이럴 때는 쉽게 다치니까. 그렇게 가뿐히 침실을 나오던 때, 동생들이 거실에 모여 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거실에는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이 흘렀다.
네 개의 눈동자가 하나로 포개졌다.
여섯 개의 눈동자가 모였다가 흩어졌다.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하나로 모인 눈동자들.
채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이거 진짜야?
두 명은 행성에 남고, 179명은 각자의 항성으로 흩어졌다고 했다. 기사가 띄워진 휴대폰을 붙든 채, 허공을 바라보다 다시 휴대폰을 보기를 반복했다.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면 닿는 곳.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나. 내가 읽고 있는 이 단어가, 정녕 내가 알고 있는 뜻이 맞나. 어떠한 생각도,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려지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급히 보도하는 기자의 목소리, 사람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 그리고 댓글 창으로 수두룩이 올라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아아, 어지러웠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나가야 하고. 10시에는 미용실 예약이, 11시에는 사진관 예약이. 15시에는 클래식 공연이 예약되어 있는데. 동생들도 집으로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할 수 있지. 피로가 나를 덮쳤다. 침대에 누워있고만 싶었다. 깊이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하지만. 아스러지는 단어를 모아 불었다.
미용실 가자.
우린 버스를 한 번 갈아타 미용실에 도착했다. 수북이 잘린 머리카락 뭉치를 보고 인형을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농담도 했다. 지도를 봤지만, 털레털레 돌아 사진관에 도착해 어설프게 사진도 찍었다. 영은의 포즈와 표정을 보정하며 예뻐지고 있다고, 하며 연말 파티 이야기를 연신 이어가던 사진사. 영은의 굳어있는 표정을 보며 연신 웃어대며 농담하는 모습들.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내쉬었다. 말을 하는 건지, 증발하는 단어를 부여잡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이라는 게 다 허상 같았다. 어디에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더 쉬운, 더욱더 쉬운 단어로 골라 문장을 만들어 아주 긴 호흡으로 문장을 소화했다. 창밖을 봤다. 나올 때보다 더 해가 선명해지고 있었다. 옷을 더 붙들어 맸다.
채은과 영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각각 담임선생님에게서 온 문자였다. 여객기에 탔는지, 주변에 사고를 당한 이들이 있는지, 지금 어디인지 묻는 장문의 글이 보였다. 문자가 온 지 3분이 채 되지 않아 각자 학원-집-등에 있다는 답장이 빠르게 올라왔다. 숨을 다시 들이켜 쉬었다. 여섯 개의 눈은 각자의 창밖을 향했다.
손을 휘저으며 동생들을 떠나보냈다. 차마 정류장까지 바래다 주지 못한 마음은 문자로 보냈다. 온전히 홀로였다. 숨을 깊게 내쉬었다. 밀려난 숨의 방향을 따라 피로가 금세 몰려왔다. 공연을 봐야 하는데, 집에 가서 고양이 밥도 주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일렁이는 생각. 움직이지 않는 몸. 까무룩한 졸음과 싸우고만 있었다. 고개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무거운 제 다리를 끌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의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었다. 검은색, 흰색, 노란색, 파란색. 차들이 도로에 꿈쩍 못하고 서 있었다. 버스에서는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더 뒤로 가라고, 자리가 없다고. 들어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수군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해일처럼 파고드는 사람들을 등지고 뒤로, 뒤로, 뒤로 갔다. 사람들의 발에 엉켜 어떤 발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창밖이 보이지 않았다. 공연장까지는 다섯 정류장 정도가 남아있었다. 하차 벨이 울리지 않고 공연장으로 쭉, 쭉 갔다. 이내 고개를 떨궜다.
도착한 공연장은 입구부터 사람으로 가득했다. 공연장의 전체 좌석인 1,800여 석이 꽉 찼다고 했다. 카메라 셔터 소리. 영상을 찍는 띠링-소리, 포즈를 취하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옆, 앞, 저 멀리.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공연장 앞에서, 배너 앞에서, 나눠준 리플렛을 들고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숨을 가다듬었다. 휴대폰을 껐다. 고개를 몇 번 도리질하다 마른세수를 했다. 아무도 나를 못 알아봤으면 했다. 그 누구도 내가 이곳에 있다고, 공연을 보러 왔다고 알아주지 말았으면 했다. 좌석을 찾아갔다. 빈 무대가 보였다. 악기만이 싸늘히 빛을 반사하는 무대. 고요하고 날카로운 소음.
