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잡는 마음

2024.12.30 | 조회 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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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늪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 시선이 깃든 이야기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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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와 다퉜다. 그는 내 오랜 연인이자 단짝. 나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모든 초고를 가장 먼저 보고 응원해 주는 사람. 그런 희가 내 앞에 있다. 우울과 슬픔을 담은 채로.

 희와 싸우게 된 건 단어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단어를 고를 때에 더욱이 신중해야 했던 지금 때문일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이 뒤집힌, 상식을 뛰어넘는 그들이 쥐고 흔드는 어지럽고 추악한 세상.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쉽게 혐오 받고 검열되던 사람들이 온몸을 바치며 나아간다. 온몸을 무장한 채로 총을 겨누는 군인을 맨몸으로 막아서고, 트랙터를 막아서던 경찰을 제 몸으로 막고, 날씨가 어떠하든 각자의 소중한 것들을 품은 채로 모이면서.

 나는 시위에 가겠다고 했다. 이대로 글로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시위는 수가 많을수록 더 안전하니까. 가서 후원할 수 있다면, 소리 내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다면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그런 나를 보며 희는 걱정했다. 날이 너무 춥다고. 요즘 누나와 나눈 대화 주제가 다 사회 이야기인 것 같다고. 누나가 이렇게 분노한 건 처음 보고, 계속 분노해 있다고. 그러니 제 몸도 챙기라고. 제발.

 그러나 희의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세상은 어지러웠고, 나는 이곳을 견디지 못했기, 아니. 견디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들의 횡포를 더 이상 봐줄 수 없었고, 아주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매사 정리 정돈을 철칙으로 삼던 집에는 쌓인 설거짓거리, 개지 못한 이불. 얼마 전 희가 선물이라며 수줍게 준 것은 포장도 열지 못한 채 한쪽에 자리한 지 오래였다. 차마 정리하지 못한 유리, 플라스틱 분리수거들은 너저분히 베란다 한쪽에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출근하는 길에 뉴스를 듣고, 점심을 먹으며 뉴스를 읽고. 퇴근 후 뉴스를 보다 도무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분노의 글을 쓰며 차갑게 식어가던, 그뿐이었다.

 

*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마주 보지도 못한 채 앉아 있다.

 희는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누나가 분노할수록 나는 자꾸 흘러내려. 누나의 분노가 너무 뜨거워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고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누나의 모든 행동에 첨예하게 반응하면서. 나를 보지 않는 누나의 눈을 그리도 따라다니고 뒤에서 기다리면서.

 어지러웠다. 너저분해진 집과 저 자신에게도 소홀해진 사실을 이야기해야 하나. 아니면 알겠어. 미안해. 하고 말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은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던가. 정리 정돈, 자기관리,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나. 합심하지 않으면 이들은 모두 존재할 수가 없는데. 그래. 일단은 지금에 집중하자. 희는 분노하다 못해 흘러내린 내가 힘든 것. 분노는 전이되는 감정. 분노가 넘치고 흘러내려 이내 눅진해질 때까지, 늘 희가 있었지. 그리고 지금의 희의 말을, 눈을 보니. 결국 분노는 슬픔이 되는구나. 그럼 내가 분노를 잠재우거나, 내가 분노하는 상황과 이유, 그리고 이미 놓은 것들을 말하면 희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둘 중에 어떤 게 가능할까. 내가, 이 분노를 잠재울 수 있나. 감출 수 있나. 말로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게 가능한가. 게다가 감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말했다.

 오늘 시위 같이 가자. 그러면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희는 답했다.

 그래.

 

*

 희와 시위에 가는 길에는 이상하게 용기가 났다. 분노가 들끓지도 않았다. 우리가 다툰 일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발을 더 붙이고 가까이 갈수록 자꾸만 힘이 생겼다. 거세진 응집력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봤다. 역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위에 참여하며 소리를 내고 각양각색의 응원봉을 들고 온 10대 여성들을 보면 더욱 용기가 났다. 그들은 타인을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등 떠밀어 온 것이 아니었다. 혼자 또는 함께, 제 뜻으로 왔다. 가장 크게 소리 내고 가장 슬프게 말했다. 그들과 함께 더 크게 크게 소리 내고 싶었다. 그럴 수 있었다. 여자 화장실에는 생리대가 있었고, 핫팩과 방석을 나눠주던 사람들이 있었고,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으면 함께 찾아주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크게 소리 내며 희를 살폈다. 각자 나눠 받은 핫팩을 흔들며 희의 목에, 귀에 댔다. 희는 두 개의 핫팩 중에서 더 따뜻한 핫팩을 내게 계속 바꿔줬다. 희의 표정을 살피고 함께 분노하고 웃었다. 희의 귀가 더 빨개질 때면 계속 핫팩을 댔다. 그렇게 함께 소리 내고 추워할수록 분노는 용기가 되어 자꾸만 슬퍼졌다.

 시위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희에게 말했다.

 미안해. 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제 알 것 같아. 나는 네가 왜 그렇게 슬퍼하는지 몰라서 화가 났었는데 시위에 참여하고 나니 알겠더라. 아주, 깊이. 속상했겠구나. 아주 슬펐겠구나. 누구보다도 내 안전을, 깊이 걱정하고 함께이길 바랐겠구나.

 희는 웃었다. 그리고 내 품을 파고들며 말했다.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데. 누나 몸도 잘 챙기고 나도 봐줘. 그리고, 시위 다음에 또 오자.

 어떤 것은 우선순위를 뛰어넘고 스스로 마저 아주 쉽게 파괴한다. 어떤 분노는 이해와 관용으로 바뀐다. 어떤 방식이건, 제각기 소리 내는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 분노가 모여 분노가 되는 것이 아닌, 서로를 보호하는 분노가 되는. 나는 비로소 무언가 선명해짐을 느낀다. 가장 혐오 받던, 아주 쉽게 검열되고 차별받던 사람들이 얼마나 그러했는지. 상식을, 세계를, 법도를 뛰어넘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이 세상은 왜 이토록 잔인하고 애틋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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