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불멸

2025.01.06 | 조회 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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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늪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 시선이 깃든 이야기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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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내려간 집. 엄마와 아빠는 최근에 수확했다던 콩을 고르고 있었다. 팔 수 없는 콩은 버리거나 우리가 먹고, 상품성 있는 콩들은 모아서 판다고 했다. 거실에는 콩이 저들끼리 부딪치는 소리, 엄마와 아빠의 작은 대화 소리. 그리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만이 흘렀다. 그렇게 조용한 틈 사이로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TV 소리처럼 고요하게, 꼭 제 의지가 아닌 것처럼.
아빠, 저는 나이를 먹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러자 아빠는 호탕하게 웃었다.
벌써?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웃고 싶었다. 하나 웃을 수 없었다. 간신히 입꼬리만 올린 나는, 물끄러미 아빠의 눈을 바라봤다. 그럼, 언제부터 무서워지는 걸까, 하며. 그런 내가 사뭇 진지해 보였을까, 아빠는 가볍게 입을 뗐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만큼 책임의 무게를 지게 되는 거니까 어떤 나이에는 무서워지기도 하지. 하지만 어느 순간 책임이 더 가중되지 않을 때, 그리고 책임이 가벼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무섭기보다는 나이라는 것에 무감해져. 근데 네 나이는 책임을 지기보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때인데. 벌써 무섭다니.
아빠는 웃었다. 그리고 다시 콩을 골랐다. 어떤 콩이 식탁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건지 모난 콩도, 동그란 콩도 알지 못하는 나는 그저 아빠의 등을 바라봤다.

책임을 지는 건 괜찮아요. 당연한 거니까요. 하나 결국, 나이를 먹는 게 무섭다는 건. 죽음 이후에 대한 무지, 그리고 일말의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감정들은 어디에서 기인했지? 나는 왜 무서워하지? 하다 보면, 그렇더라고요. 결국 다 잊게 된다는 것. 볕을 맞아 반짝이는 길가의 은행나무들도, 겨울의 냄새도, 따듯한 햇빛마저도 사라지니까. 경험했던 모든 게, 내가 살았던 세월이 다 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잊게 되니까요. 아빠마저도요.
아빠는 싱긋 웃었다.
무에서 무로 가는 것이 사람이야. 또,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힌 우연이자 불균형이고.
아빠의 눈을 간신히 피하며 답했다.
그렇죠.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한 물리학자가 말한 것처럼요.

맞아. 그리고 사람에게 불안이란 가장 원초적인 감정임과 동시에 이를 통해 성장하고, 어떤 때에는 무너지게 만드는 무형의 존재지. 그렇기에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승화시키는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곤 해. 종교가 탄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죽음’이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 절망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미래에 대한 감정으로 현실이 흐트러지는 상태를 경계하는 거야. 미래는 관념일 뿐이니까. 물론, 어쩌면 너도, 나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 그럼에도 ‘현재의 나’는 살아있잖아. 그러니까 그냥 살아. 무서워하지 말고.
바삐 움직이는 아빠의 손을 바라보며 다시 상념에 잠긴다. 나는 왜 이 세상을 잊기 싫을까. 언제는 죽음보다 삶이 더 무서웠는데. 나는 세상의 어떤 파편을 사랑하는걸까. 어떤 것을 기억하고 싶은걸까.

책상 앞에 앉아 쓰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써야 할 것만 같아서. 그렇지 않고서는 이것도 잊게 될까 봐. 아주 오래된 생각에 사로잡혀있을까 봐.


 언젠가 저는 아주 먼 날의 저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주름이 깊이 패여 있고, 흰 머리칼을 짧게 흩날려요. 그리고 창가에 앉아 노을을 봐요. 한 손에는 핫초코가 들려있고, 무릎 위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고양이 감자가 앉아 골골송을 부르죠. 그런데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나만 평화롭고 나만 행복하면 끝인가요. 대체 왜 이리 이기적으로 살아왔을까요? 저는. 여전히, 매일, 사람들이 사라져요. 누군가는 저 자신이 바스러져 가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요. 그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나는 그들을 왜 이리도 자주 잊고 살아갑니까. 빈자리를, 대체, 어떻게 채워야 하는 겁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왜 이리 얄팍한가요. 나는 왜 살아가는 겁니까? 왜 이리 오래도록 저항하지 않고 살아온 겁니까. 부끄럽습니다. 주변에서는 용감하다고 해요. 과연 용감한 것이 맞습니까. 분노에 찬 사람을 보고, 아주 두려워하는 마음을 끌어안은 사람을 보고 용감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왜 내가 대단하고 용감해졌습니까. 저항하지 않던 나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겁니까. 무엇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온 겁니까. 앞으론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지만,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고 삶이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아아, 부끄럽습니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그렇지만 알아야겠습니다. 억울하고 서러운, 알 수 없는, 무서운 죽음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약한 두 다리로 제 몸을 버티며 분노한다. 솟구치는 문장을 걷잡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쓰고, 쓰다 이내 사라질 것 같은 마음에 잠긴다. 이미 잠에 들어야 할 시간.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창밖의 달을 본다. 별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달빛에 비친 구름은 조용히 움직인다. 아름다움, 찬란함, 따뜻함과 부끄러움, 비통함, 분노. 알고 있는 형용사들을, 감정을 하나둘 흩뿌린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이 무서운지. 무엇을 잊고 싶지 않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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