공연은 순조로웠다. 아니, 어쩌면 완벽했다. 사람들은 연주가 끝날 때면 만족의 손뼉을 쳤고, 악기 솔로가 있는 곡이 끝날 때면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준비된 메인 곡들이 끝나고 앵콜을 할 때는 분위기가 더 고조됐다. 누군가는 듣고 싶은 곡을 소리 내 말했고 지휘자는 장난스레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앵콜 곡부터는 촬영하셔도 됩니다! 앵콜은 3곡으로 준비했으니 마음껏 찍어주세요.
사람들은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제법 화려하고 신나는 곡들이 앵콜로 연이어 나왔다. 제각기 휴대폰 속은 띠링, 하며 촬영하는 소리를 냈다. 그마저도 박수 소리에 가려져 잘 들리지 않았다. 앞좌석의 사람들을 봤다. 수백 개의 카메라. 하나같이 같은 모습을 비췄다. 띠링, 띠링. 연주 중간마다 소리가 들렸다. 끝나갈 때쯤에도, 박수처럼 띠링,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한 곡만이 남았다. 연이어 나온 곡들과 다르게, 공연장은 잠시 침묵으로 가득했다. 지휘대로 한 발, 한 발. 고요히 올라간 지휘자는 관객석으로 몸을 돌렸다. 이내 숨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뗐다.
오늘 아침에 비보를 들었습니다. 공연에 오르기 전까지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해서 고민했습니다.
지휘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들어 관중석을 봤다.
저희는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기에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추모를 하려 합니다. 마지막 곡은 엘가의 ‘님로드’라는 곡입니다. 이전 세월호 사태 때에도 추모곡으로 많이 쓰였지요. 이번 곡은 박수가 아닌 침묵으로 시작하여 침묵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침묵해 주시면, 저희는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여객기 사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지휘자는 돌아서 오케스트라를 봤다. 지휘자의 그림자처럼 띠링, 띠링, 띠링. 수백 개의 띠링, 소리가 몰려왔다. 거대한 그림자는 침묵으로 함께 하자는 말을 아주 쉽게 무너트리고 꼬리를 만들었다. 소리가 끝나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됐다.
연주 내내 수백 개의 띠링 소리를 생각했다. 침묵으로 함께 하자고 했던 지휘자의 말을 떠올렸다. 촬영 버튼을 누른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했다. 내 앞에 여전히 빛나는, 작은 네모 화면들을 봤다. 왜? 왜, 왜. 곡이 끝나갈 때까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이해할 수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곡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오케스트라를 제대로 봤다. 검은 옷들의 오케스트라. 부드러운 선율로 마무리된 곡. 그리고 들려오는 수백 개의 소리. 띠링, 띠링, ㄸ, ㄷ. 서서히 비어가는 무대가 보였다. 그들의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연장의 불이 켜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르르,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난, 그저. 좌석에 가만히 앉아 무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
겨우내 가지 못하다 이제야 국화 앞에 섰다. 가면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가뜩이나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내가 흘러내릴 것만 같아서. 여전히, 이토록 평범한 영위하고 있는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렇게 영영 놓고 싶어질 것만 같아서. 국화를 건네받고, 국화의 무덤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찰나의, 하지만 영원토록 잊지 못할 말을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가 친밀히 지내던 간호사가 그 곳에 있었다는 말. 그녀의 지인이 그 곳에 있었다는 말. 그의 친구가 여행을 갔다가, 다른 여행으로 훌쩍 가버렸다는 말.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며, 붉은 눈으로 쓰게 웃어보이던 그들.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더 수그러며 읊조렸다. 울지 마. 울지 말고 물어. 물어야 해. 왜 그랬는지, 왜 이리도 슬프고 비통한 연말과 신년인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입술에 붉은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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